1968년에 상상한 노트북은 어떤 모습?

김영우 pengo@itdonga.com

노트북(Notebook)이란, 본체와 모니터, 그리고 키보드 등이 하나로 합쳐진 PC(개인용 컴퓨터)를 일컫는다. 다만, 노트북이라는 이름은 주로 한국에서 쓰이는 이름이고, 외국, 특히 서양권에서는 노트북보다는 무릎(Lap) 위(Top)에 올려놓고 쓴다는 의미로 ‘랩탑(Laptop)’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 랩탑을 노트북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랩탑의 제품 중 하나가 ‘노트북’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이것이 일반화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랩탑을 노트 퍼스컴, 혹은 노트 PC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옆 나라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느 것도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노트북은 데스크탑에 비해 휴대성이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고 가격 역시 비싸서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다지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지금도 ‘PC’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커다란 본체와 모니터, 그리고 키보드가 조합된 데스크탑을 떠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 생각을 조금 바꾸어야 할 것 같다. 미국의 조사기관인 ‘아이서플리’는 2008년 3분기에 전 세계에서 노트북이 3,860만대가 출하된 반면, 데스크탑은 3,850만대의 출하에 그쳐 노트북이 데스크탑의 출하량을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최근 TV나 신문에 등장하는 PC 관련 광고를 보더라도 데스크탑보다는 노트북의 제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장이 변화하게 된 것은 일단 데스크탑의 보급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까닭에 소비자들이 이른바 ‘세컨드 PC’로서 노트북을 선호하게 된 것이 한 가지 이유이다. 또한, 최근 나오는 노트북들의 성능이 데스크탑 못지않게 향상된데다가, 가격은 상대적으로 많이 내려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최초의 노트북(랩탑)은 어떤 형태였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현재와 유사한 모습에 이르게 되었을까? 지금부터 이를 살펴보기로 하자(참고로, 노트북과 랩탑은 넓은 의미에서 같은 것이지만, 무게가 수십kg에 달했던 초기 랩탑을 ‘노트북’이라고 부르기엔 아무래도 어색하므로 앞으로 언급할 휴대용 컴퓨터의 호칭은 모두 ‘랩탑’으로 통일하고자 한다).

1. 랩탑의 초기 개념 ‘다이나북’ - 1968년

현대적 랩탑과 가장 유사한 초기 개념을 확립한 인물로는 미국 전산학자인 앨런 케이(Alan Kay)를 들 수 있다. 미국 제록스(XEROX)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1968년,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저렴한 휴대용 컴퓨터의 개념을 발표하고 이를 ‘다이나북(Dynabook)’이라고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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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의 기술로는 이를 현실화하기가 불가능했지만, A4 용지만 한 크기에 문자와 영상, 그리고 음향까지 함께 다루는 것을 상정한 다이나북의 개념은 현재의 랩탑, 혹은 태블릿 PC의 그것과 놀라울 만큼 흡사하다. 참고로 일본 도시바는 1989년부터 발표한 자사의 랩탑 제품에 ‘다이나북’이라는 제품명을 쓰기 시작했다.

2. 이동이 가능한 컴퓨터가 등장하다. ‘IBM 5100 포터블 컴퓨터’ - 1975년

1975년에 IBM 사에서 발표된 ‘IBM 5100 포터블 컴퓨터’는 1.9MHz의 CPU를 갖추고 최대 64KB까지 램(RAM)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키보드와 5인치 CRT 모니터, 그리고 테이프 드라이브와 본체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제품이라는 것으로, 25kg가량의 무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 시점의 ‘들고 다니는 PC’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지만, 1960년대에 나온 동급 성능의 컴퓨터가 500kg에 달했던 것과 비교해본다면 이는 엄청난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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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5100은 현재의 랩탑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아무튼 ‘이동이 가능한’ 일체형 컴퓨터가 등장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참고로 가격은 성능 옵션에 따라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 사이로 고가였기 때문에 기관이나 기업을 대상으로만 판매가 이루어졌다.

3. 본격적인 랩탑의 태동, ‘제록스 노트테이커’ - 1976년

앨런 케이가 다이나북의 개념을 처음 발표한 지 8년여의 시간이 지난 1976년, 그가 일하던 제록스사에서 ‘제록스 노트테이커(Xerox NoteTaker)’라는 휴대용 컴퓨터의 시제품이 발표되었다. 이 제품은 1MHz의 CPU 및 128KB 램의 성능을 발휘했고,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모두 갖췄다. 제품 무게는 22kg 정도로, IBM 5100에 비해 다소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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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시장에 출시되지는 않고 10대 정도의 시제품만 제조되었는데, 1대당 생산 단가는 5만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비록 시제품만 나오긴 했지만, 업계에 미친 영향은 상당해서, 뒤에 나온 휴대용 컴퓨터 중에는 이 노트테이커와 유사한 형태를 갖춘 제품이 많았다.

4. 최초의 일반 시판용 랩탑, ‘오스본 1’ - 1981년

1981년, 애덤스 오스본(Adams Osborn)이 자신의 회사인 ‘오스본 컴퓨터’를 통해 출시한 ‘오스본 1(Osborn 1)’은 세계 최초로 일반인에게 판매된 휴대용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4MHz의 CPU와 64KB의 램을 갖췄으며, 전반적인 형태는 1976년에 발표된 제록스 노트테이커와 상당히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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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품 무게가 12kg 정도로 크게 줄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며, 제품 가격은 1,795달러로, 여전히 고가이긴 하지만, 이전에 나온 휴대용 컴퓨터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오스본 1은 한때 매월 1만 대 이상 팔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지만, 후에 유사한 경쟁 제품들이 다수 등장하면서 인기가 사그라졌고, 1983년에 오스본 컴퓨터가 도산하면서 시장에서 사라졌다.

5. 실제 휴대 사용이 가능한 최초의 랩탑, ‘엡손 HX-20’ - 1981년

제록스 노트테이커나 오스본 1은 휴대용 컴퓨터라는 것을 내세우긴 했지만, 부피가 크고, 외부 전원이 필수였기 때문에 실제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엡손(Epson)에서 1981년에 발표하고 1983년부터 판매를 시작한 ‘엡손 HX-20(일본 판매명 HC-20)’은 LCD 모니터와 내장 배터리를 갖춘데다가 무게도 1.6kg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제로 가지고 휴대하며 사용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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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에 장착된 LCD 모니터의 해상도는 120 x 32픽셀로서, 현재 쓰이는 휴대폰의 LCD와 유사한 크기였고, CPU는 614KHz, 램은 16KB였는데, 특이하게도 도트 매트릭스 방식의 프린터를 기본 내장하고 있어서 자체적으로 문서 출력이 가능했다. 베이직(Basic) 언어 기반으로 작동했으며, 키보드와 카세트테이프 드라이브를 통해 데이터를 입력했다. 제품 가격은 795달러 정도로 기존의 랩탑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서 큰 인기를 끌었다.

6. 최초의 IBM PC 호환 랩탑, ‘컴팩 포터블’ - 1982년

2010년 현재, 애플(Apple)사의 맥킨토시(Macintosh) 계열 제품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사용하는 거의 모든 PC는 이른바 ‘IBM 호환 PC’로서, 미국 IBM사에서 제정한 기본 구조에 따라 제조된 것들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반 PC 중에는 IBM 호환 기종이 많았지만 휴대용 PC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1982년에 발표되고 1983년에 출시된 미국 컴팩(Compaq) 사의 컴팩 포터블(Compaq Portable)은 휴대용 PC이면서도 IBM PC와 같은 기본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MS- DOS 운영체계를 기본으로 탑재한 제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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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은 3,590달러로 비싸고, 무게 역시 12.5kg으로 다소 무거운 편이었지만, 9인치 크기의 비교적 넓은 CRT 모니터를 갖췄고, 4.77MHz로 작동하는 인텔의 8088 CPU, 최대 640KB까지 확장 가능한 램, 그리고 2개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와 CGA 그래픽카드 등을 갖추는 등, 당시의 휴대용 PC로서는 매우 높은 사양을 갖췄다.

7. ‘노트북’의 형태를 확립한 최초의 랩탑, 도시바 'T1100' - 1985년

일본 도시바(Tohiba)가 1985년에 출시한 랩탑인 T1100은 근대 ‘노트북’의 형태와 개념을 처음으로 확립한 제품이라고 할 만하다. 휴대 시 접어서 보관할 수 있는 4.7인치의 흑백 LCD(해상도 640 x 200)와 83키 키보드를 갖추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MS- DOS 운영체계를 탑재하였다(IBM PC 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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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77MHz의 인텔 80C88 CPU, 그리고 256KB의 램과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 그리고 내장 배터리를 갖추고도 7cm의 두께에 4.1kg의 무게를 실현하여 1,899달러의 적지 않은 가격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휴대용 컴퓨팅을 향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위와 같이, 랩탑은 그 짧은 역사에 비해 발전의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었다. 무게가 1/6, 가격이 1/9로 떨어지는데 불과 10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IT 업계 특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고려해 보더라도 이는 그야말로 ‘광속’에 비할 만하다. 그리고 랩탑이 소형화와 고성능화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파생된 여러 가지 기술들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와 같은 휴대용 IT 기기들이 등장할 수 있게 되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현대 랩탑의 기본 개념을 처음 발표한 앨런 케이는 1971년에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비록 40여 년 전의 어록이지만, 그 뜻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충분히 곱씹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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