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현의 이슈산'책'] 바이러스, 면역에 관하여

남시현 sh@itdonga.com

[IT동아]

새해의 설렘에 모두가 도취되어 있는 사이 변종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에 몰래 숨어들었다.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사건인 줄만 알았던 바이러스의 출현은 곧 빠르게 확산되었고,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명절을 맞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수많은 사람들은 외로이 병동에 홀로 격리되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의 무력함을 보여주듯 허무하게, 그리고 빠른 속도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활개를 쳤다. 우리는 급기야 문을 걸어 잠그고 마스크를 쓰고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적인 상황이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역사에서 한 번씩 집단적으로 목숨을 앗아가는 바이러스, 우선 그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학 교양서 저술가 칼 짐머의 <바이러스 행성/위즈덤하우스>는 바이러스에 대해 이해를 돕는 책이다. 바이러스가 지나온 길을 살펴보며 어떻게 인간을 비롯한 생물권의 삶을 휘젓고 있는지, 인간과 바이러스는 어떠한 관계인지 간결하지만 명확하게 바이러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마치 세균처럼 바이러스 또한 박멸해야 할 해로운 무엇이자 불쾌한 대상으로 보는데 이는 질병을 통해 바이러스를 인식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알고 보면 사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칼 짐머 <바이러스 행성>,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칼 짐머 <바이러스 행성>, 율라 비스 <면역에 관하여>

인간의 유전체에는 바이러스로부터 온 유전 물질이 유전자보다 많다고 한다. 지구의 물질 순환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는 광합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가 들이마시는 산소의 약 10퍼센트를 생산하고 있다. 칼 짐머는 원래 바이러스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으로 시작했다고 전한다. 로마제국에서 물려받은 그 단어는 ‘뱀의 독’이자 ‘남자의 정액’을 의미했다고 한다. 즉 창조와 파괴가 한 단어에 담겨있었던 것. 그러다 수 세기가 흐르면서 지금의 질병을 옮기는 전염성 물질을 의미하게 되었다.

저자는 자연에 선을 그어 경계를 나누는 일은 과학적으로 유용할 수 있지만, 생명 자체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 선은 인위적인 장벽이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바이러스를 분리하기보다는 생명체 혼합물의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며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하지만 생명을 주는 물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오랜 세월 동안 거의 접촉이 없었던 박쥐와 같은 오지의 동물이 최근 많은 전염병의 시초가 되고 있는 것은 벌목을 하고 광물을 캐려 그들의 서식지를 빼앗으며 점점 오지로 들어가거나 야생 동물들을 애써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인간의 행동이 낳은 결과는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전히 우리는 바이러스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 앞으로도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계속해서 인간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를 줄이는 방법일 것이다. 자연스레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면역에 관하여/열린책들>은 저널리스트인 율라 비스의 책으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면역과 예방접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저자가 다양한 조사와 취재를 통해 면역과 예방 접종, 그리고 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더듬어 본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몸을 적절한 환경에서 다른 많은 미생물과 함께 균형을 이루어 살아가는 정원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몸의 정원에서 우리가 발견할 것은 자기가 아니라 ‘타자’라고. 면역은 공유된 공간이자 모두가 함께 가꾸는 정원과 같다고 말한다. 무슨 뜻일까?

저자는 우선 인간이 자기 피부라는 경계를 두고 한 몸에 담겨 깃들어 산다는 오늘날의 믿음이 개인을 찬양했던 계몽주의 사상에서 생겨났음을 짚는다. 그러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질적으로 깨끗한 존재가 되지 못하며 자기 몸의 세포보다 더 많은 수의 미생물을 장 속에 품고 있으며 각종 세균으로 우글거리는 존재이자 화학물질로 포화된 존재이며 지상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악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존재로 이해한다면, 우리를 보호한다고 여겨지는 면역계는 그 중요성이 부풀려지고 기능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미생물이 우리를 이용하는 것 못지않게 우리도 미생물을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 몸에는 자기보다 타자가 더 많이 담겨 있으며 결국 면역 또한 상호 관계, 상호 의존의 문제라는 말이다. 서로가 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되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면역의 정원일 것이다.

빌 브라이슨 <바디-우리 몸 안내서>, 소니아 샤 <바이러스의
위협>
빌 브라이슨 <바디-우리 몸 안내서>, 소니아 샤 <바이러스의 위협>

여기 또 우리 몸의 면역에 관해 친절히 설명해줄 한 사람이 있다. 방대한 양의 지식을 매번 놀라울 만큼 재미있게 들려주는 스토리텔러, 빌 브라이슨. 그가 이번에는 우리 몸을 들여다보자고 이야기를 잔뜩 들고 왔다. <바디-우리 몸 안내서/까치>는 인간이 몸의 생물학을 이해하고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의 역사들로 가득하다. 각 파트 별로 몸 전체를 훑고 있지만 오늘은 그중 면역계와 질병에 관해 집중해 들여다보자. 빌 브라이슨은 우리가 이따금 병에 걸린다는 것이 아니라 병에 자주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말한다. 인체에 침입하는 병원체는 많이 있으며 그들 중 상당수는 매번 우리 몸에 침입할 새로운 방법들을 창안하고 있다고. 그러나 우리 면역계 또한 무한히 많은 것들 을 파악하고 맞서 싸우고 있음 또한 확인시킨다.

책에 따르면 어떤 질병이 유행병이 될지는 네 가지 요인에 달려있는데 얼마나 치명적인지, 새 희생자를 얼마나 잘 찾는지, 격리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백신이 얼마나 잘 듣는지에 달려있다고 한다. 되레 너무 강력한 바이러스는 전파되기도 전에 희생자를 죽이기 때문에 독감처럼 희생자를 잘(?) 죽이지 않으면서 잠복기가 있고 널리 퍼질 수 있는 바이러스야말로 유행병이 되기 쉬우며 이때 모든 희생자는 감염의 매개체가 된다. 조유와 포유류의 바이러스 중 우리를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만 80만 종에 달한다고. 그러나 빌 브라이슨도 역시나 바이러스를 탓하기 전에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고 전하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스스로를 위협적인 바이러스에 노출시킨 면도 없지 않다고 말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농업혁명을 두고 ‘우리가 결코 복구하지 못한 대재앙’이라 표현했다. 빌 브라이슨 또한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농업혁명은 식단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 몇몇 주식 작물로 단순화해 식단을 빈약하게 만듦으로써 일부 영양소 부족에 시달리게 했고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늘 가까이에 두고 살다 보니 그들의 질병의 우리의 질병이 되었다고 본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에 큰 위협이 되었던 질병은 대부분 인수감염(zoonotic,동물에게 유래)으로 추정된다. 설득적이다. 관련서적을 좀 더 찾아보자.

과학 전문기자인 소니아 샤는 <바이러스의 위협/나눔의집>을 통해 역사 속에 존재했던 대 유행병을 쫓는다. 실제 콜레라의 발병을 목도한 그녀는 인류의 역사에서 새로운 병원체들이 어떻게 등장해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전파되는지 기자답게 직접 빈민가와 농축산물 시장, 외과병동 현장을 발로 뛰어 취재하고 많은 문헌 기록도 파헤쳤다. 그리고 그녀가 찾아낸 출발점은 우리 주변 야생 동물들의 몸속이었다. 2003년 사스(SARS- CoV)의 발병지는 중국 광저우의 야생 동물 시장이었다. 관박쥐 몸속에 있던 바이러스의 변종이 사람들을 감염시켰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도 야생 동물 시장의 박쥐에서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어로 박쥐가 ‘복(福)’과 발음이 비슷해서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복을 기원하며 박쥐고기를 먹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박쥐가 역사적으로 인간을 집단적으로 위협에 빠뜨린 바이러스의 훌륭한(?) 매개 역할을 해왔는데 수백만 마리씩 군집을 이루어 사는 데다 수명도 길고 날개가 있어 이동 거리도 넓다. 게다가 박쥐의 면역 체계는 특이한데 다른 포유류와 달리 골수에서 면역 세포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는 곧 광범위한 미생물들의 숙주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은 박쥐와 가까이 살지 않았다. 칼 짐머도 지적했듯이 습지에 아스팔트가 덮이고 숲이 벌목이 됨에 따라, 서로 다른 종들이 전에 없이 장시간 접촉하게 되면서 동물성 미생물이 인체로 전파되었다. 소니아 샤는 야생동물 시장과 시장에서 파는 동물들의 다양성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인간과 조류, 가축 동물의 군집 규모가 커지는 한 계속해서 대 유행병의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바이러스 종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70퍼센트가 넘는 대다수의 병원체는 야생 동물에게서 온다. 저자는 근대 이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관을 스스로 제 머리 위에 얹고 세계와 과학을 지배해 왔으며 반자연적인 대량 사육 환경과 지나친 자연 착취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미생물은 어디에나 있고 앞으로도 언제든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는 찾아올 수 있다. 아니,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질병을 예방할 수 없다면 차선책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빨리 감지하고 협동해서 방어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교역과 비행을 통해 모든 것이 빠르게 전파된다. 질병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인 질병 감지 시스템을 강화하고 병원과 국가 간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열악한 나라에는 우선적으로 의료 서비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이 기반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만 보아도 초기 대응이, 의료시스템이, 정보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모두가 희생을 치르며 목도했다. 그러나 너무 겁내지도 말자! 이 순간에도 죽음의 공포와 맞서며 감염병과 바이러스를 이해하고 정복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있다. 이토록 숭고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는 한 인간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슬기롭게 잘 극복해 나갈 것이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며!

글 / 오서현 (oh-ko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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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서점 최연소 점장 출신으로 오랫동안 현장에서 책과 독자를 직접 만났다. 예리한 시선과 안목으로 책을 통한 다양한 기획과 진열로 주목 받아 이젠 자타공인 서적 전문가가 됐다. 북큐레이터로서 책으로 표출된 저자의 메세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 '오쿱[Oh!kooB]'이라는 개인 브랜드를 내걸고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관계를 연결하려 한다(oh-koob@naver.com). 새로운 형태의 '북-네트워크'를 꿈꾸며 서평, 도서 추천, 북클럽 운영, 북 콘서트MC, 서재(공간) 기획, 출간 기획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리 / IT동아 남시현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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