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흥망사] '까르푸' 기억하세요? 한국에서 실패한 글로벌 유통 공룡

김영우 pengo@itdonga.com

국내에 진출한 해외 대기업을 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나뉜다. 선진형 비즈니스를 국내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을 초토화시키려 하는 ‘점령군’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결론은 해당 기업이 국내에서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와 관련,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계 유통 브랜드이자,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에서도 10여 년간 대형마트 사업을 했던 '까르푸(Carrefour)'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까르푸(Carref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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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푸(Carrefour) 로고

최초의 하이퍼마켓 까르푸, '대형마트'의 개념을 정립하다

프랑스어로 '교차로'를 의미하는 까르푸(Carrefour)의 역사는 1958년, 마르셀 푸르니에(Marcel Fournier)가 파리 외각에 처음으로 매장을 연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63년에는 드니 포레(Denis Defforey), 쟈크 드포레(Jacques Defforey) 등과 힘을 합쳐 기존 슈퍼마켓을 능가하는 규모의 이른바 '하이퍼마켓' 개념 매장을 창업했다. 식료품부터 의류, 잡화,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소매품을 취급했고, 창고형 대형 매장의 장점을 살려 저렴한 값에 제품을 판매했다. 이를 통해 현대적 의미의 대형 마트가 본격화된다.

1963년 파리 근교에 문을 연 까르푸 매장의
전경(출처=까르푸)
1963년 파리 근교에 문을 연 까르푸 매장의 전경(출처=까르푸)
< 1963년 파리 근교에 문을 연 까르푸 매장의 전경(출처=까르푸)>

프랑스 대형마트 시장을 평정한 까르푸는 해외 진출도 본격화했다. 유럽 각국은 물론, 북미 및 남미, 아시아까지 그 범위에 포함됐다. 한국 역시 그중 하나였다. 마침 한국 정부는 1990년대 들어 외국인 투자 개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었다. 까르푸 외에 코스트코(프라이스 클럽), 월마트 등 미국계 대형마트 체인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때도 이 무렵이다.

자신만만하게 한국에 상륙한 글로벌 거대 자본

까르푸의 지사인 한국까르푸는 1996년, 경기도 부천에 첫 번째 매장인 중동점을 열며 사업을 본격화했다. 까르푸는 한국 시장 성장세에 큰 기대를 걸고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했다. 산업자원부가 1999년에 발표한 외국인 투자 기업 현황에 따르면 한국 까르푸의 투자액은 9억 2500만 달러(약 1조 462억 원)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중 1위 규모였다.

2001년 오픈한 한국까르푸 시흥점(현재의 홈플러스
시흥점)
2001년 오픈한 한국까르푸 시흥점(현재의 홈플러스 시흥점)
< 2001년 오픈한 한국까르푸 시흥점(현재의 홈플러스 시흥점)>

이후, 까르푸는 서울에 5곳, 경기 / 인천에 8곳의 매장을 개점하는 등, 2002년까지 전국에 총 22곳의 대형 매장을 열었다. 전체 종업원 수는 5,500명에 달했으며, 경쟁업체 대비 최저가임을 특히 강조하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 미진했던 현지화

하지만 화려한 시작과 달리, 매출은 프랑스 본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한국까르푸가 설립된 1990년 중반에는 까르푸 외에 코스트코, 월마트를 비롯한 해외파 대형마트는 물론, 이마트, 롯데마트와 같은 토종 기업의 대형마트 브랜드도 운영을 본격화, 한국 시장을 무대로 대형마트 춘추전국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2006년을 전후한 한국까르푸의 매출액 및 경쟁사와의
비교(출처=동아닷컴)
2006년을 전후한 한국까르푸의 매출액 및 경쟁사와의 비교(출처=동아닷컴)

< 2006년을 전후한 한국까르푸의 매출액 및 경쟁사와의 비교(출처=동아닷컴)>

또한 1997년 말, 대한민국 경제를 뒤흔든 IMF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소비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이로 인해 한국 까르푸를 비롯한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이끌기 위해 저가 제품 위주의 출혈 경쟁을 해야 했는데, 이 역시 매출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와 더불어 1998년에는 한국까르푸가 340억 원에 달하는 부동산 매입자금을 해외로 밀반출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는 당시 IMF 외환위기 상황과 겹쳐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한국 시장의 특성을 고려한 현지화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화려한 인테리어에 익숙했던 당시 한국 소비자 취향과 달리 까르푸 매장은 창고형 매장 특유의 투박함이 남아있었다. 판매대 높이나 크기도 서양인 기준에 가까워서 한국인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 가공식품이나 공산품, 육류에 치중한 상품군을 지나치게 앞세운 반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곡류나 채소류의 종류나 품질은 미흡한 편이었다. 이는 특히 한국 토종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약점으로 작용했다.

'갑질'로 얼룩진 한국까르푸, 결국 철수

협력업체 및 사내 노동조합과의 관계가 특히 좋지 못했던 점도 문제였다. 최저가를 강조하기 위해 납품업체에게 지나친 단가 인하를 강요했다. 태도도 고압적이었다. 일부 납품업체가 한국까르푸에 납품을 거부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인건비를 낮추고 고용 부담을 덜기 위해 종업원의 상당수를 파견직으로 채웠다. 노조 관계자를 기피 업무로 배치해 압박하는 등의 사건도 종종 일어났다. 2013년에는 한국까르푸의 이러한 행태에 모티브를 얻어 재구성한 사회 비판 만화 '송곳(작가 최규석)'이 연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까르푸의 노사갈등을 모티브로 삼은 만화 '송곳(작가 최규석)'의 한
장면
한국까르푸의 노사갈등을 모티브로 삼은 만화 '송곳(작가 최규석)'의 한 장면
< 한국까르푸의 노사갈등을 모티브로 삼은 만화 '송곳(작가 최규석)'의 한 장면>

결국 2006년 4월, 한국까르푸는 자사의 사업을 이랜드 그룹에 매각하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당시 한국 내에서 운영하던 32개의 한국까르푸 매장은 이랜드 그룹 산하의 '홈에버'로 이름을 바꿔 운영을 이어가게 된다. 이랜드 그룹은 홈에버 매장을 4군데 추가로 오픈하는 등, 의욕적으로 사업을 전개했으나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8년 이랜드 그룹은 삼성물산과 영국계 유통업체 테스코의 합작법인인 '삼성테스코'에 홈에버를 매각했고, 이후 대부분의 홈에버 매장은 홈플러스로 바뀌었다. 그리고 홈플러스는 2015년 다시 한국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매각,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실패 기업' 한국까르푸가 남긴 것

까르푸는 지금도 글로벌 시장 정상을 다투는 대형마트 브랜드이며, 사실상 현대 대형마트 개념의 원조이기도 하다. 특히 한 군데서 대부분의 제품을 대량으로, 그리고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원스톱 쇼핑 개념을 처음 도입, 현대인의 생활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르푸의 해외 공략이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전 세계 30여 국에 진출, 유럽 및 대만, 남미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동남아시아 및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 등에서는 고전을 겪거나 철수한 바 있다.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불매운동을 겪기도 하는 등의 부침도 있었다. 아무리 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각 지역의 환경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으며, 각국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큰 손실을 보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한국까르푸의 경우, 철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매장을 추가 개장하는 등 몸집을 키웠으며, 10여 년간 부동산 가격도 크게 상승, 이랜드와의 매각 협상에서 몸값을 올리는데 한몫을 했다. 그 결과, 까르푸는 10여 년 동안 약 1조 원을 한국에 투자하여 1조 7500억 원 정도에 한국지사를 매각, 결과적으로 상당한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한국까르푸 자체는 실패한 기업이었으나 까르푸 본사 입장에선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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