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달아 설립되는 게임 업계 노조... 이유는 크런치 모드와 불안정한 고용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예전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났지만, 이제는 중들이 절에서 싫었던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다. 국내외 IT 기업과 게임 기업에 노동조합이 하나둘씩 설립되고 있는 것에 관한 얘기다.

국내 최대의 게임 개발사들인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했다. 국내 게임사 가운데 최초이고, 국내에 진출한 해외 게임사까지 포함하면 두 번째로 설립되는 노동조합이다.

지난 3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넥슨지회는 노조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고 공식 활동에 나섰다. 넥슨코리아와 그 자회사(넥슨네트워크, 넥슨GT)에 소속된 노동자들이 가입 대상이다. 이어 5일에는 스마일게이트 노조가 설립됐다. 스마일게이트의 노조인 'SG길드' 역시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산하다.

넥슨
넥슨

넥슨 노조는 설립 선언문을 통해 "국내 게임산업은 한해 시장 규모는 12조 원대로 급성장했지만, 정작 게임을 만드는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포괄임금제라는 명목으로 야근과 크런치모드(게임 출시를 앞두고 고강도 근무체제를 유지하는 것)가 일상화되었다"며, "노동조합을 설립함으로써 게임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4일까지 넥슨 노조에 가입한 직원은 400명에 달한다. 설립 후 불과 이틀만에 넥슨 계열사 전체 직원 10명 가운데 1명이 노조원으로 가입한 것이다.

이러한 넥슨 노조의 움직임을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라는 같은 산별 노조에 가입한 네이버 노조도 지지하고 나섰다. 4일 네이버 노조는 지지선언문을 통해 "즐거움을 만드는 게임 회사가 정작 구성원인 노동자들의 삶을 크런치 모드라는 미명하에 빼앗고 있다"며, "노동조합이 성장해야 사측과 대등한 입장에서 근무환경을 두고 논의를 할 수 있다"고 넥슨 직원들의 노조 참여를 독려했다.

실제로 네이버 노조는 넥슨 노조 설립에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설립 및 운영 방식부터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전략까지 넥슨 노조의 운영 위원들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5일에는 스마일게이트의 직원들이 노조 설립 선언문을 발표하고 사내 노조인 SG길드를 설립했다. SG길드는 선언문을 통해 "회사는 매년 높은 매출을 내고 있지만, 직원들의 임금은 변화가 없다. 포괄임금제라는 명목하에 공짜 야근을 강요하고 있다"며, "게임 업계에 만연한 크런치 모드를 워라밸 모드로 바꾸고, 게임 프로젝트 실패에 따른 책임을 모두 개발자에게 전가하는 '접히면' 이직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고 전했다.

네이버,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은 KT 등이 가입한 한국노총 IT사무서비스 연맹 대신 민주노총 산하로 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택했다. 다소 친기업적인 행보를 보이는 한국노총보다 노동자의 권리챙취에 초점을 맞추는 민주노총이 현 상황을 타개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오라클 노조와 같이 근로 환경 및 임금을 두고 사측과 장기간 대치 중인 노조 역시 민주노총 산하로 설립된 상태다.

스마일게이트
스마일게이트

넥슨, 스마일게이트 노조의 현재 목표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포괄임금제 폐지다. 현재 넥슨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게임 기업들은 야근 등 시간외 근로수당을 실제 근무시간과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임금에 포함해서 지급하는 포괄임금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펄어비스, 웹젠 등 일부 게임 기업만이 포괄임금제 대신 시간외 근로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포괄임금제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포괄임금제를 악용함으로써 게임 업계에 야근과 크런치모드가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게임 수명주기가 긴 PC나 온라인 게임에서 게임 수명주기가 짧은 모바일 게임으로 시장의 대세가 변하면서, 게임 업체들은 수익을 내기 위해 짧은 시간내에 최대한 많은 게임을 출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취하면서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게임 개발자들을 말 그대로 갈아넣는 '크런치 모드'가 일상화되었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면 시간외 근로수당에 대한 부담 때문에 회사가 크런치모드를 상시 활성화할 수 없고, 게임 개발자들의 저녁있는 삶도 보장될 것이란 설명이다.

두 번째는 고용안정성 확보다. 과거 게임 업계는 특정 게임 프로젝트 성공에 따른 높은 보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대가로 고용안정성은 형편없었다. 진행 중이던 게임 프로젝트가 망하면 관련 개발자도 짐을 싸서 다른 회사로 떠나는게 관례일 정도였다. 업계용어로 이를 '접혔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그래도 성공에 따른 높은 인센티브 때문에 참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 시장이 성숙하면서 이러한 큰 성공은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성공에 따른 과실도 임원 등 경영진이 독차지하고 실제로 게임을 만든 개발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노조측의 주장이다. 노조측은 이제 이러한 프로젝트 기반의 고용 환경을 타파하고 게임 개발사도 안정적인 직장으로서 안정된 고용을 제공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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