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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흥망사] 위대한 실패작, 'IBM PC'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은 1911년 설립된 미국 기업이다. 설립 초창기에 천공카드를 이용한 데이터처리기기, 계량기, 타자기 등에 관련된 사업을 하다가, 1940년대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전자 회로기반 컴퓨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1952년, IBM은 자사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인 'IBM 701'을 출시했으며, 1964년에는 현대적인 메인프레임(mainframe. 기업용 대형 컴퓨터)의 기반을 확립한 'System/370'를 내놓아 컴퓨터 산업의 선두주자로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IBM 로고

대형 컴퓨터 시장을 석권한 IBM이 다음으로 눈독을 들인 건 가정용 컴퓨터 시장이었다. 1980년을 전후의 가정용 컴퓨터 시장은 애플II, 코모도어64, MSX 등 다양한 규격의 제품이 혼전을 벌이는 상태였다. 애플II와 같이 꾸준하게 팔리며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한 기종도 있었으나, 이보다는 출시 얼마 지나지 않아 단종되거나 소프트웨어 지원이 중단되는 제품이 더 많았고, 품질이나 성능이 불만족스러운 제품도 많았다. 게다가 각 규격의 컴퓨터 사이에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의 호환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비자들은 도대체 어떤 컴퓨터를 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했다.

가정용 컴퓨터의 표준이 된 'PC'의 등장

이런 상황에서 IBM은 1981년에 'IBM 퍼스널컴퓨터(Personal Computer) 5150'를 발표했다. 흔히 'IBM PC'라고 부르던 이 제품은 독자적인 아키텍처(기반 기술)를 강조하던 기존의 컴퓨터와 달리,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범용성이 높은 부품(인텔의 CPU 등)을 위주로 하드웨어를 구성했다. 덕분에 부품의 교체 및 외부기기의 확장이 자유로웠다.

1981년에 출시된 IBM 퍼스널컴퓨터 5150(출처 IBM)

운영체제 역시 IBM 자체 개발제품이 아닌 외부 업체의 것을 선택해서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이 쓰인 것이 PC-DOS 운영체제였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납품한 것이었다. PC-DOS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중에서 판매하는 MS-DOS와 거의 같았고, MS-DOS가 사실상 업계 표준 운영체제가 되면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IBM PC에서 구동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IBM PC가 좋은 평가를 받은 후, IBM은 후속 모델인 ‘PC XT(1983년)’, ‘PC/AT(1984)’ 등을 연이어 히트 시키며 사실상 가정용 컴퓨터 시장의 표준이 된다. 이를 통해 'PC(Personal Computer)'라는 이름 역시 특정 업체의 상품명이 아닌, 가정용 컴퓨터 전반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쓰이게 된다.

'IBM 호환 PC'에 밀리게 된 'IBM PC'

하지만 전체 PC 시장이 커질수록 IBM의 영향력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IBM PC 특유의 높은 개방성과 범용성 때문이었다. IBM PC는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범용 부품으로 구성된 탓에 IBM 외의 업체들도 어렵지 않게 거의 비슷한 PC를 제작할 수 있었다. CPU는 인텔에서 공급받고, 운영체제 역시 어디서나 팔리는 MS-DOS를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특히 미국 컴팩(Compaq) 같은 업체들은 리버스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기존 제품을 분석해 구동 원리를 알아냄)을 통해 IBM PC의 핵심인 바이오스(BIOS, 데이터의 입출력을 관장하는 펌웨어)까지 거의 완벽하게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IBM PC/AT와 거의 완전히 호환되는 PC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러한 ‘IBM 호환 PC’는 원조 IBM PC보다 저렴한데다 제품 종류도 다양해 큰 인기를 끌었고, 심지어 IBM보다 먼저 신형 CPU를 탑재한 IBM 호환 PC가 출시되는 일도 있었다. 원조 IBM PC가 오히려 IBM 호환 PC에 압도당하게 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IBM은 1987년 신형 PC인 ‘PS/2’를 출시하며 독자적인 규격의 신형 하드웨어를 다수 탑재했다. 운영체제 역시 PC-DOS 외에 자사에서 자체 개발한 OS/2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OS/2는 그래픽 기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춘 획기적인 운영체제였으며, 고성능을 갖춘 PS/2의 하드웨어에서 최적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넘어간 주도권, 쓸쓸한 철수

하지만 이미 시장은 PC/AT 기반의 IBM 호환 PC가 점령한 상태였고, 각종 소프트웨어나 주변기기 역시 PC/AT, 혹은 그 호환 PC용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IBM PS/2는 오히려 호환성 면에서 불편하다는 평을 들어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았으며, 함께 등장한 OS/2 운영체제 역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IBM의 노트북이었던 '씽크패드' 시리즈. 현재 레노버에서 판매하고 있다(출처 레노버)

1994년부터 IBM은 다시 PC/AT 기반의 PC를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PC 시장의 주도권은 CPU를 만드는 인텔, 그리고 운영체제 공급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IBM의 PC 사업은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IBM의 PC 시장 점유율은 한자릿수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였다. 결국 2005년, IBM은 자사의 PC 사업부를 중국의 레노버(Lenovo)에 매각, PC 시장에서 철수하게 된다.

앞으로 다시 없을 '위대한 실패작'

IBM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 및 혁신을 통해 컴퓨터 산업의 여명기를 개척했으며, 오늘날 전세계에서 널리 이용하는 PC의 기본적인 구조 및 개념을 확립한 선구자였다. 특히 IBM PC의 경우, 범용성과 개방성을 무기로 가정용 컴퓨터의 표준화 및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고, 다양한 PC 관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만, 자신이 개척한 시장에서 오히려 주도권을 빼앗기고 결국은 물러나게 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얄궂은 일이다. ‘죽 쑤어 개 준다’라는 한국 속담이 이렇게도 잘 어울리는 사례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IBM이 실패한 기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PC 사업부를 분리한 IBM은 메인프레임,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의 미래산업에 집중하여 한층 건실한 기업으로 재도약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남긴 유산인 PC는 수 많은 기술자들의 손을 거치며 한층 강력해지고, 더욱 편리한 물건이 되었다. IBM PC는 앞으로 다시 없을 '위대한 실패작'임이 분명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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