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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흥망사] 추억으로 남은 온라인 문화의 고향, PC통신 하이텔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한국에 WWW(World Wide Web)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된 건 1994년의 일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쓰지 않던 시절에도 PC 네트워크를 이용한 정보 교환 서비스는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PC통신’이다. 이는 전화망을 기반으로 접속하는 VT(Virtual Terminal) 서비스로, 게시판이나 메일, 동호회, 자료실 등을 제공하는 등, 오늘날 인터넷(WWW)과 유사한 면이 있다.

다만, 전화 모뎀의 통신속도는 1980년대까지 1200~9600bps 정도에 불과했으며, 1990년대에는 최대 56000bps까지 향상되었지만, 이 정도의 속도로 이미지나 동영상 기반의 서비스를 원활히 제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리고 당시의 PC 성능으로 고품질 그래픽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도 힘들었기 때문에 PC통신은 거의 텍스트 기반으로 서비스했다.

하이텔
<PC통신 하이텔의 메인 화면>

게시판에 들어가 게시물을 읽으려면 해당 게시물의 번호를 직접 입력해야 하고, 특정 게시물의 제목에 들어간 단어를 검색하려면 ‘LT 대한민국’ 식으로 입력해야 하며, 특정 동호회나 게시판으로 이동하려면 ‘GO KGA’라고 입력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때문에 PC 통신을 이용하려면 각종 명령어를 외우는 것이 필수였다. 그래서 이런 각종 명령어를 자동으로 입력해 주거나 마우스 클릭으로 게시물을 읽게 해주는 등의 편의 기능을 갖춘 ‘이야기’나 ‘새롬데이터맨’ 등의 PC통신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이 유행하기도 했다.

1988년 출범한 한국 최초의 PC통신

1990년대에 국내에서 인기를 끌던 PC통신 서비스로는 ‘하이텔(한국통신)’, ‘천리안(데이콤)’, ‘나우누리(나우콤)’, ‘유니텔(삼성SDS)’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후발주자로는 ‘채널아이(LG인터넷)’, 넷츠고(SK텔레콤)’ 등이 있었다. 이 중에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바로 한국통신(현재의 KT)의 하이텔(HiTE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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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소개된 당시 PC통신 이용자의 모습(출처=1992년 6월 3일자 동아일보)>

하이텔의 전신은 1988년에 시작된 케텔(KETEL)이었다. 케텔은 한국경제신문에서 처음 개발했으며, 뉴스, 게시판, 동호회, 채팅 등의 본격적인 서비스를 제공한 한국 PC통신 서비스의 원조다. 그러나 케텔은 무료 서비스였기 때문에 점차 운영난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케텔은 1991년, 한국통신이 설립한 PC통신 서비스 업체인 ‘한국PC통신(현 케이티하이텔)’에 인수되어 1992년 3월에는 ‘코텔(KOTEL)’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만, 한국PC통신의 모기업인 한국통신은 한국PC통신이 붙인 코텔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으며, 기존 케텔 이용자들 역시 ‘코털’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이 이름에 거부감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같은 해 7월, 코텔은 ‘하이텔(HiTEL)’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후부터 계속 이 이름을 쓰게 된다.

촛불시위의 원조가 된 케텔 이용자들..하이텔은 전성기에

케텔이 코텔로, 그리고 하이텔로 바뀌면서 기존 이용자들이 반발한 이유는 서비스 이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국PC통신은 케텔을 인수하면서 본래 무료 서비스였던 케텔을 유료화(가입비 10,000원, 월 요금 9,900원) 한다고 발표했다. PC통신은 전화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쓰는 쓰는 양 만큼 전화요금을 내야한다. 여기에 월 서비스 이용료까지 부과한다고 하니 이용자의 부담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PC통신은 요금을 반드시 신용카드로만 내야 한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는데, 당시 케텔 이용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던 학생들이 이에 크게 반발했다.

이에 이용자들은 한국PC통신 본사 앞에서 수개월간 촛불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한국PC통신은 이용자들의 일부 요구를 받아들여 가입비를 일정기간 동안 면제하고 요금 수납 방식을 다양화 하는 등의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케텔(하이텔) 이용자들의 벌인 시위는 공식적으로 기록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촛불시위이기도 하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정식 출범한 하이텔은 당시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PC통신을 하고싶어도 PC가 없어 아쉬워하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한국통신은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전화국(현재의 KT 지사)를 통해 하이텔 전용 단말기를 무료 대여해 주기도 했다. 하이텔 단말기는 모니터와 키보드, 모뎀 등을 갖춘 일종의 간이 컴퓨터로, 파일 다운로드(자료실)와 같은 일부 서비스를 제외한 하이텔 서비스의 이용이 가능해 인기를 끌었다.

하이텔
<한국통신에서 무료 대여해 주던 하이텔 단말기, 나중에는 프린터 옵션도 추가된다>

하이텔은 서비스 본격화 1년이 지난 1993년에는 가입자 수가 10만명을 돌파했으며, 전성기인 1996년에는 10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메인 게시판인 ‘큰마을(GO PLAZA)’에서는 각종 사회 이슈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벌여져 언론도 이에 주목했으며, ‘대화방(GO CHAT)’을 통해 모니터 너머의 다양한 사람들이 인연을 맺어 친구, 혹은 연인이 되기도 했다.

특히 하이텔은 각종 동호회가 크게 활성화 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게임 동호회인 '개오동(GO KGA, 속칭 개털오락동호회)', 자동차 동호회인 '달구지(GO DALGUJI)’, 아마추어 무협 소설가들의 장이었던 '무림동(GO MURIM)'등, 수많은 동호회가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각종 기업 및 공공기관, 정당 등이 하이텔 내에 자사의 포럼을 설립하는 등, 그야말로 성황을 이뤘다.

이 당시 하이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몇몇 이용자는 나중에 크게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하이텔문학관(GO LITER)를 통해 이영도(대표작: 드래곤 라자), 이우혁(대표작: 퇴마록)등이 자신의 작품을 연재했으며, 국내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인 안철수 역시 하이텔을 통해 V3 소프트웨어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하이텔 우스개 게시판(GO HUMOR)에서 재치 있는 수필로 유명해진 김유식(DC인사이드 설립자)등의 인물도 있었다. 하이텔이 유명해지면서 1999년, 한국PC통신은 기업명을 '한국통신 하이텔(KTH)'로 바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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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 연재 작품임을 강조한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 책 표지. 출처 황금가지>

인터넷의 거센 물결 앞에 구닥다리로 전락한 PC통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WWW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화되고, 전화 모뎀보다 훨씬 빠르게 데이터 통신을 할 수 있는 초고속 인터넷 회선이 보급되면서 PC통신 서비스는 빠르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2000년대 초에 후발주자인 채널아이, 넷츠고 등은 서비스를 접고나 인터넷 포탈 서비스에 합병되었다.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도 서비스를 축소하거나 인터넷 포털 서비스로 전환을 시도했으나, 존재감을 거의 상실했다.

하이텔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인터넷을 하는 감각으로 하이텔을 이용할 수 있는 그래픽 기반 에뮬레이터 프로그램인 '이지링크', '하이텔2000' 등을 배포하며 이용자들에게 어필하기도 했지만,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고 이용자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이 즈음에는 전화선이 아닌 초고속인터넷 회선으로 PC통신에 접속하는 이용자들도 크게 늘어났는데, 이는 전화접속 요금으로 큰 수익을 올리던 한국통신(KT) 및 하이텔 입장에선 적자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2004년, 한국통신 하이텔(KTH)은 기존에 운영하던 인터넷 포털 서비스인 ‘한미르’와 PC통신 서비스 하이텔을 통합한 새로운 포털 서비스 '파란(Paran)'을 오픈했다. KTH는 파란을 출범한 이후에도 기존의 VT기반 하이텔 서비스를 한동안 유지했으나, 2007년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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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하이텔 VT서비스 종료를 즈음해 발표한 공지사항>

KTH는 기존 하이텔의 주요 서비스(게시판, 동호회 등) 중 상당수를 웹 환경 기반으로 재구성해 파란에 이식하고자 했으나, 이용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무엇보다 2004년 당시는 이미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신흥 강자들이 인터넷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규 이용자들이 굳이 파란을 이용할 이유는 없었다. 차별화에 실패한 파란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다가 2012년, 결국 서비스를 종료하게 된다. 이후, KTH는 IPTV용 콘텐츠 공급사업, 인터넷 결제 서비스, 모바일 앱 개발 사업 등을 하며 2018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선명한 흔적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의 하이텔을 비롯한 PC통신 서비스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자, 정보의 요람이며, 소통의 장이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PC통신이라는 첨단기술에 감탄했으며, 이를 통해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상 역시 실감할 수 있었다. 혼자서 즐기는 전문가의 기기라는 인상이 강했던 PC가 모두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정보 개방의 상징이 된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인터넷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PC통신의 장점은 오히려 단점으로 변질된다. 개방성이나 연결성, 접근성은 물론, 정보의 방대함 역시 인터넷이 PC통신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이텔을 비롯한 PC통신 업체들은 인터넷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잘 나갔던 시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웹 환경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결국은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PC통신의 시대는 끝났지만, 2018년 현재까지 쓰이고 있는 인터넷 문화(각종 용어, 이모티콘 등)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비롯되었으며, 하이텔이 배출한 상당수 유명인들은 지금도 사회의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도태된 서비스임은 분명하지만, 이 사회에 남긴 흔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셈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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