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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흥망사] 고객에겐 천국, 직원에겐 지옥... 세진컴퓨터랜드 흥망사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1990년대는 이른바 정보화시대로 가는 3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시기였다. 휴대전화 및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통신수단이 본궤도에 올랐으며,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률 또한 급속히 높아졌다. 이 시기를 즈음해 다양한 IT 관련 업체들이 출현했고, 그 중 일부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과시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국 곳곳에 대형 매장을 갖추고, 평생 무상 수리라는 파격적인 서비스까지 제공했던 컴퓨터 유통업체, '세진컴퓨터랜드'도 그 중의 하나였다.

세진컴퓨터랜드의 주력 제품 중 하나였던 '세종대왕' 시리즈<세진컴퓨터랜드의 주력 제품 중 하나였던 '세종대왕' 시리즈>

1990년대 당시 국내 컴퓨터 유통 시장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상당수 중소 컴퓨터 매장은 좁고 불친절한데다, 관련 정보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고객을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대기업의 직영 매장을 이용하면 그나마 나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사양 대비 제품 가격이 폭리 수준으로 비싼데다 제품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했다.

초유의 백화점식 전국 매장, 고객 중심의 서비스로 호평

1991년, 부산 서면의 지하상가에 컴퓨터 매장을 오픈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한 한상수 대표는 1992년에 컴퓨터 종합 유통 업체인 세진컴퓨터랜드를 설립했다. 이후, 서울, 부산, 경기, 대구, 울산 등 전국 곳곳에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백화점식 컴퓨터 매장을 연이어 오픈하며 업계에 충격을 줬다.

세진컴퓨터랜드 신문 광고<세진컴퓨터랜드는 매년 몇 개씩 신규 매장을 오픈하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세진컴퓨터랜드의 강점은 단순히 크고 깔끔한 매장만이 아니었다. 철저한 친절 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이전의 컴퓨터 매장에선 볼 수 없던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했다. 넒은 매장 곳곳에 고객들이 제품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연용 제품을 다수 배치했으며, 고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수 호객행위도 일절 하지 않았다. 이러한 고객 친화적인 분위기 덕분에 당시 청소년들은 방과 후에 컴퓨터를 즐기러 세진컴퓨터랜드 매장을 종종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일부 컴퓨터 매장들은 성능이 낮은 부품을 고성능 부품인 것처럼 속여 팔거나, 관련 지식이 없는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등의 행패를 부리기도 했는데, 세진컴퓨터랜드는 모든 제품에 정찰제를 도입해 이런 병폐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는 당시 컴퓨터 시장 기준으로 대단히 혁신적인 시도였다. 또한 자사 고유 브랜드의 제품을 생산/출시하고 거의 상시적으로 할인 행사를 실시해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세진컴퓨터랜드 신문 광고<세진컴퓨터랜드는 무상수리, 평생 A/S, 무료교육 등, 파격적인 서비스를 다수 제공했다>

그 외에도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품 무상수리나 평생 A/S와 같은 파격적인 서비스도 내세웠다. 그리고 당시 빈약했던 컴퓨터 교육 인프라를 보강하기 위해 매장 내에 무료 컴퓨터 교실을 운영하는 등의 정책으로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공격적 마케팅, 업계 빅3로 부상한 세진컴퓨터랜드

홍보 및 마케팅 역시 공격적이었다. 무상수리, 평생 A/S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원래 주인 곁으로 되돌아온 진돗개의 사례를 참조한 광고, 무료 컴퓨터 교실을 홍보하기 위해 '문맹 탈출은 세종대왕, 컴맹 탈출은 세진컴퓨터랜드'라는 주제의 광고등을 방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진컴퓨터랜드 TV 광고 '진돗개'편<1996년, 세진컴퓨터랜드는 평생 A/S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진돗개' 광고를 방영했다>

이러한 공격적인 경영에 힘입어 세진컴퓨터랜드는 1996년, 전국 57개의 직영매장을 확보하고 한 해 동안 10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판매하는 등의 저력을 과시했다. 창업 4년만인 1996년, 매출액 기준으로 대기업인 삼성전자, 전통의 강호인 삼보컴퓨터에 이은 국내 3위 수준의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다.

무리한 차입경영, 강압적인 직원관리 끝에 찾아온 위기

하지만 이러한 급성장을 하는 한편으로는 불안요소도 커지고 있었다. 공격적인 매장 확대와 홍보 마케팅을 하기 위해선 당연히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고, 세진컴퓨터랜드는 이를 위해 막대한 부채를 무릅썼다. 돈을 빌려서 매장을 확대하고,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와서 매출을 올린 뒤, 이를 기반으로 다시 매장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사업을 지속했다. 당연히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997년 SBS 8시 뉴스<세진컴퓨터랜드의 창업자인 한상수 대표(출처=1997년 SBS 8시 뉴스)>

경직된 기업문화 역시 세진컴퓨터랜드의 불안요소 중 하나였다. 특히 세진컴퓨터의 창업자인 한상수 대표는 탄광 광부, 택시기사, 막노동 등의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자신의 힘으로 기업을 일으킨 입지전적의 인물이자, 저돌적인 추진력을 갖춘 카리스마적 경영자였다. 또한, 당시 세진컴퓨터랜드는 업계 최고 수준의 급여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치 군대를 연상시키는 강압적인 직원 교육을 강요하는 등, 지극히 권위적인 기업 운영방침 때문에 직원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한상수 대표의 임의적인 방침으로 인한 인사 이동이 잦았으며, 조직원 간의 의사소통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도 드러냈다. 한상수 대표의 즉흥적인 결정에 따라 갑자기 전 직원을 다음날 새벽에 집합시키기도 하고, 일괄적으로 전 직원의 급여를 인상한다고 발표했다가 다음날 취소하기도 하는 등의 소동도 있었다.

기업 운영에 필수적인 협의 및 토의가 제대로 이루어지 못하고 최고 경영자의 독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이런 경영 형태는 기업의 규모가 커질 수록 문제를 드러냈다. 고객들에겐 천국이지만, 직원들에게는 지옥인 곳이 바로 세진컴퓨터랜드라는 농담이 공공연하게 통할 정도였다. 무리한 차입경영에 직원들에게 안정감을 제공하지 못하는 운영방침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진컴퓨터의 위기는 현실화 되고 있었다.

악재의 연속, 결국 공중분해 된 세진컴퓨터랜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부도위기에 몰린 세진컴퓨터랜드는 1997년 2월, 대기업이었던 대우통신에 인수되었고, 한상수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세진컴퓨터랜드를 인수한 대우통신은 과감한 인력 감축과 부서정리를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컴퓨터 시장은 과도한 가격 경쟁 때문에 마진율이 한 자릿수에 그칠 정도로 레드오션화 된 상태였다. 게다가 전국 직영 매장이 70여개, 협력 매장이 수백 개에 이를 정도로 커져버린 세진컴퓨터랜드를 정상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7년 말, IMF 외환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경제 전체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2000년에는 대우통신이 속한 대우그룹 전체가 사실상 공중분해 되기에 이른다. 세진컴퓨터랜드 역시 같은 해 7월 부도를 냈으며, 9월에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파산 당시, 세진컴퓨터랜드의 자산은 784억원 수준이었으나 부채 규모는 그 6배에 달하는 4,800억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합리적인 경영과 높은 수준의 고객서비스를 양립해야 한다는 과제

세진컴퓨터랜드는 1990년대 IT 산업의 호황 및 컴퓨터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초고속으로 사세를 확장, 국내 컴퓨터 유통업계의 전설로 떠올랐던 기업이다. 특히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백화점식 대형매장 및 고객중심의 서비스, 그리고 저렴한 제품 가격을 앞세워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곧 자금 압박으로 이어졌으며, 강압적인 기업문화로 인한 직원들의 불만누적은 기업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더해 오너의 직감과 카리스마에만 지나치게 의존한 주먹구구식 경영은 결국 파국을 부르고 말았다.

세진컴퓨터랜드의 로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진컴퓨터랜드가 국내 시장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의 물건이라는 인상이 강했던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들에게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숙한 존재로 자리매김 하는데 한 몫을 했다. 또한, 불친절과 바가지가 공공연하게 벌어지던 과거 컴퓨터 시장의 행태에서 탈피, 국내 컴퓨터 소비자들이 진짜 '고객'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 시발점이기도 하다. 세진컴퓨터랜드의 흥망성쇠는 합리적인 경영과 높은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양립하고자 하는 현대의 경영자가 여러가지 의미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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