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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Reality Story] 심경보 학예사 "VR은 박물관도 움직이게 한다"

강형석

[IT동아 강형석 기자] 우리에게 '박물관'은 어떤 존재일까? 누군가에게는 기분을 전환시키는 지적 휴식 공간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취미의 영역일 수도 있다. 자녀가 있는 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목적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본다면 한 공간 안에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 안에 있는 '콘텐츠'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박물관이라는 시설이라 하겠다.

박물관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딱딱하고 지루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 그 공간은 즐기는 것이 아닌 단순한 배움의 터 또는 정해진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기계처럼 콘텐츠를 소화하는 장소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시간을 죽이는 공간이 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한 번은 갈지언정 그 다음은 꺼려지게 되는 시설로 인식된다.

이를 박물관도 모를 리 없기에 다양한 시도로 방문객을 늘리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히 전시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관람객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고 자연스레 전시를 체험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를 준비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경기도 연천에 소재한 전곡선사박물관이 그 중 하나다. 이 곳에서는 지난 5월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개최되는 연천 구석기 축제를 맞아 박물관 내에 시범적으로 가상현실(VR) 콘텐츠를 도입, 관람객들에게 시연했다. 기자도 지난 5일, 전곡선사박물관을 찾아 가상현실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변화하는 박물관의 전시 풍경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심경보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사.

단순히 한 자리를 차지해 관람객들에게 시연하는 가상현실 콘텐츠지만 이를 도입하는 데에는 전곡선사박물관과 경기도콘텐츠진흥원(이하 경콘진)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심경보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사를 만났다.

박물관은 늘 '콘텐츠'에 목마르다

"박물관 일선에서 가상·증강현실(VR·AR) 외에도 미디어 파사드 등 콘텐츠에 대한 요구는 늘 있었습니다. 방문해주시는 관람객들의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박물관 내 콘텐츠는 한 번 두면 대부분 오래가는 구조입니다. 재방문율을 높여야 하는 박물관 입장에서는 항상 요구는 있지요."

오랜 시간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구조로 운영되는 박물관은 특성상 콘텐츠 하나를 기획하면 4~5년 이상을 운영하게 된다는 것이 심경보 학예사의 설명. 같은 콘텐츠가 오랜 시간 유지되니 자연스레 관람객이 다시 찾는 재방문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한 번 감상한 콘텐츠를 여러 번 와서 감상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콘텐츠를 도입한 이유도 단순히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해 보자는 생각에 도입한 것이 전곡선사박물관에 마련된 가상현실 콘텐츠 '인류진화의 위대한 행진'이다. 크게 시네마틱, 인터랙티브 부문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체험 가능한 전시(시네마틱)와 이를 바탕으로 한 교육(인터랙티브)이라는 목적을 융합한 형태였다.

위지윅스튜디오의 전곡산서박물관 콘텐츠

이 콘텐츠가 도입되는 데에는 기관과 기업의 노력이 주요했다. 경콘진은 지난해 7월 진행한 '경기 VR/AR 창조오디션'을 통해 컴퓨터 그래픽 기반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위지윅스튜디오를 발굴했다. 동시에 NRP(Next Reality Partner)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전곡선사박물관과 연을 맺었다.

위지윅스튜디오와 한국외대가 콘텐츠 개발을 위해 손을 잡고, 전곡선사박물관은 콘텐츠와 시설 운영 및 제작에 필요한 자문·감수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지난해 10월 경에 제작을 마쳤고 세부 수정을 지속적으로 거치면서 이번 행사에 시연할 수 있게 되었다는게 심경보 학예사의 설명.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심경보 학예사는 고인류의 형태를 구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걸음걸이나 목소리를 구현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한다. 관련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린 것도 이 과정에서 발생한 시행착오로 인한 것이라고. 때문에 박물관 내 전문가는 물론 EBS와 BBC 등의 다큐멘터리 영상들까지 모두 동원해 어느 정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이 선사시대를 구현한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노력에 대한 결과물은 긍정적이다. 인류진화의 위대한 행진을 시험 운영 중이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 특히 아이를 둔 학부모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한다. 심경보 학예사는 "최근 젊은 학부모들은 최신 기술을 먼저 경험한 경우가 많아 이해도가 높습니다. 경험해 주신 분들은 매우 좋아하더라구요. 특히 VR로 인류 진화와 도구에 대한 영상을 보여준 다음, 직접 움직여 퀴즈를 풀게 하니까 시너지 효과가 좋은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박물관이 변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

VR·AR 콘텐츠를 도입한 것은 비단 전곡선사박물관 혼자는 아니다. 이미 해외 및 일부 국내 박물관을 중심으로 가상현실 콘텐츠를 도입하기 시작한 곳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물관들이 단순 작품 전시에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심경보 학예사도 박물관 스스로가 변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과거 박물관들은 전시·휴게·교육이 각각 분리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융합되는 추세입니다. 이것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박물관도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는거죠. 우리 전곡선사박물관도 비록 외진 곳에 있지만 다방면으로 노력해 관람객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인류진화의 위대한 행진, 한 어린이가 시네마틱 콘텐츠를 체험하고 있다.

그는 많은 박물관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유행만 쫓는 곳도 있어 아쉽다고 말한다.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교육적 효과를 주고, 동시에 박물관은 유물 수집과 연구 등 선순환이 이뤄지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전곡선사박물관과 위지윅스튜디오가 함께 개발한 가상현실 콘텐츠는 기울인 노력만큼, 어디를 가져가도 당당히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갖췄다 자평했다.

실제로 그럴 만도 했다. 기자가 가상현실 콘텐츠를 직접 체험해 보니 현장감과 세밀함이 뛰어났다. 손에 잡힐 듯한 풍경, 그리고 눈 앞에는 루시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과거에 책이나 모형으로만 봤던 고인류들의 행동들이 마치 실제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많은 박물관들이 관람객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도입한다면 문화 및 전시, 교육 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다.

꾸준히 보완해 '즐거움·전시·교육' 세 마리 토끼 잡을 것

심경보 학예사는 지금의 가상현실 콘텐츠를 더 다듬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이번 구석기 축제 기간 내 시범 운영한 다음 부족한 부분을 추가하고 잘못된 부분은 수정해 오는 6월, 재운용에 들어갈 예정이다. 재운용은 11월까지 진행되며, 동시에 하반기 예정된 박물관 리모델링 계획에 따라 정식 운영할 방침이란다.

여기에서 보완은 콘텐츠 자체에 대한 부분도 있지만 운영 전반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의 장점은 최대한 현실적인 체험을 제공하지만 기기 운영과 관련해 인력 및 유지보수 비용이 소요되어서다. 사용 방식도 마찬가지다. 가상현실은 한 명이 집중적으로 즐기기에 좋지만 여럿이 만족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모바일 기반 가상현실 장비(기어VR)를 다수 도입해 운영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그는 약 5분 정도가 적정 체험시간이라고 봤다. 그 사이에 얼마나 좋은 연출과 고루함을 주지 않고 관람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전달하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위지윅스튜디오에도 개발 단계에서 연출력 부분을 강조했다고 한다. 까다로운 요구였지만 위지윅스튜디오가 이 부분을 뛰어난 기술력으로 적극 대응해줬기에 지금의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심경보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 학예사.

"가상현실의 기술적인 부분은 너무 발전이 빨라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운영 과정에서 보조 인력이나 운영 인건비가 발생됩니다. 사실 전시관 설치와 기기 도입은 문제가 안 되지만 운영 인력이 걸림돌입니다. 저희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현실적인 부분이죠."

다양한 방법으로 전곡선사박물관을 알릴 예정이라는 심경보 학예사. 그 중 하나는 이전부터 진행하던 '찾아가는 박물관'이다. 여기에 가상현실을 도입, 교육 효과와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도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한 경기문화재단 내 많은 박물관과 문화행사들이 진행되는데 이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라고. 동시에 국내외 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하고, 타 박물관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하면서 관람객들에게 더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글 / IT동아 강형석 (redbk@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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