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인물 열전 - 세계인의 ‘막귀’를 뚫어준 인물, 레이 돌비(Ray Dolby)

김영우 pengo@itdonga.com

영화나 게임, 혹은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돌비(Dolby)’는 매우 친숙한 단어다. 영화 감상이나 게임 플레이를 할 때, 타이틀 표기 전에 돌비의 이른바 ‘더블 D’ 로고가 등장하는 많으며, DVD 플레이어나 CD 플레이어와 같은 각종 멀티미디어 기기에서도 그 로고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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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에는 3가지 의미가 있다. 일단은 잡음 제거 및 입체음향 구현을 위한 표준 규격이라는 의미이며, 두 번째는 기술을 개발한 회사의 이름(Dolby Laboratories: 돌비 연구소)이다. 그리고 위 회사를 설립한 ‘레이 돌비(Ray Dolby)’ 박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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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소년 레이 돌비, 업계에 입문하다

레이 돌비는 1933년 미국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 10대를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상/음향기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돌비가 업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가 고등학생(16세)이었던 1949년, 방학 동안 저장 장치 전문 회사인 암펙스(Ampex) 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돌비는 산호세 대학(San Jose State University)과 스탠퍼드 대학(Stanford University)으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에도 돌비는 암펙스 사에서 엔지니어 업무를 계속했다. 대학생 시절 도중에 맞게 된 2년간의 병역 기간을 제외하면, 그의 청년기는 학업과 경력을 채우는 시간으로 빈틈없이 채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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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레이 돌비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최초의 계기는 1956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테이프 레코더인 '암펙스 VRX-1000(The Ampex VRX-1000)’의 개발이다. 이 기기는 회전 헤드 방식을 사용한 현대 VTR의 직계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당시 23세였던 돌비는 암펙스 사의 설립자인 알렉산더 M.포니아토프(Alexander M. Poniatoff) 등과 함께 이 제품의 개발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7년, 그는 스탠퍼드 대학 전기공학과를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능력 있는 미국 학생을 영국 소재의 대학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셜 장학금(Marshall Scholarship)의 대상자가 되어 곧장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6년간의 케임브리지 생활 끝에 돌비는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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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돌비는 영국원자력 공사의 컨설턴트를 하기도 했고, 유엔의 기술 고문으로서 인도에서 2년 정도를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1965년,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딴 음향 기술 회사인 ‘돌비 연구소(Dolby Laboratories)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6세에 업계에 처음 입문하여 35세에 자신의 회사를 세웠고, 그것이 1960년대였으니 그는 현대 벤처 기업가들의 선배인 셈이다.

돌비 연구소 설립, 첫 번째 과제는 ‘잡음 제거’

돌비 연구소가 설립된 첫해에 그가 내놓은 제품은 잡음 제거(NR: Noise Reduction) 시스템인 ‘돌비 A-타입(Dolby A-Type)’이었다. 당시에 사용하던 오디오 테이프는 기본적으로 잡음이 심했고, 영화의 사운드 트랙 등으로 쓰기 위해 편집이나 합성을 하다 보면 잡음은 한층 심해졌다. 당시에도 매우 초보적인 잡음 제거 기기는 있었지만, 이런 기기들은 잡음을 제거하면 함께 음향의 왜곡도 심해졌기 때문에 널리 쓰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돌비 A-타입 시스템은 고음과 저음을 여러 대역으로 분리하여 청취에 불필요한 잡음만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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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A-타입 시스템은 호평을 받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와 기업 시장을 겨냥해 나온 것이었고 기기의 가격도 극히 비쌌기 때문에 당시 활발하게 성장을 거듭하던 일반 가정을 대상으로 판매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즈음, 돌비는 미국의 오디오 전문 업체였던 KLH사의 사장이었던 헨리 클로스(Henry Kloss)의 부탁을 받고 가정용 잡음제거 시스템의 개발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로서 나온 것이 1968년에 선보인 ‘돌비 B-타입(Dolby B-Type)’이었다. 돌비 B-타입은 돌비 A-타입에 비해 처리 과정을 간략화했기 때문에 전문가용으로 쓰기에는 약간의 부족함이 있었지만, 훨씬 저렴한 가격의 기기로 돌비 A-타입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정용 기기에 적용하기가 용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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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돌비 B-타입 기술이 최초로 적용(1968년)되어 KLH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한 테이프 레코더는 그다지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제품은 기기의 크기가 너무 큰 데다가 사용하는 테이프도 보관이나 취급이 어려운 오픈 릴 방식의 테이프였기 때문이다. 오픈 릴 방식의 테이프 레코더는 아무래도 전문가용으로 더 잘 어울리는 기기였다.

전문가용을 벗어나 대중 속으로

하지만 1970년대부터 돌비가 사업상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돌비 B-타입 기술은 그야말로 태풍의 핵이 되었다. 돌비 본사에서만 직접 기기를 제조하던 돌비 A-타입 시스템과 달리, 돌비 B-타입의 기기는 기술 개발만 돌비 연구소가 맡고 기기의 제조는 전 세계의 제조사에 라이선스 방식으로 생산하게 하는 정책을 세운 것이다. 이는 당시, 급격하게 소비자 시장에 불기 시작한 카세트테이프의 유행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필립스(Philips), 일본의 나카미치(Nakamichi), 미국의 하만 카돈(Harman Kardon)과 같은 세계 주요 오디오 업체에서 돌비 B-타입 기술이 적용된 카세트 데크를 발표하였고, 이들 제품이 큰 인기를 끌면서 돌비 역시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용 기기는 직접 제조하지만 가정용 기기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판매하는 방식은 지금도 돌비 연구소가 취하고 있는 경영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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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후에 돌비 B-타입보다 잡음 제거 효과가 뛰어난 ‘돌비 C-타입(Dolby B-Type)’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호환성이 없어서 돌비 C-타입으로 기록된 테이프를 돌비 B-타입 규격의 기기에서 사용하면 음역이 왜곡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돌비 C-타입은 일부 고급형 테이프 데크에만 적용되어 쓰였고, 대중적으로 많이 보급되지는 않았다.

위와 같이 1970년대까지의 돌비는 잡음 제거 기술에 몰두하고 있었고, 돌비 연구소 역시 이 기술에 특화된 회사로 비치고 있었다. 하지만 잡음 제거 기술의 큰 성공으로 인해 생긴 노하우와 여력을 통해 돌비는 ‘입체음향’이라는 또 다른 영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입체음향, 그리고 디지털화

그 첫 번째 성과는 1975년에 발표된 극장용 입체음향인 ‘돌비 스테레오(Dolby Stereo)’ 기술이다. 기존의 스테레오 음향은 좌측과 우측의 두 군데 채널에서만 음향을 기록했지만, 돌비 스테레오 방식은 여기에 중앙과 후방의 2개 채널을 추가함으로써 한층 풍부해진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1982년에는 이를 가정용에 적합하도록 만든 ‘돌비 서라운드(Dolby Surround)’ 기술도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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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입체음향 기술은 ‘디지털화’라는 또 한가지의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에 1992년에 발표된 것이 바로 ‘돌비 AC-3(Dolby Audio Code Number 3)’로서, 정식 상품명인 ‘돌비 디지털(Dolby Digital)’로 더 잘 알려진 기술이다. 돌비 디지털은 돌비 서라운드의 4채널보다 확장된 5.1채널 입체음향을 구현했고 음질 역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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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디지털은 애초에는 극장용으로 쓰였지만, 이후에 DVD, HD TV, PC, 비디오 게임기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적용되면서 가정용으로도 가장 많이 쓰이는 디지털 입체음향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돌비 디지털의 확장 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돌비 디지털 플러스(Dolby Digital Plus)’, ‘돌비 트루HD(Dolby TrueHD)’ 등도 발표되었다.

선택받은 인간, 레이 돌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레이 돌비와 그가 설립한 돌비 연구소는 위와 같이 음향 기술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케임브리지 물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학자이자, 미국 특허만 50개 이상을 보유한 엔지니어이며, 총 재산이 35억 달러(2010년, 미국 포브스 보도)에 이르는 대부호이기도 하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전 세계인의 ‘막귀(음질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함)’를 뚫어준 것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로 77세를 맞은 레이 돌비, 뛰어난 두뇌와 사업수완을 바탕으로 멀티미디어 업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 그는 그야말로 선택받은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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