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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세상에서 제일 MS를 사랑한 남자의 명암, 스티브 발머

강일용

[IT동아 강일용 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누굴까? 창업자인 빌 게이츠나 현 최고경영자 사티아 나델라 등 쟁쟁한 후보가 여럿 있지만, 그들도 스티브 발머(Steven Anthony Ballmer)만은 못하다는 게 중론이다.

발머는 2000년 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MS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며, MS를 윈도, 오피스, 클라우드, 디바이스라는 네 개의 튼튼한 기둥 위에 쌓아 올린 인물이다. 젊은 날에는 빌 게이츠의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MS의 2인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이후 10년 넘게 MS를 이끌며 자신의 색을 입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흔적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스티브 발머
<스티브 발머 전 MS 최고경영자>

우등생, 괴짜와 만나다

발머는 1956년 미국 디트로이트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릭 헨리 발머(Frederic Henry Ballmer)는 디트로이트시의 경제를 지탱하던 포드 자동차의 기술자였다. 발머는 종종 "내 아버지는 언제나 포드 자동차만을 애용했다"고 말하곤 했다.

발머도 애사심이 강한 아버지의 성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는 MS 직원들에게 되도록 MS 제품을 사용하라고 강권했다. 경비를 절약한다는 핑계로 직원들이 (당시에는 노키아의 것이었지만) MS의 스마트폰 '루미아'를 사용해야만 통신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특히 애플 아이폰에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한 행사에서 직원이 아이폰을 꺼내 자신을 촬영하자 그 아이폰을 뺏은 후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실제로 부수진 않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발머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SAT(미국의 수학능력시험) 수학부문에서 만점인 800점을 기록하며 명문 중의 명문 하버드 대학교에 당당히 입성했다. 그냥 졸업만 했어도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을 것이다. 하지만 발머는 하버드에서 그의 인생을 바꿀 한 괴짜를 만나게 된다.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 줄여서 빌 게이츠라고 불리는 동갑내기 천재 개발자였다.

당시 발머와 빌 게이츠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은 없다. 그러나 둘은 친구라고 부를 만큼 가깝게 지냈으며, 나중에 함께 사업을 하자고 얘기를 나눈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발머가 조금 늦게 합류했음에도 MS의 창업멤버로 간주되는 이유다.

그의 친구 빌 게이츠는 MS를 창업하기 위해 하버드를 그만둔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지만, 발머는 그렇게 파격적인 결정까진 하지 못했다. 하버드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발머가 빨리 MS에 합류하길 기대하고 있었다. 결국 발머 역시 빌 게이츠와 마찬가지로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을 중퇴하고 1980년 MS에 합류했다.

스티브 발머

진정한 MS의 2인자

MS는 원래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함께 설립한 회사다. 하지만 폴 앨런은 건강상 문제로 1983년 MS를 퇴사한 후 경영에 간섭하지 않았다. 그의 빈자리를 발머가 채웠다. 발머는 빌 게이츠가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날 때까지 MS의 여러 중역을 섭렵하며 그를 도왔다. 빌 게이츠의 그림자였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둘이 함께하자 MS는 승승장구했다. 윈도, 인터넷 익스플로러, 오피스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PC 시장을 장악했다.

하지만 발머는 단순히 빌 게이츠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았다. 외부에 자신을 노출하길 꺼린 빌 게이츠와 달리 광고나 개발자 행사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1986년 윈도 1.0을 출시한 후 TV광고에 직접 출연해 윈도의 저렴한 가격 '99달러'와 미려한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강조하는 그의 모습은 구글이 '스티브 발머 윈도'라는 검색어를 따로 제공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그는 새로운 윈도가 출시될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이 광고에 출연해 윈도의 장점을 직접 설명했다. 특히 윈도 XP를 출시한 후 찍은 광고가 걸작(?)이니 다들 꼭 한번 감상하길 바란다. 그 방정맞은 모습은 발머를 세계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가 아니라 외판업에 종사하는 뒷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보이게 해줬고, 그가 MS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줬다.


(스티브 발머, 윈도 1.0 출시 광고 영상)

발머가 보여준 애사심의 비밀은 뭘까? 사실 여기엔 재밌는 이유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머는 MS의 30번째 직원이다. 발머에 앞서 입사한 개발자가 28명이나 존재했다는 뜻. 하지만 영업과 비즈니스만을 전담하기 위해 입사한 사람은 발머가 처음이었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전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엘리트를 영입하기 위해 빌 게이츠는 발머에게 영업 이익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제공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결정에 이끌린 발머는 MS에 합류해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IBM, 애플, HP 등 당시 실리콘 밸리를 선도하고 있던 수 많은 기업에 방문해 MS의 소프트웨어를 팔아치웠고, 회사의 미래 비즈니스 플랜을 세웠다. 결국 MS-DOS 운영체제의 성공으로 MS의 영업이익은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게 된다. 때문에 발머가 받는 인센티브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에 빌 게이츠는 발머와 다시 계약을 맺을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발머는 영업이익을 공유하는 인센티브를 포기할테니 대신 MS의 지분 8%를 달라고 했다.. 이것이 발머가 MS의 창업멤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MS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빌 게이츠도 발머도 상상하지 못 한 일이 이어서 일어났다. 당시에도 높은 가치를 가진 것이 MS의 지분 8%였으나, 이후 MS가 윈도 운영체제로 세상을 독점하고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달성하면서 그 가치는 상상도 할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게 된다. 덕분에 발머는 전 세계에서 손 꼽히는 억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2003년 발머는 4%의 지분을 판매해 본인 소유의 MS 지분을 4%만을 남겨뒀으나, 창업주인 빌 게이츠도 자선사업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분을 처분해 3.8% 미만의 MS 지분 만을 소유하게 됨에 따라 MS 최대의 개인 주주가 되었다.

최고경영자에 오르다

1998년 MS는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소송에 직면한다. 자칫 회사가 사분오열될 수도 있는 큰 위기였다. 위기는 간신히 넘겼지만, 연이은 질책으로 빌 게이츠는 심신 양면이 지쳤다. 그는 결국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MS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에 다양한 조언을 제공하지만, 경영을 진두지휘하지는 않겠다는 뜻.

빌 게이츠의 뒤를 이어 MS를 이끌어나갈 사람은 누가 있을까. 발머 외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2000년 1월, MS에 입사한지 20년만에 그는 최고경영자에 오르게 된다. 발머는 빌 게이츠처럼 개발자 출신이 아니다. 마케팅에 더 큰 강점을 가진 인물이었다. (왜 틈만 나면 직접 광고에 출연하는지 잘 생각해보라)

하지만 '개발자가 최우선'이라는 MS의 기조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2000년 9월에 열린 MS 25주년 행사에 나와 MS의 개발자 우선 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슬프게도 정작 그 행사는 발머의 강렬한 쇼맨십과 ‘스티브 발머의 원숭이 춤’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만 남겼다.)

MS의 전현직 CEO

연이은 실책

2000년대에 들어 IT 시장은 변하고 있었다. 특히 MS의 오랜 경쟁자 애플의 부상은 발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당시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지휘 아래 침체기에서 벗어나 아이팟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MS에게도 아이팟에 대응할만한 제품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발머가 내민 카드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 준(Zune)이었다. 아이팟 터치처럼 동영상을 감상하고 앱을 실행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기기였다. 그러나 준은 앱이 부족하고, 아이튠즈 같은 강력한 콘텐츠 유통망도 갖추지 못했다. 심지어 멀티미디어 기기를 표방한 주제에 동영상 실행 능력이 떨어지기까지 했다. 미국 언론은 준을 "발머와 빌 게이츠의 자녀들만 사용할 기기"라고 혹평했다. 물론 실적도 그만큼 처참했다.

준<MS의 멀티미디어 재생기 준>

사실 준은 큰 문제가 아니다. MS의 주력상품이 아니니까. 하지만 발머는 MS의 주력 상품에서도 실책을 범한다. 프로젝트 롱혼, 추후 윈도 비스타라고 불리게 될 운영체제가 바로 그것이다. 윈도 XP의 큰 성공으로 방심한 것일까. 윈도 비스타는 느리고, 버그가 많았다. 윈도의 최대 강점인 하위호환도 시원찮았다. 운영체제의 기반인 커널을 변경하고 보안 기능을 강화했다지만, 운영체제의 근본인 사용성이 떨어지는데 누가 쓰고 싶겠는가. 결국 윈도 비스타는 윈도 XP를 대체하는데 실패했고, MS는 결국 2년만에 사용성을 강화한 새 운영체제 윈도 7을 출시해야만 했다.

윈도 비스타의 실패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왔다. 윈도 7을 빠르게 출시하기 위해 MS의 모든 개발자가 PC용 운영체제 개발에 매달려야 했고, 이는 모바일용 운영체제 ‘윈도폰'의 개발이 늦어지게 되는 결과를 부른다. 안드로이드와 iOS가 모바일 시장을 접수하는 동안 MS가 무기력하게 대응한 것은 윈도 비스타의 실패 때문이라는 것이 북미 애널리스트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실책을 뒤덮은 성과

준, 윈도 비스타, 모바일용 운영체제 지연 등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MS 주식의 가치와 시가총액은 발머의 재임기간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 비록 애플처럼 큰 폭으로 상승하는 기염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우량주였던 셈. 대체 왜 그런 걸까. 시장은 사용자와 언론이 보지 못한 발머와 MS의 진가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비밀은 B2B(기업 대 기업) 시장에 있다. 발머의 B2C(기업 대 소비자) 전략은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B2B 전략은 성공적이었던 것. 원래 MS를 지탱하던 기둥은 윈도와 오피스 두 가지다. 여기에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기업에 벗어나 하드웨어를 통해 사용자의 거실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담아 컨슈머&디바이스(엑스박스, 서피스, 윈도 폰) 부서를 추가했다.

발머는 기업용(엔터프라이즈) 시장에 MS의 미래가 있다고 내다보고 비즈니스 솔루션 사업부(엔터프라이즈 사업부)를 신설했다. 윈도 서버, MS SQL 등 엔터프라이즈의 근간이 되는 분야에 집중 투자했고, 소비자 관계 관리(CRM) 솔루션 개발에도 힘썼다. 무엇보다 클라우드 컴퓨팅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엔터프라이즈 사업부에 클라우드를 통합한 후 인도 출신 개발자 사티아 나델라를 부사장을 앉혀 퍼블릭(공용)클라우드 개발을 지휘하게 했다. 그 결과 MS는 퍼블릭 클라우드 '애저(Azure)' 서비스를 통해 업계 1위인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발머의 재임기간 동안 MS의 기둥은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 많은 사용자가 MS가 윈도로 먹고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2016년 매출을 기준으로 MS는 오피스, 클라우드, 윈도, 디바이스&게임 순으로 돈을 벌어들였다. 천하의 윈도가 고작 3위에 불과하다. 오피스와 클라우드는 번갈아가며 영업이익 1위를 차지했으나, 이 둘과 윈도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사용자의 인식과 달리 MS는 더이상 윈도로 먹고사는 회사가 아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PC 시장이 멸망해 윈도가 사라지더라도 MS는 회사를 이어나갈 수 있다.

발머의 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함께 IT 업계의 리더로 꼽히는 구글은 인터넷 광고에 의존하는 비중이 너무 높다. 광고 시장이 침체기에 빠지면 회사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반면 MS는 다양한 수익모델을 통해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발머의 재임 기간 동안 MS는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 기업이자 세 번째 가는 IT 기업이라는 입지를 공고히 했다.

퇴임, 그리고 두 번째 인생

B2B 시장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모바일에 대응하지 못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2013년 발머는 모바일 대응 실패, 태블릿PC 서피스의 부진 등을 이유로 1년 내로 최고경영자에서 은퇴하겠다고 발표한다. 시장은 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머가 은퇴를 발표하자 당일 MS의 주가는 크게 반등했다.

2014년 2월 발머는 자신이 엔터프라이즈&클라우드 총괄로 앉힌 사티아 나델라에게 MS 최고경영자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에서 은퇴했다. 이어 9월 MS 이사회의 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났다.

MS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후 발머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전 구단주가 인종차별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떠난 후 매물로 나온 NBA LA 클리퍼스를 매입한 것. 발머는 전폭적인 투자를 통해 LA 클리퍼스를 LA 레이커스에 버금가는 명문으로 키우겠다고 팬들에게 약속했다. 이러한 약속과 특유의 강렬한 쇼맨십 덕분에 발머는 LA 클리퍼스 팬들에게 크게 환영받고 있다.


(LA클리퍼스 영상)

이처럼 발머는 MS를 떠났지만, 완전히 관계없는 남인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MS의 개인 최대주주다. MS의 전체 지분 가운데 약 4%가 그의 것이다. 심지어 창업자 빌 게이츠보다도 MS의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MS의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그의 재산은 333억 달러에 육박하게 됐고, 세계 부자 순위 21위(포브스 집계, 2017년 7월 기준)에 올라서게 된다.

MS에 대한 사랑도 여전하다. LA 클리퍼스를 인수한 후 그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애플 제품 추방이었다. 선수와 감독, 코치진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시키고, 대신 서피스를 사용하라고 지시했다. 어쩌겠는가, 구단주가 바꾸라면 바꿔야지.

스티브 발머의 공격적인 어록

많은 이가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의 공격적인 발언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발머 역시 스티브 잡스 못지 않게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야말로 어록의 쌍두마차라고 부를만하다. 그의 주옥(?) 같은 어록과 그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리눅스는 암과 같다. 그것은 지적재산권을 크게 침해한다."

2001년 레지스터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정확히는 리눅스보단 리눅스의 정책인 GPL(GNU General Public License)을 겨냥한 발언이다. GPL은 누구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대신 소스코드를 변경하면 그것을 공개해야 한다는 라이선스다. 소프트웨어를 판매해 이득을 취하는 MS로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다. 발머가 두려워한 것이 정책 자체였는지, 아니면 이 정책으로 인해 리눅스가 널리 퍼지는 것이었는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이후 리눅스는 엔터프라이즈 업계에 표준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고, 유닉스나 메인프레임을 제치고 MS 엔터프라이즈 사업부서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또한 GPL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AOSP)의 확대에 크게 기여해, MS 컨슈머 사업부의 성장에 커다란 암초로 작용했다.

"빌어먹을 에릭 슈미트(구글의 회장), 그 자식을 묻어버리겠다. 구글도 없애버리고 말겠다."

윈도 운영체제의 설계를 담당하는 수석 엔지니어 마크 루코브스키가 구글로 이직한다고 밝히자 그의 앞에서 한 발언. MS는 구글을 초창기부터 견제해왔으며, 그 기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MS의 검색&광고 사업이 맥을 못 추고, 윈도폰이 망한 것도 결국은 구글 탓 아닌가. 참고로 에릭 슈미트 역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노벨 등 자바와 리눅스 진영의 선봉에서 반MS의 기조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아이폰은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그럴 기회가 없다."

2007년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슬프게도 이 발언 이후 아이폰은 큰 성공을 거뒀고, 윈도폰은 아이폰에 밀려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다가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아이폰에 대한 발머의 크나큰 적개심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사실 내 자녀들은 부모인 나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반드시 교육하고 있다. 구글과 아이팟을 쓰지 마라."

2011년 디지털 트렌드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MS에 대한 그의 사랑이 진심임을, 또한 직장뿐만 아니라 가정에도 애사심을 강조하는 줏대 있는 인물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흥미롭게도 발머의 공격적인 발언은 애플, 구글, 리눅스 진영이라는 MS의 가장 큰 적 위주로 구성돼 있다. 그의 공격적인 발언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아니면 MS라는 거대한 집단의 수장으로서 계산적으로 한 발언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그는 누구와 겨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똑똑한 인물이라는 것이고, 그 누구보다 MS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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