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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반도체 업계를 반 세기 지배한 '무어의 법칙' 창시자, 고든 무어

김영우

[IT동아 김영우 기자] 컴퓨터를 사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바로 '세상을 떠나기 1초 전'이라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능이 향상된 신제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산 최고 사양의 컴퓨터가 얼마 지나지 않아 구형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고든 무어
<인텔의 창립자 고든 무어(Gordon Moore, 1929. 1. 3~) <제공: 인텔>>

이러한 컴퓨터의 급격한 성능 향상을 이미 50여년 전에 예언함과 동시에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의 컴퓨터 프로세서 제조업체인 인텔(Intel)의 설립자 중 한 명, 고든 무어(Gordon Earle Moore)다. 컴퓨터의 성능이 일정한 주기마다 급격히 향상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은 그의 인생과 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너무나 유명한 문구다.

과학실험 좋아하던 20대 청년,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다

무어는 1929년 1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페스카데로에서 자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실험과 탐구를 좋아했다. 중학생 시절에 흑색화약을, 고등학생시절에는 니트로글리세린을 직접 제조하는 등, 특히 화학 분야에 대단한 재능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46년, 새너제이(산호세) 주립대학 화학전공으로 입학해 2년을 다니다가 1948년에는 버클리대 화학전공으로 옮겼으며, 1950년 졸업했다. 그리고 곧장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대학원에 입학, 화학 및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된다. 학업을 마친 무어는 존스 홉킨스대 응용물리학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56년,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출신의 윌리엄 쇼클리 박사(William Bradford Shockley Jr)가 주도하던 벡맨인스트루먼트(Beckman Instruments)의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하게 된 이후다. 그곳에서 무어는 평생의 친구인 로버트 노이스(Robert Norton Noyce)와 만나기도 했다.

트랜지스터의 아버지를 떠난 '8인의 배신자들'

윌리엄 쇼클리는 트랜지스터(transistor)를 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등, 많은 업적을 세운 과학자였으나 다소 고집스러운 연구소 운영방침으로 지적을 받곤 했다. 이에 1957년,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를 비롯한 8명의 연구원이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떠나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설립했다. 이는 당시 업계에서 상당히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쇼클리는 이들을 ‘8인의 배신자들’이라 칭하기도 했다.

당시의 초기형 반도체는 게르마늄(저마늄) 소재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8인의 배신자들'은 게르마늄보다는 실리콘이 반도체 재질로 좀더 적합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실리콘 반도체는 게르마늄 반도체에 비해 개발 관련 노하우가 부족한 상태였지만, 상대적으로 내구성 및 제조원가 면에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연구원들은 노력 끝에 집적도와 신뢰도가 높은 실리콘 반도체의 개발에 성공, 이른바 '실리콘 밸리'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함께 세계 반도체 시장 1~2위를 다툴 정도로 큰 성장을 했다. 그리고 후일 무어와 같은 길을 걸어간 앤디 그로브(Andy Grove)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입사한 것도 이때 즈음이다.

의기투합해서 설립한 '인텔'의 승승장구

하지만 회사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인사 관련 문제, 경영진과의 갈등 등이 불거지면서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는 페어차인드 반도체를 퇴사했다. 그리고 그들은 1968년 7월 18일, 가칭 'NM(일렉트로닉스(NM Electronics)'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 회사의 정식 명칭은 '인텔(Intel)'로 정해졌으며 이는 'Integrated Electronics'의 약자였다. 그리고 무어와 노이스가 인텔을 설립한지 1개월 후인 8월에 인텔의 첫 번째 종업원으로 앤디 그로브를 채용, 이들 3인은 인텔의 창립 멤버로 기록된다.

인텔의 창립 멤버, 왼쪽부터 앤디 그로브,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출처=인텔)
<인텔의 창립 멤버 3인, 앤디 그로브(왼쪽), 로버트 노이스(가운데), 고든 무어(오른쪽) (출처: 인텔)>

인텔은 설립 초기에는 SRAM이나 DRAM과 같은 저장용 반도체에 집중했으나 1971년, '4004'를 발표하면서 마이크로프로세서 중심의 업체로 거듭났다. 인텔 4004는 약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4비트 연산, 최대 740KHz로 구동)로, 현대적인 컴퓨터의 두뇌인 CPU(Central Processing Unit)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후 인텔은 최대 0.8MHz로 구동하는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08(1972년)', 5~10MHz로 구동하는 16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8086(1979년)', 그리고 16~33MHz로 구동하는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인 'i386(1985년)'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속속 내놓으며 세계 정상의 반도체 업계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지난 40년 동안 반도체 업계는 인텔 천하였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윈텔 연합을 결성하며 전 세계 반도체 시장과 PC 시장을 좌지우지 했다. 지금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경쟁사 AMD, 퀄컴 등을 큰 차이로 따돌리며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뿐만 아니라 서버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하지면 2017년 현재 삼성전자가 DRAM과 저장장치용 반도체 시장에서 크게 성장하면서 인텔의 지위는 위협받고 있다. 2017년 2분기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매출은 17조~18조 원, 영업 이익 7조 2,000억 원~7조 8,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반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인텔은 144억 달러의 매출(약 16조 2,000억 원)과 38억 9,000만 달러의 영업이익(약 4조 3,000억 원)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근 30년 만에 반도체 업계 1위 자리를 삼성전자에게 내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텔이 흔들리는 이유가 뭘까? 인텔이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줬던 '무어의 법칙'이 사실상 폐기되었기 때문이다.

인텔 인사이드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된 PC에 붙는 Intel Inside 로고는 너무나 친숙하다 (출처: 인텔)>

반 세기 동안 IT 업계를 지배해온 '무어의 법칙'

고든 무어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무어의 법칙은 흔히 '컴퓨터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컴퓨터의 성능'이라는 것이 프로세서의 동작속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반도체의 밀도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인용하는 사람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곤 한다. 심지어 성능이 2배가 되는 주기가 18개월이 아니라 24개월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무어 조차도 이를 특정한 적은 없다. 무어의 법칙은 무어가 1965년 4월 19일에 출판된 일렉트로닉스 매거진(Electronics Magazine)에 투고한 논문 내용(http://www.cs.utexas.edu/~fussell/courses/cs352h/papers/moore.pdf)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 비용 대비 집적회로의 정밀도 향상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 어디에도 18개월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무어의 법칙이 유명해진 1975년, 무어는 자신의 입을 통해 "나는 18개월마다 2배 향상된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2년에 2배 정도는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무어 자신의 발언 여부와는 상관 없이, 컴퓨터 및 반도체의 성능이 폭발적으로 향상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1971년에 발표된 인텔 4004 프로세서는 불과 740KHz(74만Hz)로 구동했으나 2017년 현재 판매 중인 인텔 코어 i7-7700K 프로세서는 무려 4.2GHz(42억Hz)로 구동한다. 집적된 트랜지스터의 수도 인텔 4004는 약 2,300개 정도를 갖추고 있던 반면, 인텔 코어 i7-7700K는 17억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인텔은 이러한 무어의 법칙에 맞춰 반도체의 정밀도를 1년 6개월 또는 2년에 2배씩 향상시키며 반도체 시장에서 리더십을 유지해왔다. 경쟁 업체보다 2~3단계 앞선 공정 미세화를 통해 반도체 업계를 선도하고,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지난 40년 동안 인텔이 이러한 법칙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킴에 따라 무어의 법칙은 단순히 한 반도체 업체의 CEO 겸 과학자의 주장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업계의 절대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무어의 법칙은 한계에 도달했나?

2년 주기로 반도체 제조공정의 미세화 단위를 높이던 인텔의 행보가 2012년 이후부터는 달라졌다. 2008년에 45나노(나노미터, 10억분의 1미터) 공정에서 2010년에 32나노 공정, 2012년에는 22나노 공정으로 순조롭게 공정 미세화를 진행하던 인텔이었으나, 그 다음 단계인 14나노 공정의 반도체는 2014년에야 양산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흐름이라면 10나노 공정은 2018년은 되어야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텔
<인텔에서 2017년 3월에 공개한 하이퍼 스케일링 기술 (출처: 인텔)>

때문에 무어의 법칙이 이미 한계에 달했다는 비관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인텔은 기존의 방식으로 공정을 단순 미세화하여 성능을 높이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인텔은 내부 소자간의 간격을 좁히고 배치의 효율성도 높이는 3D 트라이게이트(Tri-Gate) 트랜지스터 및 하이퍼 스케일링(Hyper Scaling) 등의 기술을 투입함과 동시에, 프로세서가 데이터를 처리하는 아키텍처(architecture: 기반 기술)의 개선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능 향상을 달성할 수 있으므로 결국 무어의 법칙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인텔은 제외한 다른 IT 기업,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 AMD, 삼성전자 등은 무어의 법칙은 이제 업계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왜 다른 회사는 무어의 법칙이 폐기되었다고 보는 것일까. 경제적인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반도체의 정밀도를 향상시키는데 그리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밀도가 향상된 반도체를 조금만 내다 팔아도 충분히 이익을 거둘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는 정밀도를 조금만 향상시켜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정밀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인텔은 1년 반마다 공정을 미세화했던 전략을 포기하고, 14나노 공정을 3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텔이 반도체 정밀도 향상에 어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보고서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컨설팅 업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스트래티지에 따르면 인텔이 10년 전 65나노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1600만 달러 내외였다. 반면 14나노 반도체를 개발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그 9배인 1억 3,200만 달러에 이른다.

이렇게 경제적인 한계 때문에 무어의 법칙이 폐기되고 인텔이 14나노 공정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 삼성전자, 퀄컴, AMD 등 인텔의 경쟁사들도 14나노 공정을 자사의 반도체에 도입했다. 인텔의 가장 큰 강점이었던 반도체 생산 공정 상의 우위가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퀄컴을 위시한 ARM 연합군에게 내줘 PC, 데이터센터(서버, HPC 포함)에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는 인텔과 달리 PC, 데이터센터 뿐만 아니라 모바일 기기까지 모든 IT 기기에 DRAM과 저장장치를 공급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약진이 겹쳐 인텔이 반도체 업계 1위 자리를 내주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기술자 무어와 기업인 무어, 그리고 '기부왕' 무어

무어는 1975년에 인텔의 사장 및 최고경영자가 되기 이전까지 부사장으로 근무했으며, 1979년 4월에 비로소 이사회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가 됐다. 1987년 4월에 후임 최고경영자로 앤디 그로브가 내정됐지만, 무어는 그 후에도 계속 이사회의 회장직을 유지하다가 1997년에 은퇴해 명예회장이 됐다. 이후, 무어는 1998년에는 실리콘밸리의 컴퓨터 역사 박물과의 연구원이 됐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기술자로서 막대한 성공을 거둔 무어이지만, 조직의 리더로서도 그는 존경을 받았다. 특히 그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늘 하위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지속적으로 연구에 참여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한다. 무어의 후임이었던 앤디 그로브가 구사했던 날카롭고 공격적인 리더십과는 대조가 되는 부분이다.

2015년 1월, 고든 무어는 90번째 생일을 맞았다. 그는 위대한 기술자로서, 그리고 컴퓨터 혁명을 이끈 기업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퇴임 이후, 사회사업가로서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든 무어
<고든 무어는 아내와 함께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을 설립, 대대적인 기부 활동에 나섰다>

그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역사상 가장 큰 액수인 6억 달러를 기부했으며, 2000년 9월에는 아내인 베티 무어(Betty Moore) 함께 '고든 앤 베티 무어 재단(Gordon and Betty Moore Foundation)'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재단은 각종 과학 발전과 환경보호 운동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에 건립하고 있는 구경 30미터의 망원경(Thirty Meter Telescope, TMT) 사업에 2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 대표적인 활동으로 꼽힌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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