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의 Girl in Tech] 내 아이를 관찰하는 힘, 스타트업파워

사업의 탄생, 미운 우리 새끼일지 백조가 될지

최근 '미운 우리 새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때 정상에 섰고 지금도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지만, 반 100세의 40-50대의 아들이 결혼은 하지 않고 싱글로 살아가는 모습을 어머니들과 사회자가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다 큰 어른의 일상을 갓난아기 보듯이 조마조마하게 훔쳐보는 엄마의 마음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가족 예능으로 국민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한 번은, 사회자 신동엽이 자신의 엄마와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는데, 나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다. 장난꾸러기였던 그는, 엄마한테 맞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다가, "37살이 6살도 못 잡냐!" 고 놀렸던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저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면, 결혼도 자식도 없는 필자도 화가 나면서 웃기기도 했을 것이고 매도 들었을 것 같다.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사진제공:
SBS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사진제공: SBS

<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우리새끼'. 사진제공: SBS >

창업을 하는 것을 자식을 낳고 키우는 것으로 빗대곤 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것이 많다. 예를 들면, 법인(法人)의 의미도 법적인 권리를 가진 존재라는 것. 또 회사의 탄생 혹은 시작점에 창업자의 의지가 많이 포함되지만, 기업을 키워나가다 보면 마치 말 안 듣는 아이들같이 마음대로 안 되는 면도 있다는 것. 성장함에 따라 사춘기든 방황기처럼 사업에 있어서도 곤란한 사항, 죽을 고비 등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 또, 아이가 어느덧 성인이 되면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것처럼, 회사 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그와 비슷한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미국의 유명한 여배우, 제시카 알바(Jessica Alba)는 요즘 배우 역할보다 기업가로서 이슈몰이를 하고 있어 그녀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현재 그녀는 어니스트 컴퍼니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CO)로 활동하고 있는데, 엄마가 되면서 친환경 유아 가정용품 스타트업, 어니스트 컴퍼니 (The Honest Company)를 창업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그녀 자신이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질병들(천식, 폐렴으로 인한 발작 등)을 겪은 경험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무독성 제품들을 개발하게 되었다.

어니스트 컴퍼니는 2011년 창립 이래 연 매출액 약 3,300억 원(3억 달러) 규모를 달성하며, 현재까지 약 2,00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 최근에는 유니레버와 약 10억 달러 규모로 인수 협의 중이라는 뉴스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놀라운 숫자뿐만 아니라 어니스트 컴퍼니는 환경친화적인 제품의 특성과 사회적 미션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아이와 엄마를 위한 친환경 제품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니스트 컴퍼니의 제시카 알바
대표
어니스트 컴퍼니의 제시카 알바 대표

< 사진 출처: IT 동아 >

필자는 외국계 기업에서 아이들 로션 및 워시 상품부터 해열제, 감기약까지 아이와 엄마를 위한 상품 마케팅을 한 적 있다. 이때 전략을 세우기 위해, 아이와 엄마를 자세히 살펴보는 리서치를 많이 했었다. 주요 고객인 '엄마'들이, 출산 이후부터 변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행동, 이에 따라 변화하는 매장 내 제품과 브랜드를 결정하는 요소에 대해 직접 고객을 만나 인터뷰도 하고, 많은 예산을 써서 전문기관과 함께 정량 · 정성적으로 마켓 리서치를 시행했다. 그때마다 일반적으로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디테일하게 행동 하나하나를 쪼개서 관찰하다 보면 의외의 모습들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매장 내에서 고객과 마주하고 관찰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선순환의 과정의 일의 재미를 높여주었다.

한국의 사례 중 관찰의 힘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흥미로운 경우도 있다. KBS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삼둥이가 자동차에서 껴안고 있던 인형으로 주목받았던 안전벨트 '허그돌(Hugdoll)'을 개발한 키두(KIDU)의 유수진 · 정세경 공동대표다. 허그돌은 아이가 차에 탑승했을 때 안전벨트가 목이 아니라 어깨를 지나도록 각도를 조절해 주고 안전벨트 착용 후 편히 기대어 잘 수 있도록 목을 받쳐 주는 기능성 인형을 만들고 있다.

KIDU
KIDU

< 사진 출처: KIDU >

두 대표는 어린 친척 동생이 안전벨트를 맨 뒤 투정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제품 아이디어를 얻었다. 많은 어린이들이 자동차에 타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안전벨트가 턱과 목을 지나가 불편하다고 투정을 부린다. 특히 아이가 안전벨트를 매고 차에서 졸 때 머리를 기대지 못해 불편함을 느낀다. 이 둘은 KAIST 에서 전공했던 산업디자인을 활용하여 간단한 시제품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테스트했다. 그 결과 아이의 안전벨트 투정이 많이 줄은 걸 보고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허그돌은 아이들이 자동차 안전벨트를 착용할 때 겪는 신체적, 정서적 불편을 해결한 아이디어로, 독일 'if Product Award'에서 제품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의 탁월함과 편리성, 기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까칠한 촉감의 안전벨트 대신 푹신한 인형을 안거나 (인형에) 몸을 기댈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다.

필자는 가끔 놀란다.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 단 몇 초만에도 내 기분이 어떤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정관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등등 상황 파악을 금방 하시기 때문이다. 특별히 시시콜콜한 단서를 많이 던진 것도 아닌데,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차리는 점쟁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이는 오랜 세월 애정어린 관찰의 힘이 관통해서는 아닐까. 무조건 오래 관찰한다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관찰하고 의문을 품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하는 상황은 많은 스타트업의 첫 시작점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긴 하다.

오늘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질문과 아이디어를 떠올려보자.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 필요는 발명을, 관찰은 아이디어를, 실행은 창업을 완성하는 건 아닐까. 주위를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둘러보면 우리가 새삼 느끼는 아이디어들을 사업화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핀다 손보미 마케팅 이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Johnson & Johnson에서 헬스케어 프로덕트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Project AA라는 문화예술 및스타트업 마케팅 회사를 창업하고, 핀테크 기업에 회사를 매각 후, 금융상품 마케터로 변신했다.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쉐이퍼, 대한적십자사 현 홍보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 32개국에서 여행과 봉사활동을 했으며, 2권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본 칼럼은 IT동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핀다 손보미 마케팅 이사(bomi@fin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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