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가 우리에게 남긴 것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국토교통부, 미래창조과학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외교부 등 관계 부처가 모인 측량성과 국외반출협의체는 지난 18일 국토지리정보원에서 3차 회의를 열고 6월 구글이 요구한 1:5000 축적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최종 불허했다. 6개월 동안 지도 반출 여부를 두고 찬반 여론이 격렬하게 대립했으나, 결국 반출 허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일단락 되었다.

구글 지도
구글 지도

정부는 왜 지도 반출을 불허했나?

최병남 국토지리정보원장은 "구글의 지도 반출 요청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안보 위험을 증가시킬 우려가 있어 허가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구글 지도 반출 불허 사유를 밝혔다.

처음 정부는 구글에게 구글이 보유한 위성 지도에서 한국의 국가 안보 관련 시설을 보이지 않도록 블러(흐리게) 처리 또는 제거하면 고정밀 일반 지도를 반출해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반면 구글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위성 지도와 일반 지도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위성 지도에 블러 처리를 하면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구글 측의 주장이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결국 위성 지도와 일반 지도는 별개가 될 수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둘을 따로 놓고 보면 별 다른 문제가 아니어도 둘이 합쳐지면 그 시너지 효과 때문에 심각한 안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의 설명. 언론과 국내 업체들이 제기한 구글의 법인세 회피, 국내 공간정보 산업 보호 이슈 등은 이번 결정에서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던 셈이다.

정부의 진짜 속내, '우리 말 좀 들어라'?

정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지도 반출 거부 사유로 국가 안보를 들었다. 다른 얘기는 일절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구글의 위성 지도에서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 몇 개만 제거하는 쉬운 작업만 하면 지도를 반출해줄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물론 정부가 주장하는 국가 안보라는 논리에는 허점이 많다. 설령 구글 위성 지도에서 국내 안보 관련 시설을 제거하더라도, 북한 등 적성국가는 여전히 바이두(중국의 포탈 서비스), 얀덱스(러시아의 포탈 서비스) 등이 제공하는 위성 지도를 통해 국내 안보 관련 시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아스트리움, NSE 등 위성 지도 촬영 업체에게 돈을 주고 위성 지도 데이터를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물론 북한에게 그런 거금이 어디있겠냐만). 결국 구글 지도에서 국내 안보 관련 시설을 제거해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그대로인 셈이다. 때문에 정부의 논리는 지도 반출에 찬성하는 언론과 사용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생각의 틀을 조금 바꿔보자. 정부가 정말로 구글 위성 지도에서 안보 관련 시설을 제거하면 국가 안보가 더욱 향상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걸까? 물론 관련된 효과를 '조금이나마' 거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는 드디어 글로벌 기업 구글이 대한민국 정부의 지시를 듣기 시작했다는 것에 있다.

구글은 글로벌 기업이다. 특정 국가의 규제와 시장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에서 자유롭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전 세계 제일이다. 일반적인 기업(특히 로컬 기업)이라면 정부의 규제와 권고를 따르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겠지만, 구글은 다르다. 미국, 중국 못지 않은 거대 세력인 유럽연합에게도 잊혀질 권리나 뉴스 검색에 관련해서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는 기업이다. 중국이 온갖 규제로 구글을 옭아매려 하자 '쿨'하게 짐싸서 떠나기까지 했다(요즘은 다시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간을 보고 있지만).

상황이 이러한데 대한민국 같이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적은 국가는 어떻겠는가. 글로벌 기업인 구글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 더 정확히 말해 국내 공간 정보 데이터는 글로벌 기업 구글을 길들일 수 있는 훌륭한 수단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정부는 구글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고 거래를 제안했다.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과제를 주겠다. 조금 양보하고 우리 말을 들어라. 그러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주겠다.' 정부의 주장에는 이러한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정부 입장에선 대한민국의 안보 관련 시설 몇 개를 위성 지도에서 지워주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도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글 입장에선 특정 국가의 지시를 들어준다는 선례를 되도록 남기기 싫었을 것이다. 하나의 국가의 지시를 들어주는 것은 쉽다. 하지만 한 국가의 지시를 들어주기 시작하면 다른 국가의 지시도 거부할 명분이 없어진다. 전 세계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구글 입장에선 따르기 어려운 거래였던 셈이다.

정부 입장에선 '특혜'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쉬운 반출 조건이었던 것이고, 구글 입장에선 정말 따르기 힘든 반출 조건이였던 셈이다. 양측의 입장은 이렇게 처음부터 평행선을 달렸고, 6개월 동안의 물 밑 협의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거래는 끝났다.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의 긍정적인(?) 효과

그래도 구글의 지도 반출 시도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왔다. 일단 사용자들에게 지도 데이터(공간 정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지도 데이터가 단순히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에 수많은 위치 데이터를 품고 있고, 향후 IT 업계의 먹거리로 떠오른 자율주행차(커넥티드 카 포함)의 핵심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나태했던 경쟁자들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구글이 지도 반출 시도를 하면서 내세웠던 논리 가운데 하나가 풍부한 무료 지도 API 사용량이다(PC용 웹 일 2만 5,000건, 모바일 앱 무제한).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지도를 이용하는 것이 더 정확하고 편리함에도 많은 회사와 개발자들이 홈페이지나 웹을 만들 때 구글 지도를 이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구글에 비해 무료 지도 API를 적게 제공한다는 지적(네이버: PC용 웹 일 10만 건, 모바일 앱 일 5,000건 다음: 법인 8만 건, 개인 5만 건(웹과 앱 공유))을 받자 웹과 앱 지도 API 무료 사용량을 하루 20만 건(카카오 지도의 경우 법인에게는 하루 30만 건)으로 대폭 확대했다. 때문에 국내 스타트업과 웹 개발자들이 구글 지도보다 더 정교한 네이버와 카카오 지도를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남은 궁금증은 하나다. 구글은 다시 국내 지도 반출을 시도할까? 일단 정부는 문을 열어둔 상태다. 구글이 지도 반출을 다시 요청하면 다시 협의체를 꾸려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구글은 어떨까?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반출을 시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도 데이터가 핵심인 커넥티드 카 사업(안드로이드 오토)을 국내에서 전개하려 할 때 다시 반출 요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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