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생각주머니'를 만드는 교육을 실천하다, '행복한바오밥'

안수영 syahn@itdonga.com

[IT동아 안수영 기자] 보드게임은 재미있는 놀이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발휘하는 문화콘텐츠다. 보드게임은 사람과 사람의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유도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이끌어낸다.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 노인 복지, 심리 상담에 활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교육 등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는 추세다.

세상에는 다양한 보드게임이 있고, 보드게임을 활용해 세상을 보다 즐겁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국내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 행복한바오밥의 이근정 대표를 만나 행복한바오밥과 보드게임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행복한바오밥
행복한바오밥

행복한바오밥은 현재 만 12년이 된 보드게임 개발사다. 교육용 보드게임을 중점으로 개발하고 있으며, 보드게임 유통과 교육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근정 대표는 한국에 보드게임 시장이 전무하던 2004년 창업을 했다.

"제 첫 직장은 미국 게임회사의 한국 지사였습니다. 그 때 게임 비즈니스를 배우며 '내 게임을 갖고 싶다'는 꿈을 처음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그래픽 디자이너도 아닌 마케터였습니다. 따라서 제 콘텐츠를 디지털로 직접 제작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런 꿈을 갖고 있던 중, 보드게임 카페를 처음 방문하고 보드게임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보드게임을 해 보니 참 재미있었어요. 당시 디지털 게임을 개발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웠는데요, 보드게임은 오프라인 콘텐츠잖아요. 보드게임이라면 '나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갖게 됐어요. 콘텐츠를 개발해보는 재미, 나만의 게임을 만들어보는 꿈을 이루고 싶어서 보드게임 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이 대표는 2004년 회사를 창립하며 보드게임 공부를 많이 했다. 작가별, 시스템별로 게임을 나눠보기도 했고 업계 공부도 했다. 이 대표는 "아마 제 인생에서 보드게임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일 것이다"라고 회상하며 웃었다. 다만, 당시 한국 보드게임 시장은 그 규모가 무척 작았다. 사업을 해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던 것. 이 대표는 고민 끝에 '교육용 보드게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보다 많은 대중에게 보드게임을 어필하려면,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교육용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유럽식 보드게임이나 전략 보드게임도 개발하겠다는 미션도 함께 갖고 있었지요"

막상 보드게임을 개발하다 보니, 교육용 보드게임이 전략 게임을 만드는 것보다 더욱 어려웠다. 교육용 게임은 구매자와 실제 플레이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용 게임을 구매하는 사람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 성인들이지만, 직접 플레이를 하는 건 어린이들입니다. 성인들은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구매를 하지만, 어린이들은 재미있어야 게임을 하지요. 교육용 보드게임이 성공하려면 양쪽의 요구를 모두 맞춰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시중에서 교육용 게임이 실패하는 사례가 많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즐거웠어요. 도전할 만한 과제라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노력했지요"

셈셈 피자가게
셈셈 피자가게

그러한 열정과 도전 의식으로 만들어낸 보드게임 중 하나가 바로 '셈셈 피자가게'다. 행복한바오밥은 셈셈 피자가게와 같은 교육용 보드게임을 출시하면서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째, 어른들은 이 게임을 어려워할 것이다. 둘째, 하지만 아이들은 재미있어할 것이다.

"시중에 나온 교육용 보드게임은 구매자 위주로 출시되었으며 아이들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교육 주제만 바꿔 끼운 게임이 많았습니다. 게임이 단순하고 메커니즘이 변하지 않다 보니, 오랫동안 사랑받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믿을 것은 아이들뿐이었어요.

셈셈 피자가게는 구매 의도가 명확했어요. 연산 학습에 도움이 되는 게임이라는 목적 의식을 전달할 수 있었지요. 반면, 아이들은 이러한 목적 의식에는 관심이 없지요. 아이들은 재미있어야 게임을 해요. 이 점에 착안해 게임의 난이도를 높였습니다"

이 대표는 기존의 교육용 보드게임과 달리, 고유한 메커니즘을 갖추고 아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난이도를 고안했다. 그리고 셈셈 피자가게를 출시하며 구매자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셈셈 피자가게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게임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은 놀이에 있어 직관적인 천재입니다. 어렵다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아이들은 어렵다는 것에 대한 편견이 없습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만큼만 느낍니다. 이러한 점을 믿고 승부를 걸었고, 저희의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어요. 이렇게 게임을 개발하면서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라는 정체성을 점점 굳혀가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로서 더욱 사명감을 느낄 만한 일이 생겼다. 행복한바오밥은 지역아동센터를 다니며 아이들이 게임을 체험하도록 직접 시연을 했다. 아이들을 연령별로 나눠 적합한 게임을 가르쳐주고, 게임을 소개했던 것이다.

젬 트레이더
젬 트레이더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 4명과 함께 '젬 트레이더'라는 경매 보드게임을 했어요. 이 게임은 유럽식 전략 보드게임으로 난이도가 있는데요, 한 친구가 굉장히 게임을 잘 하더라고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친구가 5학년인데 덧셈 뺄셈을 못하고 한글도 읽지 못하더라고요. 그 친구 순서가 되면 다른 친구들이 산수만 대신 해주었는데, 게임을 너무 잘 해서 눈치를 채지 못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원장선생님께서 '저 아이가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를 그렇게 오랫동안 집중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 새로운 것을 깨달았어요. 기존의 교육 시스템이 잘 맞지 않는 아이라도, 보드게임을 통해 집중력을 길러주고 잠재력을 발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를 계기로 교육용 게임 개발사로서 좀 더 본격적으로 나아가야겠다, 라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행복한바오밥을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로 만들고자 교육학과 아동심리 분야를 공부하고, 기존에 만든 보드게임도 아이들의 시선에서 더욱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에 걸맞는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많은 생각을 했어요. 제 아무리 보드게임이 좋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심리를 너무 자극하는 게임은 하지 말자, 연령대가 낮은 아이들은 화목하고 평화로운 게임을 하도록 하자, 고학년 아이들은 이벤트를 넣은 게임을 하도록 하자. 행복한바오밥이 개발한 보드게임들은 자기 차례에 실패를 하더라도 1점이라도 점수를 주는 것이 특징인데요, 자기 순서에 고민을 해서 플레이했다면 오답이라도 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매 턴마다 성취감을 느낄 만한 장치들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외에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보드게임 파티를 열기도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이런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에 가서 선생님들에게 보드게임을 가르쳐주고, 보드게임 파티를 하도록 했어요. 이렇게 하면 많은 어린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기 힘든 지역에서 저희가 개발한 보드게임을 교재처럼 활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언젠가는 이를 실현하고 싶어요. 할 일이 많아서 좋아요. (웃음)"

행복한바오밥
행복한바오밥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사로서의 사명감을 명확히 한 만큼, 행복한바오밥의 교육 철학도 남다르다. 이 대표는 보드게임을 통해 교육을 실천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었다.

"저는 모든 보드게임은 교육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교육이란, 한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기본적 소양과 지식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양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주머니를 만드는 것',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인성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보드게임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에 저희는 보드게임을 교육적인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보드게임을 교사에게 익숙한 커리큘럼으로 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이 보드게임을 보다 편안하게 활용하실 수 있겠지요. 또는 저희가 직접 강연을 하기도 합니다. 비록 적은 인원이라도 강연을 하고 나면 수강생들이 보드게임 팬으로 바뀌는데요, 그 재미 때문에 강연을 놓질 못합니다. (웃음)"

최근에는 보드게임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교육 및 진로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현재 시행되는 진로 교육은 직업 교육에 특화된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 진로 교육이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잠재력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깨닫게 하는 것이 진로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커리큘럼을 만들고 있습니다"

행복한바오밥은 청소년을 위한 또래 코칭 과정도 운영한다. 이는 중, 고등학생들이 보드게임 교육 봉사활동을 하도록 돕는 것이다.

"보드게임을 배운 학생들이 양로원, 고아원 등 다양한 시설에 방문해 보드게임을 가르쳐줍니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게임을 직접 가르친다는 것 역시 유의미한 교육 과정입니다. 이처럼 보드게임을 활용해 청소년들이 즐거움과 보람을 얻고, 몸소 교육을 실천하도록 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습니다"

폴드잇
폴드잇

행복한바오밥의 관심사는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대표가 장기적으로 꿈꾸는 것은 보드게임 생태계를 건강하게 육성하는 것이다. 보드게임 시장이 성장하려면 좋은 개발자들이 양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한바오밥은 직접 게임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독립 개발자들의 작품을 퍼블리싱하기도 합니다. 개발자들이 해외 시장 진출을 꿈꾸고 더 큰 시장을 보도록, 자주 소통해서 피드백을 주고 더 나은 개발자가 되도록 함께합니다. 보드게임 업계에 좋은 개발자가 많아지면 저희도 성장하고 시장도 성숙해질 수 있는데요, 트렌드가 아닌 생태계를 가꾸기 위해 개발자 커뮤니케이션 모임을 갖고, 교류도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보드게임이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고리, 세상과 세상을 잇는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보드게임을 접하면서 새로운 사람과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대표는 아직 보드게임을 해보지 않은 이들을 위한 메시지도 남겼다.

"아직 보드게임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꼭 한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보드게임을 경험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직접 경험해보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셨으면 합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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