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차세대 디스플레이 화두, HDR과 144Hz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LED, 퀀텀닷, OLED 등 디스플레이의 종류와 풀HD, QHD, 4K 등 디스플레이의 해상도에 대해 알고 있으면 어디가서 영상 기술에 제법 조예가 깊다고 평가받던게 엊그제 같다. 하지만 이제 TV나 모니터를 구매할 때 디스플레이의 종류, 해상도뿐만 아니라 색 표현력과 주사율까지 신경써야 하는 세상이 왔다. 색 표현력에 관계된 신기술이 바로 'HDR(HDR10, 돌비 비전)'이고, 주사율에 관계된 신기술이 '144hz(고주사율)'다.

HDR 이해하기

현재 TV 시장의 마케팅 화두 중 하나가 HDR이다. 최고급 TV뿐만 아니라 중저가 TV까지 HDR을 지원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HDR은 흔히 '밝은 곳은 더 밝게, 어두운 곳은 어둡게 표현하는 기술'이라고 설명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일반 사용자가에게 잘 와닿지 않는다. HDR의 정확한 정의는 '자연의 명암(밝고 어두움)과 색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기존 디스플레이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다 실제에 가까운 명암과 색을 보여주는 기술'이다.

다이나믹 레인지(Dynamic Range)란 디스플레이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과 가장 밝은 부분의 밝기 차이, 즉 명암의 범위를 표현하는 단위다.

HDR은 '광범위 다이나믹 레인지(High Dynamic Range)'의 약자다. 무엇보다 범위가 넓다는 것일까? 표준 다이나믹 레인지(SDR, Standard Dynamic Range)보다 표현할 수 있는 명암과 색이 더 많다는 뜻이다.

SDR은 과거 브라운관 TV를 사용하던 시절 확립된 기술 표준이다. 0니트~100니트 사이의 명암 표현력과 8비트 색 표현력(1677만 7216색, 이른바 '트루컬러')을 갖추고 있다. 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시중에 유통 중인 TV와 모니터 대부분이 이 SDR에 맞춰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간의 눈이 인식할 수 있는 명암과 색의 수에 비하면 턱 없이 모자란 수치다. 뉴캐슬 대학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눈은 최대 0니트~40000니트 사이의 명암을 인식할 수 있고, 100만~1억 개 정도의 색을 인식할 수 있다(명암과 색을 인식할 수 있는 범위는 사람 개개인 별로 다르다).

HDR이 적용된 디스플레이는 SDR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용자들에게 보다 실제에 가까운 명암과 색을 보여준다. 현재 HDR의 표준으로 각광 받고 있는 'HDR 10'은 0니트~1000니트 사이의 명암 표현력과 10비트 색 표현력(10억 7374만 1824색)을 갖추고 있다. HDR 10의 경쟁자로 평가받고 있는 '돌비 비전'은 명암과 색 표현력이 이 보다 더 뛰어나다. 0니트~10000니트의 명암 표현력과 12비트 색 표현력을 갖추고 있다.

H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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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R 10 vs 돌비 비전

현재 HDR 업계의 표준을 두고 HDR 10과 돌비 비전이 대립하고 있다. 현재는 HDR 10이 표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HDR 10은 오픈소스 기반이라 디스플레이 제조사들에게 로열티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HDR을 지원한다고 홍보하는 기기 대부분이 HDR 10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되고 있다. 'HDR을 지원하는 기기=HDR 10을 지원하는 기기'로 이해해도 통할 정도다.

돌비 비전의 경우 기술 자체는 HDR 10보다 더 뛰어나다. 표현할 수 있는 명암과 색의 범위가 훨씬 넓다. 하지만 전용 구동칩과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하고, 돌비 연구소에 지불해야하는 로열티도 부담으로 작용해 실제로 돌비 비전을 채택한 제조사는 극소수다. 최고급 디스플레이나 A/V 기기 위주로 채택되고 있다.

다만 현재는 두 기술 간의 차이를 사용자들이 느낄 수 없다. 현재 양산되고 있는 HDR 지원 디스플레이 패널은 대부분이 최대 1000니트, 10비트 패널이기 때문이다(10비트를 지원하는 패널은 과거부터 양산됐으나, 최대 1000니트를 지원하는 패널은 최근에 들어 양산되기 시작했다). 아직 최대 10000니트, 12비트를 지원하는 패널은 없다. 향후 10000니트, 12비트 패널이 등장하기 전까지 돌비 비전은 시장에서 상당히 고전할 전망이다. 또, 많은 전문가들이 인간의 눈이 구분할 수 있는 색상의 한계는 1억개 정도이기 때문에 색표현력 면에서 HDR 10과 돌비 비전 간에 유의미한 화질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속속 등장하고 있는 HDR 기기와 콘텐츠, 2017년이 HDR 원년 되나?

HDR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디스플레이 업계의 대세다. 한 번 HDR 콘텐츠에 빠지면 SDR 콘텐츠의 초라한 명암과 색 표현력에 실망하게 된다.

때문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디스플레이 업체뿐만 아니라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 수 많은 글로벌 기업이 HDR을 지원하는 기기와 콘텐츠를 선보였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4K 스마트TV는 거의 대부분의 모델이 HDR을 지원한다. 플래그십 모델의 경우 HDR 10뿐만 아니라 돌비 비전까지 지원한다. 4K TV 보급과 맞물려 HDR이 자연스레 우리 곁에 다가올 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의 경우 차세대 크롬캐스트 '크롬캐스트 울트라'를 통해 HDR을 지원하고 있다. 크롬캐스트 울트라는 4K 해상도 HDR 콘텐츠를 스트리밍 형태로 감상할 수 있게 해주는 기기다.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HDR을 지원하는 콘텐츠(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 프라임 둘 다 자사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4K 해상도와 HDR로 촬영하고, 일반 콘텐츠도 4K 해상도 HDR 위주로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 모두 HDR 10과 돌비 비전을 지원한다(서비스가 먼저 디스플레이가 HDR 10과 돌비 비전을 지원하는지 감지한 후 이에 맞춰 영상을 송출해준다).

넷플릭스 관계자에 따르면 HDR 콘텐츠는 SDR 콘텐츠보다 데이터 용량이 약 1.3배 더 크다. 더 많은 명암과 색 데이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풀HD 콘텐츠를 4K로 확대하는 것보다 HDR로 확대하는 것이 더 많은 용량을 요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게임에도 HDR이 적용된다. 이를 통해 보다 실제에 가까운 느낌의 3D 그래픽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비디오 게임기 엑스박스 원 S(슬림)와 엑스박스 원 스콜피오에 HDR을 적용했다. 소니 역시 오는 11월 발매하는 고급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 스테이션 프로에 HDR을 적용했다. 해당 비디오 게임기를 지원하는 게임은 모두 HDR로 감상할 수 있다(당연히 먼저 HDR을 지원하는 디스플레이를 갖춰야 한다).

블루레이 디스크의 후속인 4K 블루레이도 HDR을 지원한다. 4K 블루레이를 재생할 수 있는 블루레이 플레이어 대부분이 HDR을 정식 지원한다(저가형에선 지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구매에 앞서 꼭 확인하자).

중요한 것은 HDR을 제대로 느끼려면 HDR을 지원하는 기기(TV, A/V 기기, 비디오 게임기 등)와 HDR로 촬영되거나 제작된 콘텐츠(영화, 드라마, 게임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하면 HDR을 만끽할 수 없다.

2017년에는 HDR을 지원하는 기기와 콘텐츠가 쏟아질 전망이다. HD가 그랬고, 풀HD가 그랬듯이 HDR도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으로 예상된다.

144Hz 이해하기

TV 업계의 최신 화두가 HDR이었다면, PC 모니터 업계의 최신 화두는 144Hz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에 사용되던 60Hz를 뛰어넘는 고주사율이 모니터 업계의 차세대 먹거리다.

주사율이란 화면이 1초에 보여줄 수 있는 정지 이미지의 수다. 프레임레이트(프레임)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LCD(LED 포함) 모니터는 60Hz의 주사율을 갖추고 있다. 1초에 60개의 정지 이미지를 보여줘서 동작(애니메이션)을 표현하는 것이다.

144Hz는 기존 모니터의 한계를 뛰어넘어 1초에 144개의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이다.

1초에 보여줄 수 있는 정지 이미지의 수가 더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이 더욱 자연스럽게 보인다. 딱딱하게 끊겨 보였던 움직임이 더욱 실제와 가까워지는 것이다.

144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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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Hz를 지원하는 삼성전자의 게이밍 모니터>

왜 하필 모니터?

왜 하필 모니터 업계에서 144Hz가 화두인 것일까? PC 모니터를 통해 자주 이용되는 PC 게임이 바로 144Hz를 제대로 지원하는 유일한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주사율은 높으면 높을 수록 좋다. 인간의 눈은 높은 주사율을 모두 정상 인식한다. 높은 주사율의 모니터와 콘텐츠를 보다가 낮은 주사율의 모니터와 콘텐츠를 보면 뚝뚝 끊겨 보인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패널과 AD보드의 기술 한계 탓에 모니터의 주사율은 20년 동안 60Hz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고성능 그래픽 카드를 이용해 PC 게임을 즐길 경우 내부 주사율(프레임레이트)이 60을 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사용자들이 쓸 수 있는 그래픽 카드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능을 갖춘 엔비디아 지포스 GTX 1080을 이용할 경우 최신 3D 게임도 150~180 내외의 주사율을 보여준다. 모니터의 주사율은 60Hz에 머무르고 있는데 PC에서 송출한 그래픽 데이터는 180Hz에 이르니, 둘의 불일치 때문에 화면이 찢어지는 현상도 종종 나타났다(이를 테어링 현상이라고 부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이 송출하는 그래픽 데이터를 강제로 60Hz에 고정시키는 수직 동기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년부터 60Hz를 뛰어넘는 고주사율 모니터가 시장에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현재 고주사율 모니터는 120Hz, 144Hz, 165Hz 등 세 가지 주사율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144Hz 모니터가 가장 보편적인 제품이다.

반면 TV 업계는 고주사율이라는 흐름에 무덤덤하다. TV에서 주로 소모되는 콘텐츠인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이 24~60Hz(프레임)로만 제작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차라리 HDR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평가다. 부드러운 움직임 대신 실제에 가까운 색과 명암을 선택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TV에도 고주사율이 적용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게이밍 모니터로 최적

144Hz 모니터로 게임을 즐기면 사물의 움직임이 기존의 2배 이상 부드러워진 것을 체감할 수 있다. 특히 화면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는 FPS(일인칭 시점 슈팅) 게임을 즐길 경우 차이를 더욱 명백히 느낄 수 있다. PC방을 점령한 블리자드의 FPS 게임 '오버워치'의 경우 대부분의 상위권 플레이어들이 144Hz 모니터를 이용하고 있으며, 프로게이머간의 대회도 144Hz 모니터로 진행하고 있다(심지어 한 오버워치 대회의 경우 144Hz 모니터 대신 60Hz 모니터로 예선을 진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콜 오브 듀티 등 다른 FPS 게이머들도 144Hz 모니터를 애용하고 있다.

144Hz
144Hz

대만 업체 중심에서 국내 업체 중심으로 개편되나?

144Hz 모니터는 벤큐, 에이수스(+ 델) 등 주로 대만 업체가 게이밍 모니터의 라인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생산했다. 원래는 극소수 하드코어 게이머를 위한 제품군이었지만, 작년과 올해의 FPS 게임 열풍 덕에 하나의 주력 제품군으로 우뚝설 수 있었다.

덕분에 메이저 모니터 업체인 삼성전자와 LG전자도 144Hz 모니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두 회사 모두 올해 말 144Hz를 지원하는 게이밍 모니터를 출시하고, 관련 마케팅 공세를 강화할 예정이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50만~80만 원대에 이르던 144Hz 모니터의 가격도 30만~50만 원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고주사율 모니터를 구매할 때 주의할 점

고주사율 모니터라고 해서 다 같은 고주사율 모니터가 아니다. 디스플레이 패널과 AD보드가 진정 60Hz 이상의 고주사율을 지원하는 진짜 고주사율 모니터가 있는 반면, 디스플레이 오버 클록을 통해 60Hz 모니터의 성능을 강제로 끌어올린 제품도 있기 때문이다.

오버 클록을 통해 강제로 성능을 끌어올린 제품은 120Hz 이상의 고주사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잘해봐야 70~80Hz 정도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사실 이는 고장을 무릅쓰고 AD보드를 강제로 조작하면 기존 모니터로도 가능한 수치다).

고주사율 모니터를 구매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패널과 AD보드가 고주사율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제품임을 확인하고 구매해야 한다. 다행히 오버 클록으로 주사율을 뻥튀기한 제품은 시장에서 단종 수순을 밟고 있다.

또, 현재 대부분의 고주사율 모니터는 시야각이 좋지 않은 TN 패널을 이용하고 있다. 반면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게이밍 모니터는 IPS나 VA 같은 광시야각 패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비싼 제품인 만큼 아무래도 TN보다는 IPS나 VA 패널을 이용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두 기술의 홍보 딜레마

HDR과 144Hz를 제대로 느끼려면 일단 디스플레이 자체가 달라야 한다. 대부분의 사용자가 이용 중인 기존 TV와 모니터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두 기술을 체감할 수 있다. 인터넷 등지에서 나돌고 있는 HDR, 144Hz 예시는 실제 HDR, 144Hz과 거리가 있다. 예를 들어 HDR의 예시라고 돌아다니는 이미지는 대부분 색이 극도로 과장되어 있는데, HDR은 색을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에 더 가까운 색을 표현하는 것이다.

H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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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HDR과 144Hz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디스플레이 제조사 또는 콘텐츠 제작사의 오프라인 체험존을 방문해야 한다. 온라인 홍보 위주로 돌아가는 최근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에 회사들은 오늘도 고민이 많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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