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퍼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네트워크,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

[IT동아 권명관 기자] 지난 2016년 4월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캐피탈타워에 위치한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를 찾아 채기병 대표를 만났다. 주니퍼 네트웍스는 올해 2월을 기점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네트워크 업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하지만, 20년 동안 전세계 네트워크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갖췄지만, 정작 사람들은, 일반인들은 주니퍼 네트웍스가 어떤 업체인지 잘 알지 못한다. 사실 ‘네트워크’라는 주제 자체가 결코 대중적이지 못하다.

이에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의 채기병 대표를 직접 만났다.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쉽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채 대표와의 인터뷰는 1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딸은 이런 것을 어려워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생각을 고쳐야겠습니다. 그렇죠.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겠죠. 어려운 것은 그저 어렵다고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습니다"라고.

주니퍼 네트웍스
주니퍼 네트웍스

< Your ideas. Connected. >

네트워크, 데이터,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대표님께 이런 질문을 드리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질문부터 시작해야겠다. 사실 사람들은 주니퍼 네트웍스가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른다. 아니, 정정하겠다. IT 기자 생활을 8년 넘게 하고 있는 본인도 자세하게 안다고 자부하기 어렵다(웃음). 쉽게, 아주 쉽게 답변주시길 부탁드린다. 주니퍼 네트웍스는 어떤 기업인지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채기병 대표(이하 채 대표): 하하.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IT동아는 50대 아저씨, 20대 여대생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지향한다는 말에) 자꾸 부담주시지 말아 달라(웃음). 음… 주니퍼 네트웍스는 기본적으로 인터넷 인프라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1990년도에 설립되었을 당시 주력 제품은 40GB 용량의 라우터였다. 이후 라우터, 스위치, 보안장비 등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네트워크 장비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도 함께 제공한다.

한마디로 네트워크 산업계의 인프라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다. 데이터 센터를 구축하기 위한 필요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고 이해해달라.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IT동아: 죄송하다. 잠시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해서 당황했다(웃음). 보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네트워크 장비를 제공하는 업체 아닌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자면, 일반 사람들이 외장하드나 USB 메모리에 데이터를 저장하듯, 기업이 자사의 정보(데이터)를 저장하는 장비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워낙 장비가 복잡하고, 크기도 하고, 일반 사용자와의 접점이 거의 없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고. …아주 파격적인 비유이지만.

채 대표: 맞다. 쉽게 설명하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데이터 센터 내 네트워크 장비를 주니퍼 네트웍스가 개발, 제조한다. 덧붙여 한번 더 설명하자면, 해당 제품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한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도 개발하는 중이다(웃음).

IT동아: 주니퍼 네트웍스는 네트워크 장비를 주로 하며, 해당 장비의 전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업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럼 네트워크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은 무엇인지, 그리고 주니퍼 네트웍스가 관여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채 대표: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그렇지, 실생활 전반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네트워크다. 초고속인터넷이라는 단어, 한번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그게 네트워크다.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 연결하지 않나. 데이터 센터에 넣는 장비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한 모든 것이 네트워크다.

그리고 지금의 모바일 시대로 바뀌면서 소비되는 데이터 트래픽이 엄청나게 상승했다. 3G, 4G LTE를 서비스하기 시작한 이동통신사들은 ‘데이터 익스플로전’이라는 표현 즉, 데이터 사용량이 폭발할 듯 늘어났다고 표현했다. 이 방대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고성능 네트워크 장비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70, 80년대를 MB(메가바이트) 시대, 90년대를 GB(기가바이트) 시대라고 한다면, 현재 우리는 TB(테라바이트), PT(페타바이트)를 넘어 EB(엑사바이트) 시대를 살고 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IT동아: 증가하는 데이터만큼 당연히 이를 수용하기 위한 장비가 필요한 법 아닌가.

채 대표: 맞다. 고용량의 네트워크 장비를 필요로 하는 업체의 요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우리와 같은 네트워크 장비 개발사들이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고성능 장비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선보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데이터 사용량당 (네트워크 장비의) 단가는 계속 떨어지는 중이다. 예를 들어 과거 1GB를 수용하는 장비와 1TB를 수용하는 장비 가격에 차이가 있을까? 없다. 오히려 낮아졌다고 생각한다(웃음).

현재 당면한 네트워크 업계의 문제는 데이터가 폭증하면 폭증할수록 수익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산업계의 딜레마다. 사용자,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를 필요로 하는 기업은 언제나 더 많은 데이터를 원한다. 이런 얘기도 있다. 메가바이트 시절에는 데이터당 장비의 가격은 ‘달러’였지만, 기가바이트로 넘어오면서 데이터당 장비 가격은 ‘센트’로 떨어졌다고.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앞으로 데이터 센터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IT동아: 네트워크, 데이터당 단가가 떨어진다는 말이 재미있다. 아니, 듣기에만 재미있지, 대표님께서 서글픈 이야기 아닌가(웃음).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외장하드와 같은 외장 저장장치 단가를 생각해보면 될 듯하다. HDD 하나만으로 봤을 때, (HDD 자체가 처음 등장했던 초기를 빼면)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 것처럼.

채 대표: 네트워크 장비를 외장하드와 비교하는 것이 재미있지만, 비슷하다. 다만, 네트워크 장비라고 얘기하는 이 시장은 모두 B2B 시장이다. 데이터 센터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업이 B2B다.

IT동아: 데이터 센터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싶다. 데이터 센터는 결국 막대한 양의 네트워크 장비를 한 곳에 모아놓은 것 아닌가. 이를 필요로 하는 업체들은 데이터 센터 내 네트워크 장비를 일부 임대해 이용하는 것이고. 또한, 장비뿐만 아니라 해당 장비를 실행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함께 임대하곤 하는데. 아마존의 AWS, 구글의 GDC,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애저, IBM의 소프트레이어 등과 같이 말이다. 때문에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라고도 하고.

채 대표: 맞다. 네트워크 장비뿐만 아니라, 해당 네트워크 장비를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도 필요하다.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와 소프트웨어 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를 사용하는 담당자 즉, 전문가다. 데이터 센터에서 사용되는 장비와 해당 장비를 사용하기 위한 소프트웨어 지식에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전문가 없이 데이터 센터의 네트워크 장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네트워크 장비를 제공하고 나면, 약 60% 정도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말그대로 사용법을 알려줘야 하는 셈이다. 또한, 60~80% 정도는 데이터 센터 오토메이션(기계, 절차, 조직의 자동조작. 자동적이라는 오토매틱과 조작이란 뜻의 오퍼레이션이 합성된 단어)을 필요로 한다. 이럴 때는 네트워크 장비를 제공한, 우리 주니퍼 네트웍스와 같은 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다만, 전문가는 언제나 한정적이다. 네트워크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은 시스코와 주니퍼 네트웍스가 전세계에서 업계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아우를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은 오토메이션이 필요하다. 즉,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나눠서 이 모든걸 아우를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한 셈이다.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한국 주니퍼 네트웍스 채기병 대표

IT동아: 문든 이런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던 구글, MS, 아마존 등. 결국 자금력을 갖춘 사업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 아닐까 하는 우려다.

채 대표: 실제로 데이터 센터 구축에 최근 엄청난 자금력이 몰리고 있다. 뭐, 개인 사용자, 일반인 입장에서는 좋은 이슈다. 공짜로 15GB, 20GB 등의 저장 공간을 받지 않나(웃음).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아까 기자님께서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말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이용해 저장하는 데이터의 종류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기업들은 자사만 보유해야 하는 정보의 경우 프라이빗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를 선호한다. 이건 보안 상의 문제다. 즉, 프라이이빗 데이터 센터와 퍼블릭 데이터 센터가 나뉠 것이다.

데이터 센터는 앞으로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인터넷 기반의 서비스 제공업체가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당연히 데이터 센터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인터넷 서비스, 웹 서비스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지켜보고 싶다(웃음). 아마 이 때가 되면 아까 얘기했던 ‘센트’ 단위로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채기병 대표와 인터뷰를 끝낸 며칠 뒤, MS가 서울과 부산에 축구장 10배 만한 크기의 데이터 센터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주니퍼 네트웍스만의 장점

IT동아: 계속 대화하다 보니, 어쩐지 결론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다.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업체들의 클라우드 데이터 센터 진출, 단가 경쟁력을 잃어만 가는 네트워크 장비 등. 뭔가 너무… 암울하다(웃음). 주니퍼 네트웍스가 갖추고 있는 경쟁력은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채 대표: 주니퍼 네트웍스는 크게 4가지 제품군을 개발, 공급하고 있다. 라우터, 스위치, 보안장비 등 하드웨어와 각 장비를 쉽고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다. 스위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네트워크 시장은 (이미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클라우드로 갈 것이다. 다만, 이를 관리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가상화를 통해 어떻게 쉽게 자동으로(오토메이션) 관리할 수 있는가가 경쟁력이 될 것이다.

주니퍼 네트웍스는 소프트웨어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태생적으로 주니퍼 네트웍스는 하드웨어 업체다. 업계에서 가장 빠른 실리콘칩을 제조한다. 48테라를 지원하는 칩은 네트워크 업계에서 가장 크다고 자부할 수 있다. 최대 용량을 지원하는 렉도 갖췄다. 고도화되고 있는 데이터 센터, 네트워크 시장에 맞춰 고성능 라우터 솔루션도 제공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고, 파트너사가 원하는 것을 맞춤 형태로 제공하는 것. 주니퍼 네트웍스가 갖추고 있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주니퍼 네트웍스 솔루션
주니퍼 네트웍스 솔루션

IT동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공한다. 이 부분에 많이 끌린다.

채 대표: 꼭 같이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주니퍼 네트웍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각각 제공할 수도 있다. 블레이드 스위치, 블레이드 네트워크 운영체제를 사서 주니퍼 네트웍스의 스위치에 넣어서 판매한 사례도 있다. 투 트랙 전략이다. 또한, 화이트박스도 있으니 사용해도 된다.

주니퍼 네트웍스가 갖추고 있는 오퍼레이터 시스템도 장점이다. 최근 네트워크 시장 특히, 국내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거세다. 방대한 인적 자원과 막대한 자금력으로 마케팅을 앞세워 국내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안정성’과 ‘신뢰성’이다. 과연 중국 네트워크 기업들이 지금까지 전세계 수위권의 네트워크 업체가 제공했던 수준을 그대로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다.

IT동아: 중국 업체의 진출이 거센 것처럼, 네트워크 시장은 지속적으로 경쟁사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채 대표: 과거와 비교하면 업체가 몇 개 남지 않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혁신’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하는 것. 주니퍼 네트웍스는 네트워크 장비 개발사가 하지 않던, 소프트웨어를 빼서 투 트랙으로 제공했다. 네트워크 장비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을 제안했다. 전략이 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니퍼 네트웍스는 파트너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트너사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귀를 기울인다. 상호창조, 공동창조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와 함께 공유해서 에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주니퍼 네트웍스의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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