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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의 세계] 범인은 이 안에 있다, '클루'

안수영

클루

클루 (1949) <출처: divedice.com>

2005년 런던의 무료 신문 <더 메트로>에는 아래와 같은 퀴즈가 실렸다.

"밧줄, 파이프, 권총, 스패너, 단검, 촛대가 나오며, 친구 하나를 범인으로 몰아 왜 그런지 설명해야 하는 이 게임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이 퀴즈의 정답은 무엇일까? 아마 '클루'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정확한 답은 '클루도'다. (이유는 차차 설명하기로 하고)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년도다. 클루도가 처음 출시된 해가 1949년인데, 퀴즈는 2005년에 나왔다. 즉, 무려 56년 전 게임에 대해 퀴즈를 낸 것이다. 클루도의 꾸준한 인기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오늘 소개할 보드게임은 바로 이 '클루도', 우리에게는 '클루'로 더 잘 알려진 추리 게임이다.

추리 보드게임의 성격

어쩌면 추리라는 장르 자체는 게임의 성격을 내포한 장르인지도 모른다. 추리 소설가 반 다인(S.S. Van Dine, 1888.10.15-1939.4.11)이 쓴 <추리 소설을 쓸 때 지켜야 할 20가지 규칙(Twenty rules for writing detective stories)>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추리 소설은 일종의 지적 게임이다."

실제로 추리 소설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추리 소설 고유의 게임성을 기대하고 즐긴다. 추리 소설 속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형태로 문제를 제시하고, 독자는 답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단서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고, 답은 이야기의 끝에 나온다.

다수의 추리 게임도 기본 구조는 위와 비슷하다. 특히 PC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 같은 디지털 게임들은 이야기로 퀴즈를 제시하고, 단서를 제공하며, 답을 해설한다. 이러한 기본 구조에 여러 가지가 덧붙는 형태다. 예를 들어 단서 수집 자체를 게임의 문제로 만들거나, 따로 관리해야 할 자원을 도입하는 식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시할 때는 여전히 추리 소설의 방식을 따른다.

즉, 이야기를 통해 게임의 문제를 제시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게임의 흥미를 돋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게임이 제시하는 문제이자 게임의 핵심이다. 유명한 추리 게임인 '역전 재판'이나 '셜록 홈즈: 죄와 벌(Sherlock Homes: Crimes & Punishments)'도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게임이다. 문제의 바탕이 되는 범죄 사실이나 트릭이 모두 최소한의 이야기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은 추리 소설, PC 게임 혹은 비디오 게임처럼 단서를 제시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에서 '이야기'는 게임 배경으로 구성되며, 단서는 규칙으로 제시된다. 규칙으로 단서가 제공되는 덕에 추리 보드게임은 수학 방정식과 비슷하다. 알아내야 할 미지수 X가 주어지면, 플레이어는 모두에게 공개된 풀이법을 응용해 해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은 이 방정식을 얼마나 재미있게 제시하는지에 따라 그 평가가 갈리곤 한다.

이 방정식을 가장 간단하면서 재미있게 제시한 게임이 바로 클루다.

게임 방법

보드게임 '클루'는 대저택 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추리하는 게임이다. 각 플레이어들은 탐정이 되어 용의자, 범행에 사용된 흉기, 살인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저택 안의 여섯 사람 중 범인은 누구일까?

클루에는 게임 말과 주사위, 게임판과 추리 노트, 그리고 추리 카드가 들어 있다. 추리 카드는 용의자 카드(6장), 장소 카드(9장), 흉기 카드(6장) 등 3종류로 나뉜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3종류의 카드를 각각 1장씩 뽑아 종이 봉투에 아무도 모르게 집어 넣자. 봉투에 집어넣은 3장의 카드는 누가(용의자 카드), 어디서(장소 카드), 무엇으로(흉기 카드) 범행을 저질렀는지 설명해준다.

플레이어들은 이 카드 3장이 무엇인지 알아 맞혀야 한다. 예를 들어 용의자 카드 중 그린 카드가, 장소 카드 중에서 욕실 카드가, 흉기 카드 중 권총 카드가 봉투에 들어갔다면, 봉투에 있는 카드가 그린, 욕실, 권총임을 가장 먼저 맞히는 사람이 게임에서 승리한다.

이 봉투 안에 있는 카드가 무엇일지 맞춰야 한다.

이 봉투 안에 있는 카드가 무엇일지 맞춰야 한다. <출처: divedice.com>

그렇다면 봉투 안에 있는 카드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단서는 남은 추리 카드들이다. 플레이어들은 남은 추리 카드들을 각자 똑같이 나눠 가진다. 정답은 봉투 안에 있으므로, 자신과 상대가 나눠 받은 카드들은 모두 정답이 아니다. 정답을 맞히려면 다른 사람이 어떤 카드를 가졌는지 알아내야 한다. 추리 노트에 자신이 알아낸 카드를 표시해 가면서 정답을 좁혀 나가보자.

클루의 게임 준비

클루의 게임 준비

클루에서 플레이어들은 서로 돌아가며 차례를 갖는다. 자기 차례가 됐을 때는 다음과 같이 행동을 한다. 첫째, 먼저 주사위를 굴린다.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만큼 게임판 위의 자기 말을 움직인다.

둘째, 게임판에 그려진 9개의 방 중 한 곳에 자기 말이 들어가면 플레이어는 추리를 한다. 추리는 용의자와 방, 도구를 하나씩 골라 지목하는 식이다. 이 때 방의 이름은 자기 말이 현재 위치한 방이어야 한다. 즉 "지금 내가 있는 방에서, 누가, 어떤 도구로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추리한 사람의 왼쪽에 앉은 사람부터 돌아가며 혹시 자기가 가진 카드 중에 지목된 카드가 있는지 살펴본다. 만약 지목된 카드가 있다면, 그 사람은 해당되는 카드 1장을 추리한 사람에게 몰래 보여준다.

9곳의 범행 장소는 직접 방문해야 추리할 수 있다.

9곳의 범행 장소는 직접 방문해야 추리할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이렇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봉투 안의 카드를 점차 추측할 수 있다. 정답은 플레이어들이 갖고 있지 않은 카드이기 때문에, 답이 아닌 카드를 제외해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답을 확신한다면 자기 말을 게임판 중앙으로 이동시키자. 중앙의 칸에 도착하면 정답을 말한다. 봉투를 열어 카드를 보고, 자기가 말한 정답과 같은지 확인한다. 틀리면 바로 게임에서 탈락하니 주의하자.

즉, 클루는 주사위를 굴려 방과 방을 옮겨 다니면서 추리를 하고, 이 추리를 통해 다른 사람이 가진 카드를 알아내어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다.

매 게임마다 추리의 답이 바뀐다

클루의 게임 배경은 어느 대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이다. 악명 높은 백만장자 사무엘 블랙이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했고, 출동한 형사는 용의자 여섯과 아홉 개의 범행 장소, 여섯 가지 범행 도구를 찾아내 플레이어들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용의자들.

용의자들. 이 캐릭터에도 배경이 있지만, 게임을 풀어가는데 있어 크게 중요치 않다. <출처: divedice.com>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이러한 게임 배경에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클루는 추리 소설이나 여타 추리 게임처럼, 승리하기 위한 단서가 게임 배경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게임 배경은 몰입을 위한 양념에 불과하다. 추리 소설에서 흔히 중요시되는 범행 동기는 이 게임에서 중요치 않다. 게임 내에 독특한 트릭과 속임수 또한 없다. 이야기가 없는 형태의 게임이라 사건의 전모, 반전을 즐기는 추리 소설 팬들이라면 애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추리를 다룬 다른 게임에는 없는 독특한 장점이 있다. 클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은 반복해서 즐길 수 있다. 트릭도 반전도 없지만, 정해진 해답이 존재하는 이야기 또한 없다. 그렇기 때문에 클루에서 정답은 게임을 할 때마다 매번 바뀐다. 따라서 이미 게임을 해본 사람도 다시 다른 사람들과 추리 대결할 수 있다.

추리 게임에 정답이 정해져 있다면, 게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졌을 것이다. 한 번 게임을 즐기고 난 뒤 이미 답을 알게 된다면 처음처럼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함께 여러 번 게임을 플레이 하는 추리 보드게임은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추리 보드게임은 고정된 이야기가 제시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게임 구조의 발전에 따라,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야기와 추리 방식을 결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언젠가는 멋진 트릭과 반전이 존재하는 보드게임을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추리노트 활용법

처음 클루의 추리노트를 보면 생각보다 칸이 많다고 느낄 수 있다. 추리노트의 첫 번째 열에 전체 추리 카드의 이름이 하나씩 나오고, 바로 다음 열이 빈칸인 것까지는 쉽게 이해된다. 답이 아니라고 확인한 카드를 표시하는 용도일 것이다. 하지만 빈칸은 다음 열에도, 그 다음 열에도 이어진다. 2009년 클루 한국어판 기준으로 빈 열은 총 7개다. 추리노트 1장을 여러 게임에 걸쳐 사용하라는 의미일까?

클루의 추리노트

클루의 추리노트 <출처: divedice.com>

아니다. 클루를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은 넉넉한 빈칸을 보며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최대로 필요한 빈칸 열보다 1열이 더 많아!' 하고 말이다. 무슨 소린가? 클루를 잘 하려면 자기 차례에 직접적으로 얻는 정보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이 차례 중 무슨 추리를 하는지, 추리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는지 모조리 기록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각 게임 참가자별 1열씩의 빈칸이 필요하다.

클루에는 정석이라 할 만한 노트 활용법이 존재한다. 먼저, 모든 참가자의 이름을 제일 위쪽 행에 각각 쓴다. 보통은 자기 이름을 왼쪽 첫 번째 빈칸에 쓰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이어서 쓴다. 자신을 기준으로 시계 방향으로 위치한 플레이어를 순서대로 기록하고, 이름보다 숫자나 문자로 표시하는 것이 좀 더 편하다.

다음으로 자기 손에 있기 때문에 정답일 수 없는 추리 카드를 노트에 기록한다. 이에 대한 내용은 자기 이름이 있는 행의 빈칸에 기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손에 그린, 머스타드, 단검, 파이프, 욕실, 식당이 있다고 하면 노트에는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손에 있는 카드는 ×로 표시하고, 손에 없는 카드는 -로 표시했다.

손에 있는 카드는 ×로 표시하고, 손에 없는 카드는 -로 표시했다. <출처: divedice.com>

그러면 자기 손에 어떤 카드가 있고 없는지 분명해진다. 목표는 다른 사람들 손에 어떤 카드가 있는지도 모두 기록하는 것이다. 어떻게? 누군가 추리를 했을 때의 반응을 일일이 기록하면 된다. 클루의 진행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자.

자기 차례 때 상대 카드를 확인하는 것은 간단하다. 추리로 카드 3장을 지목하고 상대의 반응을 기다린다. 지목한 카드가 상대에게 있다면 나는 그 카드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차례가 아닐 때도 정보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누군가 추리를 하고 카드를 몰래 확인했다고 해보자. 나는 추리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확인한 카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목된 카드 중 1장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참가자 B가 추리에서 머스타드와 단검, 서재를 지목했다. 그러자 A는 B에게 손에 든 카드 1장을 보여주었다. 추리 당사자가 아닌 나는 그 카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명백하다. A의 손에는 머스타드와 단검, 서재 중 해당하는 카드가 적어도 1장 있다. 그럼 이를 추리노트에 기록해보자. B가 지목한 카드를 ?로 표시하고 이를 A행의 빈칸에 표시한다.

A가 보여준 카드를 기입하면 답이 보인다.

A가 보여준 카드를 기입하면 답이 보인다. <출처: divedice.com>

이제 표를 다시 보자. A가 B에게 보여준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플레이어는 직접 그 카드를 보지 못했지만, 기록을 통해 카드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됐다. 단서는 내 이름이 적힌 세로줄이다. 손에 있는 카드에는 × 표시를, 없는 카드에는 - 표시를 해뒀다. 각 추리 카드는 딱 1장씩밖에 없기 때문에, 내 손에 있는 카드는 다른 사람 손에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B가 머스타드·단검·서재에 대해 묻고, A가 손에 있는 카드를 보여줬을 때, 그 카드는 머스타드나 단검일 수 없다. 그 두 카드는 이미 내 손에 있는 카드이기 때문이다. 결국 A가 B에게 보여준 카드는 내 손에는 없지만 지목된 카드, 바로 '서재'가 된다. 서재의 ?를 ×로 바꾸자.

예시된 추리노트에 좀 더 기록을 해보자. 이번에는 A가 그린·렌치·욕실을 지목했고, C가 A에게 카드를 1장 보여주었다. 다음으로 C가 머스타드·렌치·마당을 지목해, B가 C에게 카드를 1장 보여주었다. 기록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A가 지목한 카드는 ?1 표시를 해서 전에 B가 지목한 카드와 구분하자. C가 지목한 카드는 ?2 표시로 물음표 옆의 숫자를 높여 마찬가지로 구분하자. 카드를 보여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 해당 세로줄에 표시를 쓰면 다음과 같다.

추리 시트에 표기를 잘하면 승리에 근접할 수 있다.

추리 시트에 표기를 잘하면 승리에 근접할 수 있다. C는 렌치 카드를, B는 마당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출처: divedice.com>

명탐정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언이 두 가지 더 있다.

첫째, 클루는 자기 차례가 아니면 잠시 긴장의 끈을 놓아도 되는 게임이 절대 아니다. 방금 살펴본 노트 활용법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내 차례에 내가 하는 추리만 기록해서는 클루를 잘할 수 없다. 다른 사람 차례에 다른 사람이 하는 추리와 반응도 모조리 기록해야 한다. 여기서 상당한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위에서 설명한 노트 활용법은 클루의 기초 전략에 불과하다. 일단 정석에 익숙해지고 나면, 상급자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정보를 덜 주면서 추리할 수 있을까?'로 바뀐다. 추리할 때 일부러 자기 카드를 포함해 지목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심지어 어떤 때는 자신에게 있는 카드만 지목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특히 초심자들과 게임을 할 때다. 누군가 추리에서 3장의 카드를 말했는데, 다른 사람 아무도 해당 카드가 없었다. 드디어 봉투 안에 든 카드를 맞힌 걸까? 침묵은 곧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다들 게임판 중앙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주사위 운이 좋아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 정답을 선언한다. 그리고, 탈락한다! 추리에서 지목된 3장의 카드는 모두 추리 당사자의 손에 있던 카드였기 때문이다. 물론 상급자들과 게임을 하면 이런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때에 따라 상대의 시간을 상당히 빼앗을 수 있다.

클루는 거의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정답을 알게 되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서는 반 발짝 빠른 추측이 필수다. 그리고 이렇게 추측이 중요해지면, 상대 행위의 의도를 읽어내려는 심리전이 만개한다. 정석은 너무 늦은 추리법이 되고, 상대의 지목 패턴이나 이동 방식을 끝도 없이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방공호에서 탄생한 게임

클루만큼 놀이에 대한 인간의 집념을 잘 보여주는 게임도 없다.

클루의 핵심 아이디어를 최초로 고안해낸 사람은 영국인 안토니 프렛(Anthony Pratt, 1903.8.10 – 1994.4.9)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당시 프렛은 버밍햄에 있는 군수공장에서 일했다. 공장 노동은 지루했고, 나라는 잦은 폭격과 정전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가슴 아팠던 일은 따로 있었다. 평소 즐겨했던 사교 게임인 '머더!(Murder!)'를 전쟁 때문에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머더!는 제대로 하려면 공간과 인원이 꽤 필요했고, 폭격 때마다 숨어 지낸 방공호에는 둘 모두가 부족했다. 좁은 방공호에서 머더!를 즐길 방법은 없을까? 결국 그는 머더!를 보드게임으로 만든다.

클루의 창안자 안토니 프렛과 아내 엘바 프렛

클루의 창안자 안토니 프렛과 아내 엘바 프렛(Elva Pratt, 1913.1.16 -1990.5.9). 엘바 프렛은 남편이 만든 보드게임의 게임판을 디자인했다. <출처: wikimedia.org>

1944년이 되자 프렛은 자신의 보드게임을 들고 웨딩턴 게임즈(Waddingtons Games)를 방문한다. 회사는 그의 게임에 흥미를 보였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아 출시 시기는 더 늦어진다. 이 게임은 1949년 11월이 되어서야 클루도(Cluedo)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의 빛을 본다.

클루도는 '단서'라는 뜻의 클루(Clue)와 '놀다'라는 뜻의 라틴어 루도(Ludo)의 합성어이다. '루도'는 영국에서 유명한 보드게임으로, 너무 유명해서 영국에서는 '보드게임'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됐다. 게임에 루도라는 이름을 붙인 만큼, 클루의 게임판과 '루도'의 게임판을 비교해보면 얼핏 비슷한 느낌도 든다.

이후 클루도는 미국에도 출시됐고, 이 때 미국 판권을 얻은 회사가 그 유명한 모노폴리(1933)의 제작사인 파커 브라더스(Parker Brothers)다.

루도의 게임판.

루도의 게임판. 영국에서 루도로 통하는 보드게임이 미국에서는 파치지(Parcheesi)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어 혼동을 줄 수 있다. <출처: wikimedia.org>

파커 브라더스는 클루도를 클루로 이름을 바꿔 출시했다. 이름이 변경된 이유는 언어 생활의 차이 때문이다. 루도는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똑같은 게임이 영국에서는 클루도로, 미국에서는 클루란 이름을 달고 팔리게 됐다. 두 게임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았다.

1956년 영국에서 출시된 클루도.

1956년 영국에서 출시된 클루도. 셜록 홈즈를 닮은 캐릭터가 눈에 띈다. <출처: wikimedia.org>

게임 디자이너 안토니 프렛은 1994년에 생을 마감했는데, 이 해는 미국의 대형 완구회사 해즈브로(Hasbro)가 미국의 클루, 유럽의 클루도에 대한 모든 판권을 가지게 된 해이기도 하다. 안토니 프렛은 클루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큰 돈을 벌지 못했다. 1953년에 클루도의 해외 판매에 대한 권리를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 웨딩턴 게임즈는 미국에서 클루도가 잘 팔리지 않으리라 예상하며 5000파운드에 권리를 팔 것을 제안했고, 프렛은 이를 받아들였다. 물론 5,000파운드도 당시로서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일을 그만두고 집과 별장을 사는 등 풍족한 생활을 했지만, 1970년대 즈음에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했다고 한다.

다른 클루 게임들

클루도가 처음 출시된 1949년 이후,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클루 게임은 1종류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5년에는 관련 영화가 만들어지더니, 다양한 버전의 클루가 조금씩 제작되기 시작했다. 특히 해즈브로가 웨딩턴 게임즈와 파커 브라더스를 모두 인수하면서부터 변화가 본격화된다.

1998년에는 해즈브로가 클루의 PC 게임 버전을 출시했고, 2001년 위자트 오브 더 코스트(Wizards of the Coast)를 인수한 뒤에는 '클루: 던전 & 드래곤(Clue: Dungeon&Dragons, 2001)'도 출시했다. 또 2000년에는 '클루: 더 심슨(Clue: the Simpsons, 2002)'이, 2008년에는 '클루: 해리포터(2008)'가 나와 인기를 끌었다.

클루의 다양한 판본들

클루의 다양한 판본들 <출처: divedice.com>

이들 게임은 모두 클루 기본판에서 소재만 바꾼 작품들이다. 일부 게임은 독특한 추가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클루: 던전&드래곤'에서는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수 있다. 주사위를 굴려 승패를 정하고, 이기면 전리품을 얻는다. '클루: 해리포터'는 게임판 아래에 회전판을 달았다. 주사위 결과에 따라 회전판을 돌리게 되는데, 돌면서 문을 닫거나 벽난로의 불을 켠다. 불이 켜진 벽난로는 방과 방 사이를 순간 이동할 때 사용한다.

클루 카드 게임

클루 카드 게임(Clue: the Card Game, 2002) <출처: divedice.com>

혹시 주사위를 싫어하는가?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는 일이 귀찮고 지루한가? 순수 추리에만 집중하고 싶은가? 그럼 '클루 카드 게임'은 어떨까. 2002년에 출시된 이 게임은 게임말, 게임판, 주사위 모두 없애고 카드만 남겼다. 게임 목적은 클루와 같다. 가장 먼저 카드 3장의 정체를 맞히는 사람이 이긴다. 추리 규칙도 클루와 비슷하다. 카드를 2장 지목하면, 상대는 해당 카드를 몰래 보여준다. 기본 클루에서 추리 부분만 뽑아낸 느낌이다. 구성물이 카드뿐이니 휴대하기도 간편하다.

추리 게임의 문법을 정립한 고전

최근 판매되고 있는 클루에는 특수 카드가 추가됐다.

클루 또한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최근 판매되고 있는 클루에는 특수 카드가 추가됐다. <출처: divedice.com>

전쟁 중에도 게임은 해야 했던 인간의 집념, 어느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안토니 프렛이 추구했던 재미가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클루는 추리 보드게임의 대명사가 됐고, 덕분에 새로운 추리 보드게임도 클루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면서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미 좋은 후배가 많이 나온 탓에 이제는 빛이 바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간결한 규칙과 직관적 진행, 고전 추리 소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저택과 살인이라는 소재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그 매력을 잃지 않을 것 같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이창민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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