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M 이승훈 감독, "스타워즈 제작의 꿈을 현실로 이루기까지"

안수영 syahn@itdonga.com

[IT동아 안수영 기자] '어벤져스2', '스타워즈', 그리고 '터미네이터'. 이들 작품은 화려한 특수효과가 가미된 블록버스터 영화이자, 많은 팬층을 거느리고 있는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이런 영화들을 감상하다 보면 문득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영화 속 멋진 효과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영상 기술이 점점 발전하며 영화 속 특수효과는 더욱 정교하고 화려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분야에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할리우드의 VFX(Visual FX, 시각적인 특수효과)를 담당하는 대표 스튜디오인 'ILM(industrial light & magic, 루카스필름의 자회사)'은 디지털 영상 기술 분야의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일터 중 하나다. 그리고 현재 ILM에서 creature supervisor로 활동하며 이러한 꿈을 직접 실현하고 있는 이승훈 감독이 있다. 그의 손끝에서 '어벤져스2'와 '아바타', '스타워즈' 등 수많은 영화 속 명장면과 특수 효과들이 탄생했다.

이 감독은 광교 경기문화창조허브에서 '미디어아트 영상의 해외진출 방법'에 대해 강연하기도 했다. 세미나를 넘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그가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온 길과 영화 속 작업 과정에 대해 물었다.

ILM 이승훈 감독
ILM 이승훈 감독

스타워즈의 꿈을 품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다

이 감독은 ILM에서 creature supervisor로 12년째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2년부터 컴퓨터그래픽 관련 일을 했고, 일본의 Dreampictures studio와 Polygon Pictures에서 3년간 근무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2003년도부터 ILM에서 일하고 있다. ILM에서는 아바타, 스타워즈, 캐리비언의 해적, 해리포터, 트랜스포머 등 약 23편의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에 참여해 왔다. 화려한 이력 속, 그가 어떻게 디지털 영상 기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들어봤다.

"제가 대학생이던 1990년대 초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쥬라기 공원'과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들이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그런 영화들을 보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컴퓨터그래픽 분야를 공부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얻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스타워즈'라는 영화를 만든 회사가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를 만든 회사와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ILM이라는 회사는 저에게 꿈의 직장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만들던 결과물은 CF 속의 작은 컴퓨터 그래픽 영상이었지만, 그는 쥬라기 공원과 터미네이터를 만든 회사도 자신과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이것이 그가 디지털 영상 기술 분야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997년 IMF 이후, 그는 일본에서 3년 정도 일을 했다. 그는 일본에서 일하며 아쉬움을 하나 깨달았다. 일명 경제 대국이라 불리는 일본이라 할지라도, 미국에서 제작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충분히 제작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는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습니다. 일본에서 일하며 미국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요, 미국에 소재한 많은 회사에 데모 테이프를 보냈습니다. 물론 많은 곳에서 거절당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제 데모 테이프를 좋게 평가한 몇몇 회사에서 전화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기회가 찾아왔어도 미국 취업의 문을 두드리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이 감독은 영어가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인터뷰하는 사람의 질문이 뭔지도 몰랐고, 제대로 된 답변도 못했어요. 결국 번번히 인터뷰에 실패하게 됐죠. 여러 실패를 겪으면서 제 자신에게 화가 났어요. 영어를 조금만 더 잘하면 기회가 올 것 같은데, 일본에서 일만 하면서 부족하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화가 많이 났습니다"

당시 32살이었던 이 감독은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다"라는 심정으로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무작정 그만두고, 미국으로 8개월 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이 감독은 8개월 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구직을 계속 시도했지만, 학생 신분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일본에 있을 때보다 관심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8개월의 시간이 끝나갈 즈음, 일본에서 같이 근무하던 친구가 미국에 스튜디오를 오픈했어요. 반가운 마음에 방문했다가, 일손 부족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1년여 정도 근무하는 와중에도 계속 ILM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 감독은 "아마도 ILM에만 5번 이상 데모 테이프를 보냈었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끊임없는 도전에 힘입어 ILM에 합격하게 됐다. 하지만 6개월에 불과한 프로젝트 계약으로 취업하게 된 것이라 안심할 수는 없었다.

"계약직인데다, 그때까지는 영어를 구사하는 데 무리가 있었습니다. 여러모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6개월 간 필사적인 시간을 보냈고,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ILM의 스텝이 되었다. 하지만 평탄한 길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감독은 10년 정도의 경력이 있었지만, 회사에서는 신입 사원으로 입사할 것을 제안했다.

"그 당시 저에게는 돈보다는 이 회사에 들어오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것도 아무 고민 없이 결정했습니다. 사실 그 때 영어를 좀 더 잘했다면 더 좋은 조건이 제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후회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벤져스2와 아바타 속 명장면이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ILM에 입사한 그는 '스타워즈'와 '아바타', '트랜스포머3' 등을 비롯한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올해 상반기 화제를 모았던 영화 '어벤져스2'도 이 감독이 직접 작업했다. 그가 담당한 영화 속 작업에 대해 물었다.

"ILM에서 저는 캐릭터의 셋업과 리지드 시물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리깅은 모델러가 작업한 모델에 뼈대를 심고, 근육을 만들어 실제와 같은 움직임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리지드 시뮬레이션은 트랜스포머에서 빌딩이 무너지고, 로봇들이 리얼하게 부서지는 시뮬레이션을 말합니다.

어벤져스2를 보면, 영화 마지막 부분에 모든 로봇들이 어벤져스 팀에게 덤벼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그 장면에서 리지드 시뮬레이션(rigid simulation)을 담당했는데요, 수많은 로봇들이 주인공들에게 덤비고, 잘리고, 부서지는 효과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 감독은 영화 '아바타'의 작업에도 참여했다. 영화에서 인간 쪽 대장이 비행선에서 뛰어내리고, 나무에 부딪히는 장면의 시뮬레이션을 주로 담당했다.

"특히 비행선이 나무와 부딪히는 장면을 연출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수많은 나뭇가지가 비행선과 부딪히고, 부서지고, 휘어지는 효과를 만드는 과정을 연구하는 데 굉장히 까다로웠는데요, 어려웠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고, 즐거웠습니다"

이 감독은 수많은 영화 작업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스타워즈'를 꼽았다. 그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그가 스타워즈를 만드는 것을 꿈꿨기 때문이다.

"저에게는 스타워즈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어요. 스타워즈 에피소드3를 제작했고요, 회의실에서 요다가 악당보스와 싸우는 장면을 주로 제작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결코 쉽지 않지만, 이 감독은 평소 회사에서도 남들이 기피하는 난이도 있는 장면들을 자청해서 하는 타입이다. 이 감독은 "이미 할 줄 아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은 쉽지만, 발전하는 것이 없고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남들이 어렵다고 기피하는 것을 멋지게 만들어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스타워즈의 장면을 제작하는 데는 약 3개월 정도 걸렸는데요, 결과물이 좋게 나와 회사에서도 '베스트 시뮬레이션'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이 감독은 디지털 영상 기술의 정점을 구현하는 곳에 있다. 그가 바라보는 한국의 영화 산업과 디지털 영상 기술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현재 한국에서도 특수효과를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어벤져스'나 '트랜스포머'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저도 한국에서 제작 경험이 있고, 그 때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한국에서 활발하게 영화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정말 손재주가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만, 한국에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인구가 적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인구가 많지 않다 보니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만들어 제작비를 충당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제작하는 '트랜스포머'와 같은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 제작비만 하더라도 몇백 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꼭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한 영화가 '트랜스포머'나 '어벤져스'와 같은 장르로 나와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님의 '괴물' 같은 경우에는 드라마와 컴퓨터그래픽을 효과적으로 결합된 좋은 사례인데요, 개인적으로도 이런 영화가 더 재미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는 좋은 스토리와 연출을 바탕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적절히 조합하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고, 이렇게 한다면 발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꿈을 실현하는 방법이란?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시도하세요"

디지털 영상 기술이 날로 발전하는 만큼, 해당 분야에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그가 과거에 스타워즈를 보며 꿈을 키워왔던 것처럼, 그가 만든 영화를 보며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이 감독은 이러한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전세계에서 많은 아티스트들이 ILM을 비롯해 프로덕션 입사를 꿈꾸고 있는데요, 현 미국의 상황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의 대형 프로덕션들은 미국보다는 세금 혜택을 제공하는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뉴질랜드, 유럽 등으로 회사를 옮기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미 여러 회사들이 해외로 본사를 이주했습니다. 현재 대형 프로덕션으로써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는 ILM밖에 없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아티스트들이 해외로 이주해 미래를 꿈꾸고 있는데요, 주로 젊은 친구들이나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해외로 많이 이주했습니다. 반면, 경력이 있거나 가정을 둔 사람들은 주로 미국에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따라서 미국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이미 경력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현지에 많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감독은 현재 대형 프로덕션들이 경력자를 선호하고 있고, 워킹 비자의 수요가 워낙 많아서 비자를 받기가 쉽지 않다며 현실적으로 조언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꼭 대형 프로덕션만을 생각하기보다는, 동종업계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실력이 높아졌을 때 도전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러면 보다 쉽게 대형 프로덕션에 진출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 나이, 성별, 학력 등의 조건은 의미가 없습니다. 경력을 쌓는 게 우선입니다. 꼭 유학이 정답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많은 경력을 쌓고 미국으로 취업되는 경우도 여러 번 봤습니다. 다만, 영어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소통이 안 되면 인터뷰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이어 이 감독은 "꾸준히 일을 하고 미래를 준비하다 보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라며,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현실적인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만,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끝까지 도전하세요. 잠시 길을 돌아가더라도, 꾸준히 노력하고 기다리면 반드시 그 길이 열립니다. 사실, 실력이 뛰어난 많은 사람들이 골인점 가까이 와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금 더 참고 견디는 사람들이 결국은 골인점을 통과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수줍어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세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많은 정보를 얻게 되고,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기억하게 됩니다. 당신이 꾸준히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다 보면, 그런 기회가 생겼을 때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추천할 것입니다.

또한, 컴퓨터 그래픽 실력을 빨리 향상시키는 방법이 있는데요.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친구에게 만들게 하고, 그 친구가 만들고자 하는 영상을 자신이 만들어 보세요. 그러면 빠른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혼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는 굉장히 힘들뿐더러 결론을 내리기가 힘듭니다. 수정을 거듭하다가 시간에 쫓겨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내기도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노력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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