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의실]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보의 바다 - 인터넷

이상우 lswoo@itdonga.com

[용어로 보는 IT 2015년 개정판]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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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은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정보의 바다다. 사진은인터넷 상의주요 IP주소를 연결해구현한 인터넷 지도 <출처: (CC)The Opte Project at wikipedia.org>>

거리의 제한 없이 많은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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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시분할 시스템 이론을 발표한 릭라이더>

원론적인 의미로 따져보면 세계 최초의 컴퓨터는 ‘주판’이다. 컴퓨터(Computer)라는 단어 자체가 ‘계산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창기의 전자식 컴퓨터들은 단순히 계산을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컴퓨터의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컴퓨터는 단순한 계산기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정보 단말기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처리하는 데이터가 다양화되고 용량이 방대해지면서 한 대의 컴퓨터로는 이를 모두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이르렀다. 때문에 개발자들은 두 대 이상의 컴퓨터가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디스크(Disc)로 대표되는 보조기억장치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직접 들고 다니며 데이터를 교환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모되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 외에 2대의 컴퓨터를 케이블로 직접 연결해 데이터를 교환하는 방식도 도입되었지만 케이블 길이의 제한도 있고, 3대 이상의 컴퓨터와 데이터를 교환하기에는 여전히 불편했다. 거리의 제한을 거의 받지 않으면서도 많은 수의 컴퓨터와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는 수단의 도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1960년, 미국의 릭라이더(Joseph Carl Robnett Licklider, 1915~1990) 박사는 여러 명의 사용자가 하나의 컴퓨터에 접속하여 작업하면서도 처리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분할 시스템(Time Sharing System, TSS)’의 기초 이론을 발표했다. 이는 컴퓨터의 연산 속도에 비해 사용자의 데이터 입출력 속도가 느리다는 것에 착안한 것인데, 예를 들어 A 사용자가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출력하는 사이의 공백 시간 동안 컴퓨터는 B 사용자에게 입력 받은 데이터를 처리한다는 것이다. 시분할 시스템은 이후 등장하는 거의 모든 컴퓨터 네트워크 시스템의 기본 이론이 된다.

아르파넷과 인터넷

그리고 1969년, 미국 국방부 산하의 고등연구계획국(Advanced Research Project Agency)은 릭라이더의 시분할시스템을 현실화한 ‘아르파넷(ARPANET: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아르파넷은 컴퓨터들을 직접 연결하는 회선 교환 방식 대신, 대규모의 기간 통신망을 구축해 이에 연결된 컴퓨터끼리 자유롭게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백본(backbone) 방식을 도입했다. 이렇게 하면 핵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데이터의 보관 및 공유, 그리고 분산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파넷은 1969년 첫 기동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타바버라(UCSB),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소(SRI), 그리고 유타 대학을 비롯한 당대의 대표적인 연구기관 4곳이 참여했다.

참고로 복수의 통신망을 집합시킨 광역 통신망을 뜻하는 일반명사를 ‘인터네트워크(internetwork)’라고 하는데, 미 국방성의 아르파넷은 이러한 인터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구축한 최초의 사례였다. 아르파넷은 당초에는 연구용으로만 쓰였으나 시간이 흐르고 참여 기관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목적으로 이를 쓰고자 하는 요구가 많아졌다. 또한 컴퓨터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프로토콜(protocol, 컴퓨터끼리의 공통된 통신 규약)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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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파넷은 점차 망을 넓혀나가며 인터넷의 초석이 되었다. (1974년의 상황)>

이러한 요구들로 인해 1983년, 미 국방성은 군사용 네트워크 기능을 밀넷(MILNET, Military Network)으로 분리시키고, 아르파넷은 민간용 네트워크가 되었다. 또한, 초창기에 사용하던 NCP(Network Control Program)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 및 안정성이 향상된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internet protocol)를 공식 프로토콜로 도입했다. 이로 인해 현대적인 컴퓨터 네트워크의 기본 구조가 갖춰졌으며, 이 때를 즈음하여 ‘인터넷(Internet)’은 단순히 일반명사 ‘인터네트워크’의 약자가 아닌 고유명사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인터넷의 확장, 그리고 상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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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NSFNET의 로고>

그리고 1986년,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미국내 5개 슈퍼 컴퓨터를 연결한 TCP/IP 기반의 통신망인 ‘NSFNET(National Science Foundation Network)’을 구축했다. NSFNET은 학술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1988년, 아르파넷이 NSFNET에 흡수됨에 따라 거대한 네트워크망이 완성되어 인터넷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다만, NSFNET은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술 연구 및 교육분야 외에는 이용이 제한되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을 상용으로 쓰고자 했던 미국의 통신 사업자들은 1991년, CIX(Commercial Internet eXchange)라는 협회를 구성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 가능한 인터넷 기간 통신망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CIX에는 미국 외에도 여러 국가들의 기업들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인터넷의 상업화는 급격하게 진행된다.

월드와이드웹(WWW)의 도입, 현대적인 인터넷의 탄생

1980년대 말부터 인터넷의 망(web) 자체는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으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특정 목적의 프로그램끼리 통신하는데 주로 쓰였기 때문에 이용형태 및 이용 가능한 데이터의 종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1989년,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연구원인 영국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 박사는 문자 및 그림, 음성 등의 다양한 데이터를 포함한 방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 뒤,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표준 문서 형식을 규정하고 문서 속에 연결된 특정 항목은 또 다른 문서로 연결되는 정보 검색 시스템을 제시했다.

이는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이라는 세계적인 정보 공유공간 및 이를 구성하고 있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 서로 연결되는 문서) 방식의 인터넷 표준문서인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의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WWW는 1991년 8월 6일에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세계 최초의 홈페이지(Home Page)도 이날 처음 공개되었다. 현재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인터넷’의 형태, 즉 웹 브라우저(web browser, HTML 문서를 화면에 표시하는 프로그램)를 구동해 각종 인터넷 문서를 읽고 검색하는 모습이 이때부터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WWW의 개념을 처음 구상한 팀 버너스 리는 그 외에도 인터넷 데이터의 위치를 표시하는 기준인 ‘URL(Uniform Resource Locator)’, WWW 상에서 하이퍼텍스트를 교환하는 프로토콜인 HTTP(HyperText Transfer Protocol), 그리고 세계 최초의 웹 브라우저 넥서스(NEXUS, 원래 이름은 '월드와이드웹'이었으니 인터넷 서비스 '월드 와이드 웹'과의 혼동을 줄이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등의 설계 및 규격 제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WWW가 인터넷 서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팀 버너스 리는 ‘웹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또한, 월드 와이드 웹의 확산 속도는 1993년 그래픽 기반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가 등장하면서 급속도로 빨라진다.

미국의 전기 공학자 로버트 메트칼프는 인포월드에 기고한 글에서 “1세대 웹은 팀 버너스 리가 개발한 URL, HTTP, HTML다. 이를 통해 몇몇 사람에게 웹이 고퍼 프로토콜보다 낫다는 것을 알게 했다. 2세대 웹은 마크 안드레센과 에릭 비나가 개발한 모자이크다. 이를 통해 수백만 명에게 웹이 섹스보다 낫다고 생각하게 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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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그래픽 기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Mosaic)>

한국 인터넷의 태동과 발전

한국에서는 1982년 서울대학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사이에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을 구축한 것을 인터넷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리고 1986년 7월에 IP주소를 처음으로 할당 받았고, 같은 해 9월 한국데이터통신(1991년에 ‘데이콤’으로 사명 변경)에서 비디오텍스트(VT, Video Text)기반 PC통신 서비스인 ‘천리안’을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인터넷 서비스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리고 1994년, 한국통신(현재의 KT)에서 한국인터넷(코네트, KORNET)이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WWW 기반의 인터넷 접속 및 계정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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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한국통신에서 WWW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다. (1994년 6월 21일자 동아일보 보도)>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한국 사용자들이 속도가 느린 전화 회선을 통해 인터넷에 접속했다. 하지만 1998년에 두루넷(2005년에 하나로 텔레콤에 합병)이 케이블 TV망 기반의 초고속 인터넷(Broadband) 서비스를 한국 최초로 시작하면서 인터넷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PC보급이 폭발적으로 증가던 시기와 맞물려 2000년대에 이르러 약 1,900만 명의 한국인이 인터넷을 이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인터넷 사용자 수는 얼마나 될까? Internet World Stats에 따르면 2014년 6월 30일 기준으로, 전세계 30억 3,574만 9,340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42% 정도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셈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인구수 대비 인터넷 사용자는 92.4%다. 약 4,531만 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속도 역시 평균 다운로드 속도가 59.08Mbps로, 글로벌 평균인 23.91Mbps의 두 배 이상으로 성장했다(2015년 6월, 넷 인덱스 기준).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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