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이폰 사용자의 특혜, 필립스 피델리오 M2L 헤드폰

이문규 munch@itdonga.com

최근 들어 '듣는 것'에 관한 관심과 가치가 '보는 것'만큼 강조되고 있다. 사운드를 집중 강화한 극장 특별관에 고객이 몰리고, 음질을 대폭 개선한 TV나 스마트폰, MP3 플레이어 등도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좋은 화질에는 좋은 음질이 든든히 뒷받침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고 있다. 이에 따라 양질의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많아졌다. 자신(의 귀)을 위한 작은 사치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덕에 스마트폰 사용자의 청감을 만족시키는 고급 이어폰, 헤드폰이 대거 등장했다.

그 수 많은 이어폰과 헤드폰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제품이 하나 있다. 필립스의 아이폰 전용 헤드폰인 '피델리오 M2L'이다. 겉모양은 다른 헤드폰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단 하나! 연결 단자가 남다르다. 아이폰5/6의 라이트닝 단자에 꽂는 헤드폰이다. 여기다 꽂아도 소리가 나오는가 보다.

아이폰 전용 헤드폰 피델리오
M2L
아이폰 전용 헤드폰 피델리오 M2L

그런데 왜 굳이 라이트닝 단자에 헤드폰을 꽂아야 할까? 헤드폰을 꽂으면 충전을 못하니 불편할 것 같은데, 그저 특이해 보이려 그랬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충전을 포기하면서 헤드폰을 라이트닝 단자에 꽂는 건 온전히 '음질' 때문이다. 음향기기에서 음질을 위해 무언들 포기하지 못하랴.

우선, 디지털 음악의 출력과정에 대해 대략 알아야 라이트닝 단자 연결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다. 아이폰에서 나오는 소리는 디지털 신호다. 이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야 기존의 오디오(아날로그) 단자를 통해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출력된다. 이 역할, 즉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게 'DAC(Digital-Analog Converter, 디지털-아날로그 변환기)'라는 부품이다. 헌데 아이폰에 내장된 DAC을 사용하면 신호 변환 과정에서 노이즈(잡음)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음질이 저하된다. 더구나 아이폰 DAC의 성능이 대단히 좋지는 않은 걸로 알려져 있다.

이에 M2L은 헤드폰 자체에 DAC를 내장하고 있어, 아이폰 DAC를 거치지 않고 라이트닝 케이블을 타고 들어온 디지털 신호를 M2L DAC가 직접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해 출력한다. 이 때문에 잡음 발생이 거의 없어 좀더 우수한 음질을 기대할 수 있다(실제로도 확실히 그렇다). 여기에 M2L에는 사운드를 증폭하는 앰프도 달려 있다.

M2L은 라이트닝 커넥터에
연결된다
M2L은 라이트닝 커넥터에 연결된다

이처럼 헤드폰에 24비트/48kHz DAC이 내장됐다는 건 아이폰 사용자에게는 더 없는 축복이다(참고로 16비트/44.1kHz 기준이 CD음질이다). 그래서 작년에 M2L이 처음 공개 됐을 때 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국내 정식 출시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아이폰6 사용자인 본 리뷰어에게도 기회가 찾아 왔다.

피델리오 M2L은 라이트닝 단자를 제외하면 다른 헤드폰과 다를 거 없다. 오른쪽 드라이버 유닛에는 볼륨 조절 레버가 달려 있고, 이 레버 주변의 격자 무늬 버튼을 누르면 곡 재생/정지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이 버튼을 한번 누르면 재생/정지되며, 두 번 누르면 다음 곡, 세 번 누르면 이전 곡이 재생된다. 뮤직 앱이든 동영상 앱이든 유튜브든 멜론이든 재생 목록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동일하게 적용된다.

볼륨 조절 레버 및 버튼
볼륨 조절 레버 및 버튼

드라이버 유닛의 스펀지는 나름대로 푹신하지만, 장시간 착용하고 있으면 귀가 눌려 좀 아리긴 하다(이는 사용자마다 차이가 있겠다). 유닛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아 성인 남성이라면 귀를 완전히 덮지 않을 것이다. 스펀지 안쪽에는 좌우 방향을 헛갈리지 말라고 친절하게 'L', 'R' 표시도 해뒀다. 밴드의 길이는 머리 크기에 맞게 조절할 수 있지만, 머리 면적이 큰 사용자는 길이가 약간 짧게 느껴질 수도 있다(착용 사진 참고). 여담으로, 밴드의 너비가 그리 넓지 않아 머리에 썼을 때 헤어스타일을 크게 망가뜨리진 않는다. 케이블은 끊어짐을 방지하도록 피복으로 단단히(정말 단단히) 싸여 있다(그래서 줄꼬임이 덜하다). 케이블 길이는 약 120cm로 무난한 수준이다.

큰 머리에는 약간 작을 수 있을 듯
큰 머리에는 약간 작을 수 있을 듯

참고로 M2L은 (헤드셋이 아닌) 헤드폰이라 마이크가 없다. 음악을 듣는 중 전화가 오면 재생/정지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을 순 있고, 사용자의 음성은 아이폰을 통해 입력된다. M2L을 쓴 채로 아이폰에 대고 통화하면 되니(마치 스피커폰 사용하듯) 그다지 불편함은 없다.

자, 이제 M2L의 라이트닝 단자를 아이폰에 꽂는다. 탁월한 음질을 선택하는 대신 충전은 할 수 없다. 충전? 얼마든지 양보한다. 앞서 언급했듯, M2L에는 앰프가 들어 있어 아이폰의 전원을 아주 조금 사용한다. 이 역시 얼마든지 인정한다. 음질을 위해서라면... M2L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면 책상서랍에 처박아 두었던 외장배터리 팩을 기꺼이 가방에 넣고 다니련다.

드라이버 스펀지 부분 왼쪽/오른쪽 표시
드라이버 스펀지 부분 왼쪽/오른쪽 표시

이 리뷰에서는 아이폰6 플러스에 뮤직 앱(CD추출 음악), 멜론 앱(HQ음질 설정), nPlayer 앱(동영상, FLAC 파일), 유튜브, 게임(블레이드, 헤일로:SA) 등을 실행하며 M2L의 음질을 확인했다. 스피커나 이어폰 등의 음향기기를 테스트하며 늘 듣던 여러 장르(클래식, 재즈, 락/팝, OST 등)의 음악을 매일 1~2시간씩 반복해서 들었다. 음향기기 리뷰 때마다 늘 강조하지만, 보기/듣기에 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으니 사용자마다 체감이 다를 수 있다.

M2L을 처음 딱 5분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이 '깨끗하다'였다. M2L 내장 DAC 덕에 잔잡음 하나 없이 깔끔하고 청량한 사운드가 압권이다. 앰프도 내장했으니 음량의 풍성함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어폰이 아무리 훌륭해도 사운드의 풍성함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헤드폰을 넘어설 수 없음을 M2L을 증명하고 있다. 사용 후 10여 분이면 M2L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청취를 위해 스트리밍 고음질 모드를 적용했다
청취를 위해 스트리밍 고음질 모드를 적용했다

볼륨을 어느 정도 높이면 외부 소음은 출력 사운드에 완전히 묻혀 아예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그럴 사람은 없겠지만, 운전 중에는 당연히 사용 금지다. 공부할 때나 책을 볼 때도 사용하기 곤란하다. 음악에 빠져들어 공부나 책에 집중할 수가 없다.

30만 원대(예상 가격) 헤드폰으로 아이폰, 아이패드 사용자라면 누구라도 만족스러워 할 음량과 음질이라 평가한다. 내장 앰프로 인해 든든한 울림(저음)이 받쳐 주고 잡음 없이 깨끗한 고음은 라이트닝 단자 연결의 특징을 잘 살린다. 이는 음향기기 테스트 시 늘 듣는 영화 '분노의 역류(Back Draft)' OST 앨범의 9번째 트랙 'Show me your Firetruck'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 수백, 수천 번 이상을 들은 곡이지만 M2L로 다시 들으니 영화 엔딩 장면이 떠오르며 짜릿하고 뭉클한 전율이 돋아난다. 역시 OST 음악 감독 한스 짐머의 곡은 헤드폰으로 들어야 제 맛이다. 한 감독의 다른 OST 앨범인 '인셉션(Inception)', '맨오브스틸(Man of Steel)', 특히 최근 발매된 '인터스텔라(Interstellar)' 등은 M2L의 가치를 체감하기에 좋은 앨범이다.

본 리뷰어는 M2L을 사용하면서, 영국 출신의 사랑스러운 얼터너티브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전설적 앨범인 '더 밴즈(The Bends, 1995)'와 'OK컴퓨터(OK Computer, 1997)'를 무한반복 청취했다. 역시 좋은 노래는 좋은 음향기기로 들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됐다.

깜깜한 밤에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가며 초여름 푸른 가로수 아래에서 듣는 'Fake Plastic Trees'는, '더 밴즈' 앨범 자켓 사진과 같은 정신줄 놓은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며 듣는 'Nice Dream' 역시 발바닥에 붙은 각질세포마저 깨어나게 한다. 아, 피델리오 M2L 헤드폰, 참 괜찮은 녀석이다.

M2L로 음악을 들으면 이 '표정'이
된다
M2L로 음악을 들으면 이 '표정'이 된다
<라디오헤드의 '더 밴즈' 앨범>

필립스 피델리오 M2L의 정식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해외에서(아마존닷컴) 299불에 판매되고 있으니, 국내에서는 35만 원 내외로 책정될 것으로 예상한다.

M2L을 담을 수 있는 파우치도 준다
M2L을 담을 수 있는 파우치도 준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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