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주문을 잊어버린 마법사들의 대결, '아브라카...왓?'

안수영 syahn@itdonga.com

아브라카...왓?
(2014)
아브라카...왓? (2014)

아브라카...왓? (2014) <출처: divedice.com>

2014년 출시된 '아브라카...왓?'은 그 동안 발매된 한국 보드게임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은 작품이다. 이 게임은 떠오르는 신예 작가 김건희와 프랑스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까두아(Marie Cardouat)가 함께 제작해 화제가 됐다.

어려운 전략 게임 위주로 출판되던 한국 보드게임 산업의 흐름에서 벗어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게임을 지향했다는 점도 독특하다. 이런 점 때문에 '아브라카...왓?'은 2014년 독일 에센 박람회에서 세계적인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라 국내에서 개발된 게임으로는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고, 2015년 2월 기준 10개국에 수출을 확정했다. 이렇게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이 게임. 아마 당신만 모르고 있지 않을까.

주문을 외워보자

'아브라카...왓?'은 주문을 기억하지 못하는 마법사가 되어, 마법 주문을 추리하는 보드게임이다. 게임의 목적은 간단하다. 마법의 돌에 표시된 주문을 외워 경쟁자를 쓰러뜨리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마법의 돌의 주문을 모두 맞히면 승리한다.

'아브라카...왓?'의 구성물
'아브라카...왓?'의 구성물

'아브라카...왓?'의 구성물. <출처: divedice.com>

게임에는 36개의 마법의 돌 타일이 있다. 각 마법의 돌에는 한 가지씩 마법 주문이 적혀 있다. 마법 주문은 1번부터 8번까지 8종류다. 1번 마법의 돌은 1개, 2번 마법의 돌은 2개, 3번 마법의 돌은 3개... 이런 식으로 8번 마법의 돌은 8개가 있다. 마법의 돌에 표시된 숫자만큼 마법의 돌이 있는 셈이다.

게임 준비.
게임 준비.

게임 준비. <출처: divedice.com>

먼저, 이 마법의 돌들을 뒤집어 잘 섞는다. 각 플레이어는 5개씩 마법의 돌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마법의 돌 뒷면이 자신을 향하도록 나란히 세워놓는다. 자신은 주문을 볼 수 없고 남들에게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6개의 생명력 토큰을 가져오고 같은 색의 점수 토큰을 점수판에 둔다.

이제 다른 플레이어들의 마법 주문을 보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마법 주문을 추리하면 된다. 만약 다른 플레이어들이 아무도 3번 마법의 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나에게 3번 마법의 돌이 있을 수도 있다. 이 게임에서 1번 마법의 돌은 1개뿐이고 8번 마법의 돌은 8개이니, 확률적으로 나에게 8번 마법의 돌이 있을 것이라 추측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남은 돌의 개수, 다른 플레이어의 마법의 돌 등을 토대로 내게 있는 주문을 추리해 볼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의 마법을 보고 추리할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의 마법을 보고 추리할 수 있다.

_내 주문이 안 보이기 때문에 답답하지만, 다른 플레이어의 마법을 보고 추리할 수 있다. <출처: divedice.com> _

자기 차례가 되면 최소한 주문 하나는 외쳐야 한다. 단순히 주문의 번호를 외쳐도 되지만, 주문의 이름을 외치면 더 극적이다. "번개폭풍"이나 "불덩이 작렬"을 특유의 포즈와 함께 외치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낄 새도 없이, 어느새 게임에 몰입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방금 외친 주문이 있다면 다른 플레이어들이 확인해주고, 마법의 돌을 소모하며 주문의 효과가 발동된다. 성공한다면 추가로 주문을 외울 수 있다. 주문을 더 외워서 자신의 마법의 돌을 더 소모해도 되고, 중지하고 차례를 넘겨도 된다. 자신에게 없는 주문을 말하면 실패해 생명력 토큰을 잃을 수 있으니, 적당히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자신의 앞에 놓여진 마법의 돌을 모두 외치는데 성공한다면 그 즉시 게임에서 승리하게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항상 욕심과 안전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8가지 강력한 마법 주문
8가지 강력한 마법 주문

8가지 강력한 마법 주문. <출처: divedice.com>

이 게임에서는 8가지의 마법 주문을 통해 강력한 드래곤을 소환하거나, 불덩어리를 날리거나, 마법 물약을 만들어 부상을 치료할 수 있다. 마법 주문은 숫자가 작은 주문일수록 효과가 강력하다. 예를 들면 1번 마법의 돌은 1개뿐이지만,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만큼 모든 플레이어들의 생명력을 빼앗을 수 있다.

처음에는 찍기에 가깝지만, 게임 중 단서가 늘어나면 점점 정교하게 추리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항상 빠지는 4개의 '비밀의 돌'이 있어, 완벽하게 찍을 수는 없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도전적으로 주문을 외워야 할 때가 생기는데, 이것이 큰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준다.

주문에 실패하면 생명력 토큰을
잃는다
주문에 실패하면 생명력 토큰을 잃는다

주문에 실패하면 생명력 토큰을 잃는다. <출처: divedice.com>

주문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차례를 거듭할수록 추리를 위한 단서는 점점 늘어난다. 게임 후반부에는 생명력 토큰이 떨어져가는 경쟁자를 노리거나, 자신의 남은 주문을 모두 소모해 단번에 승리를 노릴 수 있다. 점점 쫄깃쫄깃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게임 개발 과정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최초의 보드게임 카페가 문을 연 2002년 이후, 국내 보드게임 산업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질과 양 모두 크게 성장했다. 유통 구조가 개선되었고, 동호인 규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며, 취미에 대한 인식도 나아졌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게임 창작과 개발 분야의 성장은 더뎠다. 보드게임 창작은 2002년부터 꾸준히 시도됐지만, 갓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던 우리나라에서 보드게임 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창작물을 따라잡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해외에서는 게임이 완성되기 전, 테스트를 위한 그룹의 인원을 100명 정도 보유할 만큼 보드게임 제작 환경이 좋다. 국내 보드게임 동호인 규모는 작지 않지만, 국내 작가가 개발한 게임을 오랜 시간 해보고 개선 방향을 조언하며 같이 만들어가는 사람은 지난 몇 년간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동호인들이 그 시간에 해외의 유수 게임들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국내 유통사도 낮은 인지도와 판매, 홍보의 어려움 때문에 국내 창작 보드게임을 출시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3년, '고려'로 해외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보드게임 작가 김건희는 창작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국내 최대의 보드게임 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에 제안을 하게 된다.

'아브라카...왓?'의 초기 프로토
타입
'아브라카...왓?'의 초기 프로토 타입

'아브라카...왓?'의 초기 프로토 타입 <출처: divedice.com>

최초에 이 게임의 제목은 '올드 매지션(Old Magician)'이었다. 아침에 주문서에 적어놓은 마법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노쇠한 마법사들이 마법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이었다. 노쇠한 마법사들이 주문에 자주 실패하고, 실패하면 날아가던 불덩이가 되돌아온다거나 하는 코믹한 상황을 그린 작품이었다.

기억력이 쇠퇴한 노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믹한 분위기의 작품은 상업적으로 그다지 좋은 기획이 아니기에, 개발 과정에서 마법사들의 대결을 토대로 테마 변경이 이루어졌다. 소설 '해리 포터' 분위기의 어린이 마법사 대결도, 만화 '슬레이어즈'와 같은 젊은 여자 마법사들의 대결도 생각했고, 보드게임 '매직 더 개더링(1993)'처럼 심각한 분위기의 대결도 그렸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다양한 테마의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똘똘하게 생긴 어린이, 젊지만 강력한 마법 소녀, 푸른 옷의 젊은 남성, 회색 옷의 할아버지, 지혜로운 할머니 등 다양한 성별과 연령대의 마법사들이 등장하게 됐다.

'아브라카...왓?'의 캐릭터들
'아브라카...왓?'의 캐릭터들

'아브라카...왓?'의 캐릭터들 <출처: divedice.com>

그 와중에 '올드 매지션'이라는 게임 이름도 '아이 포갓(iForgot)', '아브라카 붐(Abraca Boom)', '비비디바비디 붐(Bibidi Babidi Boom)' 등으로 바뀌었는데, 최종적으로 '아브라카...왓?'으로 결정됐다. 기세 좋게 주문을 사용하다가 실패해 당황하는 모습을 제목으로 만든 것이다.

프로토 타입에 설정됐던 마법들
프로토 타입에 설정됐던 마법들

프로토 타입에 설정됐던 마법들 <출처: divedice.com>

이 게임은 김건희 작가가 제작한 초기 프로토타입부터 이미 완성도가 높았으며, 수정할 것이 많지 않았다. 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타일을 세워 플레이하는 컨셉이 이미 프로토타입에 구현되어 있었고, 게임에 등장하는 주문의 밸런스도 대부분 큰 수정 없이 완성됐다.

보완한 이슈는 크게 3가지였는데 8개 주문 중 1개의 내용이 조금 어려우니 쉽게 고치는 것, 플레이어 간 점수 차이가 크게 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게임을 주도적으로 플레이한 사람이 안전하게 살아남는 플레이를 하는 사람보다 좀 더 많은 보상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아브라카...왓?' 발매 기념으로 제작된 크리스마스
카드.
'아브라카...왓?' 발매 기념으로 제작된 크리스마스 카드.

'아브라카...왓?' 발매 기념으로 제작된 크리스마스 카드. 마리 까두아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돋보인다. <출처: divedice.com>

개발팀은 '마법사들의 대결'이라는 게임 컨셉을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완성할 일러스트레이터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의 '마리 까두아(Marie Cardouat)'와 협업을 생각했다.

마리 까두아는 감성 보드게임 '딕싯(2008)'의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티스트로, 기존 보드게임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차별화된 화풍으로 주목받으며 전 세계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마리 까두와는 아브라카...왓?의 게임 콘셉트를 보고 흔쾌히 제안을 승낙했고, 그녀의 일러스트로 게임은 더욱 근사하게 바뀌었다.

디자이너 김건희

디자이너 김건희와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까두아
디자이너 김건희와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까두아

'아브라카...왓?'의 디자이너 김건희와 일러스트레이터 마리 까두아 <출처: garykimgames.com>

한국을 대표하는 보드게임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김건희는 최근 '고려(2013)', '조선(2014)', '토끼와 거북이(Tales & Games: The Hare & the Tortoise, 2011)' 등 다수의 작품을 유럽 회사를 통해 출판하며, 세계 보드게임 팬들이 주목할 만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에는 보드게임 작가로 전업을 선언하며 더 많은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레이트 달무티
그레이트 달무티

그레이트 달무티(The Great Dalmuti, 1995) <출처: divedice.com>

보드게임 개발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기발한 발상의 작품 하나를 궁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기존 작품을 개량하거나 마음에 드는 작품의 요소를 섞어보는 방법도 있다. 김건희는 특히 후자에 있어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김건희의 대표작들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요소의 조합이지만, 그러한 요소들이 잘 어울리며 재미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브라카...왓?' 역시 이런 개발 방법의 산물이다.

'그레이트 달무티'는 2000년대 초부터 보드게임 카페에서 자주 플레이되는 게임 중 하나다. 80장의 카드를 모두 나누어 받고, 손에 있는 카드를 모두 버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그레이트 달무티는 1번 카드가 총 1장, 2번 카드는 총 2장, 이런 식으로 카드의 숫자와 해당 카드의 장수를 동일하게 하고, 작은 숫자의 카드일수록 높은 능력과 희소 가치를 가지도록 설계됐다. 이는 '아브라카...왓?'의 마법의 돌 구성과 거의 같다. 김건희의 다른 대표작인 '고려'와 '조선'의 카드도 이와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나비 독어판 초판
(2010)
하나비 독어판 초판 (2010)

하나비 독어판 초판 (2010) <출처: garykimgames.com>

2013년 독일 올해의 게임상 수상작인 '하나비'는 일반적으로 카드를 드는 것과 달리, 자신은 카드 내용을 볼 수 없고 상대의 카드 내용은 보이도록 했다. 그리고 서로 주는 힌트를 이용해 자기 카드를 추리하며 즐기는 협력 게임이다. 이러한 게임 환경은 '아브라카...왓?'과 유사하며, 자기 패를 추리하는 것이 게임의 열쇠가 되는 것도 비슷하다.

하나비가 제약 속에서 서로에게 힌트를 주며 협력하는 게임이라면, '아브라카...왓?'은 상대의 패와 행동을 기초로 자신의 패를 추리하며 경쟁하는 구도의 게임이다. 이 외에도 보이지 않는 자기 패를 맞히는 게임으로는 알렉스 랜돌프(Alex Randolph, 1922-2004)의 '도메모(Domemo, 1975)', '코드 777(Code 777, 1985)' 등이 있다.

아브라카...왓?은 달무티, 하나비와 같은 게임 방식에 다양한 마법 주문, 주문에 종종 실패하는 마법사 테마가 더해져 현재의 작품이 되었다. 마리 까두아의 동화적인 일러스트와 게임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전달하는 '아브라카...왓?'이라는 제목 또한 매력포인트라 할 수 있다.

보드게임을 오랜 취미로 해 온 사람이라면, '아브라카...왓?'에서 기존 게임과 유사한 부분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의 요소를 찾아내, 다양한 요소들을 잘 어울리게 조합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여기에 알맞은 테마와 이야기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독창성(Originality)과 새로운 재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잊혀지지 않는 게임

매년 가을 열리는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축제 '에센 박람회'에는 수백 개의 게임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수십 개 정도의 게임이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약 5년이 지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플레이되는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개 보드게임 팬들은 에센 박람회 이후 쏟아져 나오는 신작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전략성 있는 게임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의 상당수가 이듬해 에센 박람회 즈음에는 잊혀지곤 한다. 보드게임은 비디오 게임보다 시장 수명이 긴 편이지만, 모든 게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아브라카…왓?'의 다양한
언어판들
'아브라카…왓?'의 다양한 언어판들

'아브라카…왓?'의 다양한 언어판들 <출처: divedice.com>

아브라카...왓?은 세계 보드게임 팬들이 손에 꼽은 2014년 최고의 전략 게임은 아니었지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게임이다. 규칙이 쉽고 게임 시간이 짧으며, 다음 사람의 차례를 기다리는 게임 내 시간도 짧다. 운의 영향도 있어 초심자가 승리할 가능성도 높다. 가족 게임으로 기존 게임과 차별화된 재미를 지니고 있다. 아브라카...왓?은 몇 년 뒤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흔히 즐기는 게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게임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날이 오기를 소원으로 빌어보면 어떨까. "아브라카...왓?"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박지원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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