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세계] 최고의 암호기계를 두뇌만으로 푼다, '에니그마'

안수영 syahn@itdonga.com

에니그마 (2014)
에니그마 (2014)

에니그마 (2014) <출처: divedice.com>

2015년 2월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를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연합군은 에니그마의 암호를 해독하지 못해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당하게 된다. 결국 연합군은 각 분야의 수재들을 모아 암호 해독팀을 꾸리는데, 여기에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간단한 두뇌 회전만으로도 에니그마를 풀 수 있는데, 바로 보드게임 '에니그마'다. (아쉽게도, 독일군의 암호 기계는 아니다). 여담이지만, 수학자 앨런 튜링은 십자말풀이, 체스와 같은 보드게임의 달인이기도 했다.

4가지 퍼즐

에니그마는 퍼즐 게임이다. '우봉고(2003)', '울루루(2011)', '파라오코드(2011)'등 다른 유사 보드게임들이 도형, 연산, 논리 등 한 종류의 퍼즐을 다루는 것과 달리, 에니그마에는 네 종류의 퍼즐이 있다. 이 퍼즐들은 교과서의 어느 페이지에서 봤던 기억이 날 만큼 매우 익숙하다.

균형 퍼즐
균형 퍼즐

균형 퍼즐 <출처: divedice.com>

균형 퍼즐은 저울의 균형이 맞도록 추를 놓는 퍼즐이다. 퍼즐 타일에 표시된 숫자만큼 추를 사용해, 저울 아래 표시된 무게를 확인하고 양쪽 저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칠교 퍼즐
칠교 퍼즐

칠교 퍼즐 <출처: divedice.com>

칠교 퍼즐은 일곱 개의 조각을 사용해 제시된 모양을 맞추는 것이다. 퍼즐 타일에 표시된 부분을 모든 조각으로 정확하게 가리면 풀이에 성공한다.

배관 퍼즐
배관 퍼즐

배관 퍼즐 <출처: divedice.com>

배관 퍼즐은 주어진 문제의 파이프를 끊김 없이 연결하는 것이다. 9개의 파이프 조각 중 퍼즐 타일에 표시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조각을 사용해, 모든 배관이 연결되도록 하면 된다.

건축 퍼즐
건축 퍼즐

건축 퍼즐 <출처: divedice.com>

건축 퍼즐은 주어진 4개의 네모 블록을 모두 사용해, 퍼즐에 표시된 그림과 똑같이 놓으면 된다. 완성된 건축물을 위에서 수직으로 봤을 때 퍼즐 타일에 그려진 면이 정확하게 보이면 성공한다. 이 때 각 조각은 바닥이나 다른 조각에 정확하게 맞닿아야 하며, 빈 공간이 생기면 안 된다. 다른 퍼즐과 달리 퍼즐 타일을 옆에 놓고 푸는 것이 낫다.

게임 방법

에니그마는 단순히 퍼즐만 푼다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퍼즐 타일 뒷면에 그려진 동력 장치를 연결하고, 기술자를 놓아 가장 많은 점수를 얻어야 승리할 수 있다.

에니그마는 많은 점수를 얻어야
승리한다
에니그마는 많은 점수를 얻어야 승리한다

에니그마는 많은 점수를 얻어야 승리한다. <출처: divedice.com>

칠교, 건물, 균형, 배관 등 4가지 종류의 퍼즐 타일을 잘 분리해 섞어 놓고, 각 퍼즐 도구를 앞에 둔다. 시작 타일을 중앙에 둔 후, 각자 점수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할 기술자 말을 3개씩 가져간다. 남은 1개의 기술자 말은 점수 표시를 위해 점수판 위에 두면 게임 준비가 끝난다.

퍼즐 고르기
퍼즐 고르기

퍼즐 고르기 <출처: divedice.com>

시작 플레이어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4개의 퍼즐 가운데 하나를 골라 퍼즐 타일과 퍼즐 도구를 가져온다. 이미 다른 플레이어가 선택한 퍼즐은 선택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시작 플레이어가 배관 퍼즐을 선택했다면, 자신은 다른 퍼즐을 선택해야만 한다. 타일을 가져올 때는 퍼즐 타일에 그려진 동력 장치의 구조를 잘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퍼즐 풀기
퍼즐 풀기

퍼즐 풀기 <출처: divedice.com>

모두가 퍼즐을 가져갔다면 동시에 퍼즐을 푼다. 가장 먼저 퍼즐을 푼 사람은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남은 플레이어들은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퍼즐을 푼다. 모래가 다 떨어졌다면 누가 퍼즐을 제대로 풀었는지 확인한다.

타일 놓기
타일 놓기

타일 놓기 <출처: divedice.com>

퍼즐을 푼 사람들은 방금 푼 퍼즐 타일을 뒷면으로 뒤집는다. 퍼즐의 뒷면에는 동력원과 연결부가 그려져 있다.

제시간에 퍼즐을 풀지 못한 플레이어는 제외하고, 시작 플레이어부터 시계 방향으로 타일을 놓는다. 시작 타일 혹은 기존 타일에 그림이 연결되도록 놓으면 된다.

플레이어들은 방금 자신이 놓은 타일의 동력원 위에, 자신의 기술자 말을 올려놓을 수 있다. 타일에 그려진 동력원 중 원하는 색깔의 동력원에 올려놓으면 된다. 단, 같은 동력장치(하나로 연결된 동력장치)에서 이미 다른 플레이어가 선점한 동력원과 같은 색깔의 동력원에는 기술자 말을 올려놓을 수 없다.

점수 계산하기
점수 계산하기

점수 계산하기 <출처: divedice.com>

동력원의 연결부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닫히면 동력장치가 완성된다. 이제 완성된 동력장치의 기술자 말을 빼며 점수를 계산한다. 완성된 동력장치에서 기술자들이 서 있었던 동력원과 같은 색깔의 동력원을 모두 세어 점수로 얻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다시 다음 사람이 퍼즐을 놓고, 기술자를 놓고, 완성된 동력장치가 있는지를 체크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다음 라운드 시작하기
다음 라운드 시작하기

다음 라운드 시작하기 <출처: divedice.com>

모든 플레이어가 이 과정을 수행했다면, 라운드를 종료하고 15점에 도달한 플레이어가 있는지 확인한다. 15점인 이상인 사람이 있다면, 게임이 종료되고 가장 많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이 승리한다. 동점일 경우, 타일 위에 점수 계산이 되지 않은 기술자가 많은 플레이어가 승리한다.

15점을 넘긴 플레이어가 없다면, 시작 플레이어를 왼쪽 사람에게 넘기고 새로운 라운드를 시작한다.

우봉고와 카르카손

에니그마는 같은 퍼즐 게임인 '우봉고'와 타일 게임인 '카르카손(2000)'을 합쳐놓은 듯한 게임이다.

우봉고
우봉고

우봉고 <출처: divedice.com>

에니그마는 퍼즐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한 우봉고처럼 같은 문제를 유사한 형태로 잘 풀어냈다. 퍼즐 게임은 흔히 머리가 좋거나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이기기 쉬워 금새 흥미가 떨어지거나, 다른 사람의 문제풀이를 보고 베낄 수 있는 단점이 존재했다.

우봉고는 이 문제를 각자 다른 퍼즐을 제한 시간 내 경쟁적으로 푸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다양하고 쉬운 퍼즐을 준비해 머리가 좋거나 암기력이 뛰어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격차를 줄였다. 누군가 퍼즐을 먼저 풀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했다. 퍼즐을 푼 보상의 격차가 크지 않아 꼴찌라도 언제든지 따라붙을 수 있었다.

우봉고와 달리 에니그마는 각자 완전히 다른 퍼즐을 푼다. 4가지 종류의 퍼즐이 있어 어려운 퍼즐을 피해 자신의 장기를 살려 퍼즐을 풀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문제를 잘 풀어도 "그 퍼즐이 쉬워서 그래"라고 한 마디 던질 수도 있다.

우봉고의 좋은 점을 그대로 가져온 덕에, 우봉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금새 이 게임에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우봉고의 점수 계산보다 에니그마의 점수 계산이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봉고가 단순히 많은 보석을 모으기 위해 레이스를 펼친다면, 에니그마는 퍼즐 타일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붙여 점수를 늘려야 하며, 한정된 게임 말을 놓을 자리도 고민해야 한다. 이 부분은 카르카손과 유사하다.

카르카손
카르카손

카르카손 <출처: divedice.com>

에니그마는 카르카손처럼 타일을 놓고 그 위에 자신의 기술자 말을 올려둘 수 있다. 동력 장치가 완성되면, 게임 말이 위치한 동력원과 같은 색깔의 동력원 개수만큼 점수를 얻는다. 따라서 타일을 놓을 때, 타일의 동력원과 같은 색의 동력원이 많이 연결되도록 만들고 내 기술자 말을 올려두는 것이 좋다.

기술자 말을 놓는 것도 경쟁이다.
기술자 말을 놓는 것도 경쟁이다.

기술자 말을 놓는 것도 경쟁이다. <출처: divedice.com>

하지만 에니그마도 카르카손처럼 말을 놓는 데 제약이 있다. 누군가의 기술자 말이 어떤 동력원에 이미 위치하고 있다면, 그와 연결된 같은 색깔의 동력원에는 기술자 말을 올려둘 수가 없다. 누군가가 같은 색깔의 동력원이 많은 동력장치를 선점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연결되지 않은 타일을 먼저 놓고, 이후 2개의 동력장치를 연결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사이 좋게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에니그마는 카르카손과 달리 기술자 말이 많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기술자 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서, 좀 더 평화로운 진행이 가능하다.

에니그마의 탄생

'수수께끼'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 '에니그마'와 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됐던 암호 기계, 그리고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 에니그마와 앨런 튜링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에니그마 보드게임 초판의 출시가 2012년이었고, 이 때가 앨런 튜링 탄생 100주년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마 작가가 게임의 구조를 완성해 놓은 상태에서, 당시 앨런 튜링과 관련된 미디어를 접하고 '에니그마'라는 명칭을 차용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이 때문인지, 에니그마의 초판 디자인은 독일군 암호 기계와는 전혀 다르다.

에니그마 초판(2012)
에니그마 초판(2012)

에니그마 초판(2012) <출처: boardgamegeek.com>

에니그마의 초판은 탐험을 주요 테마로 했다. 각 플레이어들은 문제를 풀어 비밀의 방에 들어가 조사를 하고 점수를 냈다. 에니그마라는 게임 이름과 게임 배경(Theme)이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PC 게임 '대항해시대 4'의 미니게임을 연상케 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이 초판은 핀란드에서 2012년에 제작됐다. 다국어 버전으로 제작된 초판은 많은 보드게임 유통사에 전달됐고, 이 게임의 교육적인 성격을 파악한 미국, 프랑스, 한국 등의 보드게임 유통사들은 발빠르게 현지화 작업을 시작했다. 게임의 완성도는 높았지만, 그래픽 디자인이 너무 어두운 분위기를 풍겨 가족게임으로 어울리지 않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윽고 목재 컴포넌트를 기반으로 좋은 가족게임을 만드는 독일의 조흐(Zoch)사가 다시 디자인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독어판, 영어판, 불어판, 한국어판이 제작됐다. 물론 이 새로운 버전에는 난공불락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를 연상케 하는 점수판이 새롭게 포함됐다.

작가 Touko Tahkokallio

에니그마의 작가 Touko
Tahkokallio
에니그마의 작가 Touko Tahkokallio

에니그마의 작가 Touko의 에니그마 시연 중 패배 장면. 디자이너로서 게임에서 지는 것은 필수 덕목이기도 하다. <출처: boardgamegeek.com>

에니그마의 작가는 Touko Tahkokallio로 핀란드 디자이너다. 그가 전세계 보드게임 순위에서 Top 10안에 드는 전략 게임인 '이클립스(2012)'의 작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Touko Tahkokallio는 2000년 '카탄의 개척자(1994)'를 처음 접하면서 현대 보드게임의 세계에 매료됐다. 그리고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2002)' 이후 다른 보드게임을 수집하며 점차 이 세계에 빠져들었다. 노르웨이나 스웨덴보다는 낫지만, 핀란드는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보드게임이 대중적인 취미로 자리잡은 나라는 아니다. 그는 다양한 게임을 접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핀란드 보드게임 연구회(Finnish Board Game Society)와 같은 모임을 통해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이클립스
이클립스

그의 대표작인 우주 문명 게임 '이클립스(2011)'. 한글 규칙을 포함한 다국어판으로 출판됐다. <출처: divedice.com>

그는 2005년부터 취미에서 벗어나 전문적으로 보드게임을 다루기 시작했다. 2009년 헬싱키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친구들과 함께 보드게임 회사인 Onni Games를 설립했다. 이 회사를 통해 3개의 보드게임을 선보이면서 그의 보드게임 디자인은 본격화됐다. 이후, 그는 '월넛 그로브(Walnut Grove, 2011)', '프린치파토(Principato, 2011)', '이클립스(2011)'를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붐 비치
붐 비치

모바일 게임 디자이너로서 붐 비치를 제작했다.

그는 2011년부터 한국에서도 유명한 모바일 게임인 '크래시 오브 클랜(Crash of Clans)'의 개발사인 슈퍼셀(Supercell)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붐 비치(Boom Beach)'와 같은 게임을 개발했다. 그는 보드게임 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드게임과 모바일 게임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게임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이중 구조의 게임

에니그마는 '수수께끼'라는 그 이름처럼, 퍼즐 속에 퍼즐이 있는 이중 구조 게임이다. 익히 알려진 우봉고보다 한 차원 더 높다. 퍼즐을 풀고 보석을 가져가는 것보다(우봉고), 동력 장치를 완성하는 것이(에니그마) 더 어렵기 때문이다. 각 플레이어들은 라운드를 시작할 때 동력원과 연결부가 그려진 방 구조를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퍼즐을 택해야 한다. 이 퍼즐을 제한 시간 내 풀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위치에 퍼즐 타일을 놓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더 어렵다. 3개로 한정된 기술자 말을 어떻게 쓰고, 언제 회수할지도 관건이다.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점수를 내야 하는 게임이 바로 에니그마다.

퍼즐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우봉고에 익숙해 다른 게임을 찾는 사람이라면, 에니그마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보드게임을 즐겼던 앨런 튜링이 에니그마를 풀어 2차 세계대전에서 공헌한 것처럼, 게임을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다 보면 훗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글 / IT동아 보드게임 필자, 코리아보드게임즈 권성현
편집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본 기사는 네이버캐스트 게임의 세계: 보드게임의 세계(http://navercast.naver.com/list.nhn?cid=2883&category_id=2883)에 함께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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