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스타트업] 소프트뱅크벤처스 (1) "이스라엘과 협업하라"

안수영 syahn@itdonga.com

[IT동아 안수영 기자] 이스라엘에서 당돌함, 뻔뻔함을 뜻하는 단어 '후츠파(Chutzpah)'. 후츠파는 궁금한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위험 요소가 있는 일이라도 과감하게 시도하며, 실패하더라도 배운 것이 있다면 격려하고 용인하는 이스라엘의 문화를 상징한다. 이러한 후츠파 정신은 이스라엘의 창업 문화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800명 중 1명이 창업을 시도하고, 세계 3위의 인적 자원을 보유한 국가로 성장했다.

후츠파로 대변되는 이스라엘 창업문화는 창조경제를 지향하는 한국이 본받아야 할 문화로 인식됐다. 하지만 각 국가마다 창업 환경과 장단점이 다른 만큼, 꼭 일방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국내 스타트업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동시에, 한국에서도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15년 2월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이스라엘 스타트업 '사구나 네트웍스(Saguna Networks)'에 투자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스타트업과 이스라엘 스타트업 시장에서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소프트뱅크벤처스 강동석 부사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소프트뱅크 그룹의 한국 내 지주회사인 소프트뱅크코리아의 자회사로, 창업 투자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강동석 부사장은 98년도부터 벤처 투자 업계에 종사한 베테랑이다.

소프트뱅크벤처스 강동석 부사장
소프트뱅크벤처스 강동석 부사장

"한국과 이스라엘, 창업 분야의 협력 파트너"

그 동안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던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한국에서 투자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사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살펴보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강 부사장은 2013년 12월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해 15~20개 가량의 기술 기업들을 꾸준히 지켜보았다.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기업들을 살펴보았고, 시장에 대한 자료를 받아보면서 이스라엘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부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에 사구나 네트웍스에 투자했습니다. 2013년 당시 사구나 네트웍스도 만났었으니, 실제로 투자가 집행된 건 1년 뒤의 일이지요. 그 동안 회사의 발전 상황을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내린 결론이고요, 사구나 이외에도 몇 개 이스라엘 회사에 대한 투자 검토를 진행했었습니다"

사구나 네트웍스는 지난 2008년 설립됐으며, 모바일 엣지 컴퓨팅(Mobile Edge Computing) 분야에 독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모바일 엣지 컴퓨팅이란, 통신 사업자들이 고객에게 인터넷/모바일 서비스를 끊김없이 빠른 속도로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다. 최근 모바일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사구나 네트웍스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세계 통신 사업자에게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인 MWC 2015에 'Best Mobile Technology Breakthrough'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사구나 네트웍스
사구나 네트웍스

물론, 이스라엘에는 사구나 네트웍스 외에도 뛰어난 스타트업들이 많았다. 강 부사장이 이스라엘에서 여러 기업들을 보며 느낀 것은 '원천 기술에 대한 혁신성'이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니, 뛰어난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기술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된 배경으로는 첫째, 수학 및 기초 과학의 토대가 탄탄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기초 과학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 있기에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성장이 가능했다고 봤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에서는 모든 기업들이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글로벌 시장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인구는 약 800만 명뿐이라 내수 시장으로 승부하기가 불가능한데요, 그래서 처음부터 글로벌 세팅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저희가 만났던 창업자들의 대부분이 40대 중반이었는데요, 상당수가 여러 번의 창업과 성공, 실패 경험을 두루 갖춘 노련한 창업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창업자를 둘러싸고 있는 이사회, 마케팅 전문가들도 모두 15~20년 가량 풍부한 경험이 있었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팀이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넷째, 이스라엘에는 구글과 페이스북 등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의 R&D 센터가 들어와 있고, 많은 엔지니어들과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R&D 센터와 창업자들이 향후 기업을 인수하거나 비즈니스를 도울 수 있는 에코 시스템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맺어질 수 있는 배경도 다양했다. 예를 들면 창업자의 군대 동기가 구글 R&D 센터의 신규 산업 담당 책임자인 것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의 성장 배경에는 미국 본사 및 글로벌 기업들의 유대인 경영진들과의 연결고리도 있지만, 이스라엘 기업들과 접점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스라엘에서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첫째,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도는 하는데, 그것을 상용화해서 매출로 이끌어내고 실적을 올리는 경우가 상당히 드뭅니다. 그래서 기업이 크게 인수합병(M&A)되거나 기업 공개(IPO)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적습니다. 둘째, 기술이 원천 기술에 가깝고, 상용화 기술에 가까운 것은 아닙니다. 셋째, 시장이 좀 멀리 있습니다. 주로 미국 시장이나 유럽 시장들을 상대로 하고 있고,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습니다. 아시아 시장에 진입하고는 싶어하는데, 연결 고리가 별로 없는 편입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
소프트뱅크벤처스

한편, 한국 스타트업들은 이스라엘과 다른 점이 많다.

"저는 주로 한국 기업에 투자를 많이 했었는데요, 투자를 하면서 한국 기업은 응용 기술, 시장에서 채택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술과 상용화 분야에 상당히 발전되어 있다고 느꼈어요. 다만, 글로벌 사업 역량에서는 다소 약합니다. 최근에는 한국 스타트업들도 많이 개선되었으나 언어 문제, 현실적으로 필요한 자원이나 수단, 네트워크 등을 많이 보유하지 못해 현실의 벽이 높은 편입니다. 또한, 글로벌 M&A나 세계적인 비즈니스를 엮어서 나아가기에는 한국 스타트업들의 경험이나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한국에서 창업을 하는 분들이 20~30대로 비교적 젊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이 보유한 장단점이 다른 만큼, 서로 맞물려 참고할 것이 많다. 강 부사장은 "창업 분야에서 이스라엘은 배워야 할 선진국이라기보다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함께 나누며 성장할 파트너"라고 설명했다.

"나라에서 '창조경제'가 대두되면서 이스라엘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요, 물론 이스라엘을 배우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R&D 센터나 유대인의 네트워크 등은 한국에 바로 이식하거나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한, 원천 기술에 대한 혁신성도 하루 아침에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무작정 배우고 따라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그보다는 한국과 이스라엘이 서로 협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더 나은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봅니다. 그런 연결고리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한국 기업들을 이스라엘에 소개하고, 이스라엘 스타트업 중에 투자할 곳을 찾아 좋은 사례를 만들고자 합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이 협력할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한국 기업들은 뛰어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이스라엘 기업과 협력하거나 인수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고, 이스라엘 기업은 한국 기업을 통해 원천 기술의 상용화 및 아시아 시장 진출의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투자를 받은 사구나 네트웍스는 일본의 소프트뱅크 모바일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강 부사장은 한국 통신사에 사구나 네트웍스를 소개하고, 이를 시작으로 좀 더 많은 이스라엘 기업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듯 한국과 이스라엘이 창업 분야에서 협력하면 시너지를 낼 여지가 많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 기업과의 협력은 중국 시장의 경쟁력을 대비해서도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원천 기술을 가진 접목한다면 어떨까요? 현재 중국이 한국 기업을 많이 따라오고 있는데요, 기술적인 차이는 크지 않고 가격 경쟁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원천 기술의 경우에는 따라오기 어려우니, 한국에 이스라엘의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하면 중국 시장을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응원합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국내외 다양한 지역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2012년부터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으며, 이렇게 형성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국내외 기업들의 성장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과 세계를 잇는 거점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저희는 소프트뱅크에 팬아시아 펀드를 통해 해외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팬아시아 펀드의 기본 목표는 국내 기업을 해외로 연결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기회를 발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로벌 접점이 필요한 만큼 해외 기업들도 많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벤처 투자이기 때문에 엑시트(Exit, 투자금 회수)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좋은 회사를 키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해외 기업에 투자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인도네시아의 오픈마켓 1위인 '토코피디아(Tokopedia)'를 들 수 있다. 토코피디아는 세콰이어캐피탈과 소프트뱅크로부터 1억 달러의 후속 투자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전자상거래가 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오픈마켓의 성장을 쭉 지켜본 경험을 살려, 인도네시아에서도 전자상거래 분야의 회사에 투자하면 성장할 수 있겠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초기 단계이지만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잡았고, 투자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기업 투자 규모로는 가장 크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시장에서 넘버 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토코피디아
토코피디아

한편, 소프트뱅크벤처스가 투자한 미국의 스타트업인 '드라마피버(Dramafever)'는 2014년 소프트뱅크에 인수됐다.

"드라마피버는 교포 분들이 설립한 미국 회사인데요, 한국, 인도, 일본 등의 콘텐츠를 소싱해서 미국이나 기타 국가에 전송하는 콘텐츠 제공 회사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 변화에 주목해 투자를 진행했고요, 소프트뱅크도 전략적으로 인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국내 스타트업을 지원할 전략도 더 마련했다. 2015년 3월 26일 결성한 에스비 글로벌 스타펀드(약 1,200억 원)를 통해 국내 ICT 스타트업을 발굴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울 계획이다.

"에스비 글로벌 스타펀드의 운영 전략은 팬아시아 펀드와 동일합니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글로벌 스타라는 이름의 펀드를 조성한 것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역량 있는 스타트업을 찾고 해외 진출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다만, 현재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전무한 것이 실정이다.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전, 스타트업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해외 시장을 진출하고자 한다면, 원천 기술이나 차별적인 경제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나가는 것이 성과를 내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보안 기술 회사나 하드웨어 관련 회사, 특허로 보장이 되는 기술을 가진 회사, 꼭 써야만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유한 회사라면 성공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한편, 모바일 서비스의 경우 해외 진출이 용이하지는 않습니다. 라인이나 카카오톡의 경우 그런 시도를 해 주었던 것이고, 서비스 부문으로 성과는 나지만 사업적으로 성과를 내려면 더 많은 리소스가 필요합니다. 라인이나 카카오톡도 그러한데, 스타트업은 훨씬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들을 보면 대부분 전자상거래, O2O(오프라인 영역의 사업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것) 등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서비스는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진출했을 때, 문화 및 사업 환경이 완전히 달라 생기는 문제에 봉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해외 시장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 현재 국내 스타트업 시장은 초기 단계에 있다. 강 부사장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저희가 주목하는 사례는 VCNC의 '비트윈'입니다. 비트윈은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현재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을 중심으로 사업을 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투자자의 지원도 받고, 각 국가별로 다운로드, 비즈니스 모델 등을 계속 늘려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지 직원을 채용해 각국에 맞는 서비스를 연구하고 있고요.

만약 VCNC와 같은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조금씩 성공을 거둬나간다면,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는 다른 모바일 서비스 기업이나 인터넷 기업에도 이식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선례를 참고해 경쟁력을 갖추고 점차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VCNC 비트윈
VCNC 비트윈

국내 스타트업 시장은 치열하고, 그보다 더 넓은 글로벌 시장은 더욱 맹렬하다. 강 부사장은 국내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투자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팀 구성이나 글로벌 인프라 등의 여건이 좋지만, 한국 스타트업은 그렇게 세팅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창업자들의 연령도 20~30대로 낮아 시행 착오를 거치며 배워나가는 과정이고, 리스크가 큽니다. 다만, 한국 스타트업들의 도전 의식과 열정, 패기 등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높이 평가받고 있기에 기대가 많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투자자의 역할이란, 올바른 사업 전략과 방향성을 잡고 재무적 투자, 글로벌 투자 등을 전략적으로 지원해 주는 것이라 봅니다. 한국 투자자들이 역량 있는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에 많은 힘을 실어주길 바랍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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