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프로세서 시장진단] 정말 맥에 애플칩이 들어갈까요?

강일용 zero@itdonga.com

[IT동아 강일용 기자] 애플이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 A 시리즈를 개발한 이래 끊임 없이 흘러나오는 소문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맥 제품군에 인텔 프로세서 대신 애플이 자체 개발한 프로세서가 탑재된다'는 것이다.

정보가 흘러나오는 원천도 다양하다. 대만 KGI증권의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 궈밍치부터 미국의 경제지 블룸버그까지, 애널리스트와 언론 모두 틈만 나면 '떡밥'을 던지고 있다.

반면 인텔은 이러한 소문이 나기 무섭게 "애플은 우리의 좋은 파트너이며, 두 회사의 관계는 앞으로 변함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정작 당사자 애플은 조용한데, 주변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애플 맥 제품군에 애플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가 탑재될까? 애플이 맥에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를 탑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가능성을 점쳐보자.

애플 아이맥 레티나 5K
애플 아이맥 레티나 5K

<애플의 최신 맥 제품인 아이맥 레티나 5K>

맥의 과거와 오늘

지난 2005년 열린 애플 개발자 회의(WWDC)에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는 참석자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큼 충격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맥에 IBM 파워PC G5 프로세서 대신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애플의 컴퓨터와 노트북에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된다는 것이 대체 왜 충격적인 소식인 걸까.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를 이해하려면 프로세서의 종류에 대해 알아야 한다.

프로세서의 종류를 구분하는 방법은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CISC와 RISC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CISC는 현대 프로세서의 기본 구조로, 현재 인텔과 AMD가 사용하는 X86 프로세서 구조의 기반이 되었다. CISC를 채택한 대표적인 프로세서로 모토로라 6800 시리즈와 인텔 8080, 80286, 80386, i486 시리즈 그리고 AMD AM486 등을 들 수 있다.

RISC는 CPU 명령어의 길이가 중구난방이라는 CISC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IBM과 MIPS가 협력해 개발한 프로세서 구조다. IBM은 이를 바탕으로 '메인프레임(IBM의 고성능 대형 컴퓨터 브랜드)'에 탑재할 프로세서 '파워PC 시리즈'를 개발했다. 이후 RISC 기반 프로세서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Advanced RISC Machines', 줄여서 ARM이라는 회사가 탄생하기도 했다.

세간의 통념과 달리 RISC가 CISC보다 더욱 진보한 방식이다. 인텔의 X86 프로세서도 순수 CISC 구조에서 벗어나 CISC를 기반으로 RISC의 장점을 품는 형태로 변했다. 순수 CISC 구조의 프로세서는 현재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때문에 현재 프로세서의 종류는 X86과 RISC로 양분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

X86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이 독주하고 있다. 경쟁자 AMD는 힘을 거의 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X86 프로세서로 인텔 코어 i 시리즈와 아톰 시리즈를 들 수 있다. PC 시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품들이다.

RISC 프로세서 시장은 ARM이 주도하고 있다. 여러 제조사가 ARM 코텍스 설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모바일 프로세서를 제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애플 A 시리즈, 퀄컴 스냅드래곤, 삼성전자 엑시노스, 미디어텍 MT 시리즈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 메인프레임에 사용되는 IBM 파워PC와 임베디드 기기에 사용되는 MIPS 프로세서도 나름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설명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자. PC 시장을 주도한 것은 언제나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였다. PC란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 IBM과 그래픽 사용자 환경(UI)를 최초로 도입한 애플은 인텔과 MS 연합(이른바 윈텔)에 밀려 2인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두 회사는 필연적으로 손 잡을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그렇게 '파워 매킨토시 6100'이 탄생했다. 프로세서로 IBM 파워PC를 채택하고, 애플 '시스템7(맥OS 7)'으로 실행되는 제품이. IBM과 애플은 이후 10년 동안 함께 윈텔과 경쟁했다.

파워 매킨토시 6100
파워 매킨토시 6100

프로세서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애플 맥 제품군에는 맥OS(현 OS X) 외에 다른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매킨토시 제품을 구매한 사용자는 맥OS와 맥OS에 맞춰 개발된 소프트웨어만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사용자들이 매킨토시 제품을 구매하는데 큰 장벽으로 다가왔다. 애플과 어도비는 (지금은 갈라선지 오래지만, 당시에는 두 회사의 사이가 좋았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투입해 사용자들이 매킨토시를 구매하도록 유도했지만, MS의 윈도 생태계를 넘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매킨토시는 그 세련된 디자인에 반한 극히 일부의 마니아층과 출판, 인쇄, 디자인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제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잡스는 이렇게 맥이 비주류 제품으로 머무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11년 동안 지속된 IBM과의 관계를 끊고, 인텔과 손잡는 다는 결정을 내린다. 당시 잡스는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함으로써 맥은 3GHz의 프로세서 속도로 작업을 처리하면서 발열도 줄어 들었다." (당시 맥 프로와 파워북은 발열이 심하다고 꾸준히 지적 받았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함으로써 맥의 구조는 PC와 완전히 동일하게 변했다. 이는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한다. 맥에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맥을 구매하고 싶지만, 윈도와 윈도용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친 일반 사용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결정 이후 맥의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한다. 결국 맥은 '마이너'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컴퓨터 시장의 ‘메이저’로 우뚝 서게 된다. 애플은 2014년 4분기 기준 575만 대의 맥을 출하해, 7.1%의 점유율로 전세계 PC 시장 5위를 차지했다(IDC 조사 기준). 또한 판매량이 작년 같은 분기 대비 18.9% 성장해, (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컴퓨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맥은 저가 제품이 없기 때문에 저가 제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타사보다 점유율 면에서 불리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성적을 거둔 것이 눈에 띈다.

애플 맥 프로 2013
애플 맥 프로 2013

<애플의 전문가용 맥 제품 '맥 프로'>

정말 프로세서를 교체하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애플이 맥의 프로세서를 다시 교체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인텔프로세서에서 자사의 A 시리즈로 말이다. 교체한다는 쪽과 교체하지 않는다는 쪽, 양쪽 다 나름 근거가 있다. 긍정하는 목소리와 부정하는 목소리를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긍정

애플은 다시 맥의 프로세서를 교체할 것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수익성과 주도권이다. 인텔이 애플에게 프로세서를 얼마에 공급하고 있는지 공개된 자료는 없다. 하지만 인텔 프로세서의 가격은 (아톰 시리즈를 제외하고) ARM 프로세서보다 비싸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프로세서를 직접 설계할 역량이 있는 애플의 입장에선 충분히 절감할 수 있는 비용으로 느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제품 출시 주도권을 인텔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텔은 자사의 프로세서 로드맵에 맞춰 제조사들의 PC 출시 시기를 통제해왔다. 로드맵을 따르지 않는 회사에겐 프로세서를 공급하지 않았다. PC 시장 전체가 인텔의 의도에 맞춰 움직여온 것이다. 인텔의 프로세서를 사용하는 이상 맥 역시 인텔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맥에 '특별함'을 더하고 싶은 애플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프로세서 교체를 가로막은 가장 큰 벽 '성능의 차이'도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속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ARM 프로세서는 인텔의 프로세서의 성능을 많이 따라잡았다. 물론 워크스테이션 등에 사용되는 최상위 모델(제온, 코어 i7 등)과의 격차는 아직 크다. 하지만 노트북의 사용되는 중간 급 모델(코어 i5, i3 M, Y)과 애플 프로세서(A8)는 큰 차이가 없다. 60% 수준이다(기크벤치3 기준).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결국 대등해질 것이다.

운영체제와 앱 호환성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애플은 이미 A 시리즈에 최적화된 운영체제 iOS를 개발하고 성공적으로 보급해왔다. 이러한 경험이 OS X을 A 시리즈에 맞게 변경하는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앱 호환성은 다소 잡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OS X의 킬러 앱인 아이라이프, 아이워크, 파이널컷, 로직 프로 등은 모두 애플이 직접 개발한 앱이다. 프로세서 변경에 맞춰 충분히 재개발할 수 있다. 서드파티 앱의 경우 새로운 개발 가이드라인과 API를 제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부정

애플은 계속 인텔 프로세서를 사용할 것이다. 프로세서를 교체할 이유도 없거니와, 교체해서도 안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윈도 운영체제다. 맥이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반 사용자에게도 다가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텔 프로세서를 채택해 윈도 운영체제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 컸다. 현실적으로 많은 맥 사용자가 OS X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OS X과 윈도 운영체제를 혼용하고 있다. 심지어 윈도 운영체제만 사용하는 맥 사용자도 있다. 프로세서를 교체해 윈도 운영체제 사용이 불가능해지면, 이러한 사용자가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점유율은 급락할 것이고, 맥은 다시 마니아와 전문가의 전유물로 전락할 것이다.

OS X 앱 호환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2006년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북을 출시한 이래 8년 동안 차근차근 앱을 쌓아왔다. OS X용 앱도 이제 일반적인 용도로는 충분하다고 평가 받을 정도로 풍족해졌다. 프로세서 변경은 이러한 앱 생태계를 몽땅 무너뜨리고, 새로 시작하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완전히 망해버린 운영체제라면 모를까, 시장에서 나름 입지를 구축한 OS X이 하기에는 너무 무모한 도전이다.

무엇보다 성능이 너무 부족하다. 인텔의 노트북용 프로세서와 애플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비교하면 얼추 비슷한 성능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맥은 노트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성능을 요구하는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 맥 프로도 있다. 애플 모바일 프로세서의 성능은 맥 프로를 사용하는 전문가들을 만족시켜줄 수 없다.

두 의견 다 나름 타당성이 있다. 어느 쪽의 의견이 맞는지 확신은 금물이다. 생각건대 애플의 모바일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은 언젠가는 등장할 것이다. 다만 그 새로운 맥은 기존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을 대체하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다.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맥 라인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라인업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애플 역시 지금 한창 잘 나가는 맥 제품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텔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지 않을까.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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