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2천만 원 정도 길바닥에 버린 후 깨달았다"

김영우 pengo@itdonga.com

자동차와 카메라, 그리고 오디오를 이른바 집안을 망치는 남자의 3대 취미라고도 한다. 이런 취미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돈이 상당히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반면, 그만큼 한 번 깊이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취미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오디오의 경우,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취향에 따라 이용형태와 투자비용이 천차만별이다. 누구는 스마트폰을 사면 함께 끼워주는 번들용 이어폰 만으로 만족하는가 하면, 또 누구는 수백, 수천만 원의 하이파이 오디오 장비를 갖추고도 만족을 하지 못해 계속 기기 종류와 구성을 바꿔가며 즐기는 사람도 있다.

특히 이런 고가의 장비를 사용하는 상당수 오디오 매니아 들은 앰프나 스피커 같은 기본 장비 외에 케이블이나 스탠드 등의 부수적인 요소까지 역시 세심하게 따지며 자신의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지출하기도 한다.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고 일부 일반인들은 그들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놀리는 경우도 있다.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하지만 이런 오디오 매니아들이 단순히 남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이상, 취미는 당연히 존중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 역시 나름의 고충, 그리고 철학이 있다. 그들의 마음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운영하고있는 대표적인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씨를 만나 그의 오디오에 대한 열정 그리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살펴봤다.

기계와 전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고1 때 자작 오디오 만들어

IT동아: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임규화: 저는 현재 경북 구미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아시아나테크(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유리용 실링제가 주 품목이죠.투싼,쏘렌토,스포티지,에쿠스 등, 현대자동차 및 기아자동차의 상당수 차량에 저희 제품이 들어갑니다. 공정비용이나 시간이 적게 들면서 방수나 방진효과는 외국 제품보다 우수한 것이 특징이에요.

IT동아: 오디오 매니아가 된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어린 시절부터 오디오를 좋아하셨나요?
임규화: 저는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주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번듯한 오디오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디오와 같은 기계, 그리고 음악에 대한 관심은 정말 컸죠. 그런데 중학생 즈음에 집안에 미니 오디오가 생겼고, 고등학교도 전자과로 진학했습니다.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IT동아: 임규화씨가 고교생이던 1970년대의 우리나라는 사실 오디오를 제대로 즐기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고교생이 큰 돈을 들여 오디오를 살 수도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요?
임규화: 그래서 제가 직접 오디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때가 1974년,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시절이었죠. 당시는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오디오가 전환되는 시기였는데 이 둘을 조합해 자작 오디오를 만들어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품질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단순히 소리가 난다는 것으로 만족했죠.

미국에서 처음 접한 CD라는 놀라운 물건

IT동아: 고등학생 시절부터 자작 오디오를 만든 건 참 대단하군요. 이후에도 계속 정통파 오디오에 몰두하셨나요?
임규화: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당시 인기를 끌던 포터블 및 워크맨 같은 휴대용 오디오를 주로 들었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한 후, 미국에 한동안 거주하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이제 막 출시된 CD 플레이어라는 걸 처음 접했습니다. 그 깨끗한 음질에 상당히 놀라웠어요. 250만원 상당의 제품이었지만 음질에 반하여 살 수 밖에 없었죠. 1986년에 이를 가지고 귀국을 했는데 그당시 한국에선 CDP가 어떤기능의 제품인지 잘 모르더군요. 나름의 자랑거리였죠.

IT동아: 확실히 CD는 오디오계의 혁명이었습니다. 이후의 오디오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임규화: 제가 전자공학 전공이라서 그런지 한동안 저는 기기에만 집착했습니다. 얼마나 더 비싼 기기를 써야 최고의 소리를 들려주는지에 몰두한 거죠. 지금 생각하면 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집에 도둑이 들어서 어렵사리 미국에서 가져온 오디오 시스템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허무하더군요. 그런 일도 있었고, 한동안 삶이 바쁘기도 해서 잠시 오디오에 대한 열정을 다소 접고 살기도 했습니다.

세탁소 2층에서 접한 충격의 사운드, '바꿈질'의 시작

IT동아: 그러던 와중에 다시 오디오 매니아의 길로 돌아오셨습니다. 딱히 계기가 있습니까?
임규화: 2005년 즈음, 세탁소를 운영하는 후배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2층에 오디오룸을 꾸며두었더군요, 그래서 소리를 들어봤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훌륭했습니다. 그 후배는 매킨토시(McIntosh) MA6800 인티그레이티드앰프에 구형 루악(Ruark) 엑스칼리브 스피커를 조합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건 당시 제가 보유했던 오디오 시스템의 1/5 가격 정도였습니다. 충격이었죠.

IT동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오디오 시스템으로도 더 훌륭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충격이었습니까? 좀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임규화: 저는 예전엔 비싼 기기면 최고의 소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당시 저는 그게 단순히 기기간의 매칭(조합) 문제일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른바 '바꿈질'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죠.

IT동아: 이른바 바꿈질이라고 한다면 오디오 장비를 계속 사고 파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건지요?
임규화: 이를테면 JBL 스피커만 5가지 모델을 경험하였고,다인오디오등 그 외에 고가의 엘락(Elac)의 FS608-4PI라는 독일제 스피커, 틸(Thiel) CS3.7 이라는 알루미늄 스피커도 써봤죠. 이중에는 1,000~2,000만원에 달하는 제품도 있어요. 기기 외에 인터케이블이나 파워케이블 스탠드등, 심지어 퓨즈까지 바꿔보구요. 상당히 비싼 고가 제품으로 말입니다.

2천만 원 상당을 길바닥에 버리고도 만족을 못한 이유

IT동아: 정말로 막대한 비용과 시간, 노력을 기울였는데 결국 만족하셨습니까?
임규화: 아니,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기기를 바꾼 직후에는 처음에는 나름 만족스러운 듯 하다가 그것도 잠시더군요. 이를테면 "JBL은 왜 이렇게 저음이 붕붕거리지?" "엘락은 해상력은 좋은데 왠지 대역폭이 좁은 것 같아" 하는 식이죠. 결국 완전히 만족할 수 없더군요. 구매 비용을 제외하고서라도 기기를 사고 팔 때 발생하는 차액, 교통비 등으로만 2,000만원은 족히 들었을 텐데 말이죠. 오디오 매니아들이 말하는 수업료치고는 많이도 치른것 같습니다.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메인
시스템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메인 시스템

IT동아: 그렇게 좋은 기기를 써도 왜 만족을 못했을까요? 단순히 조합 문제입니까?
임규화: 제가 뒤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단순히 기기에 집중한 것이 잘못이었어요. 제가 소리에 감명을 받았던 후배의 오디오 룸을 다시 떠올려보니 그건 기기가 좋아서라기보단 그 시스템과 공간, 콘텐츠 사이의 조율이 뛰어났기 때문이었죠.

오디오에서 중요한 건 기기가 아닌 음악 자체에 대한 애정

IT동아: 이후에는 어떻게 오디오를 즐기고 있습니까?
임규화: 요즘은 예전에 비하면 '바꿈질'에 덜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오디오를 즐기고 있어요. 정통파 하이파이 오디오 외에 PC-Fi(PC 중심의 고음질 오디오)는 물론,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용 기기를 이용한 음악 감상도 제법 즐겁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 외에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행사용 PA(Power Amp) 기반 시스템도 즐기게 되었습니다.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서브
시스템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서브 시스템

IT동아: 듣는 오디오뿐 아니라 직접 연주하는 오디오도 즐기게 되었다는 점이 특이하군요.
임규화: 앞서 말한 것처럼 오디오라는 취미의 근본적인 의미를 생각해 봐야죠. 가장 중요한 건 음악 자체에 대한 애정입니다. 직접 음악을 연주하면서 지속적인 수련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양로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며 재능 기부도 하고 있죠.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PA
시스템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PA 시스템

IT동아: 오디오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할만한 조언이라면?
임규화: 너무 기기만 쫓아다니지 말고 음악은 음악 자체로 즐겨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이런저런 고급 오디오를 많이 접하다 보면 음악을 듣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음악의 선율 자체를 즐기는 게 아니라 이런 저런 분석을 하게 되는데, 이를 오디오 매니아들 사이에선 '귀가 열린다'라고 표현합니다. 제 이야기는 굳이 애써서 귀를 열려고 노력하거나 이를 동경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귀가 열렸다면 '최고'의 오디오가 아닌 '최적'의 오디오를 찾아야

IT동아: 귀가 열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입니까?
임규화: 귀가 열린 오디오 매니아들은 같은 음악을 들어도 "이 기기에서 이 콘텐츠를 구동하면 스테이지가 좀 더 앞으로 접근하고 악기 배치가 이렇게 달라지는 구나" 하는 식으로 머리 속에 이미지가 잡히게 되죠. 그리고 기기 변경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에 대해 대단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바로 '바꿈질'의 계기가 되는 것이죠.

IT동아: 본인 역시 오디오 매니아인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계로 되도록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이러니컬하지 않습니까?
임규화: 그렇긴 합니다만, 현실(비용)을 직시해야 하니까요. 저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유흥이나 향락과 같은 다른 유희에 쓸 돈을 오디오에 대신 투자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같이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도 이러한데 일반적인 회사원이 오디오에 수천만 원을 쓸 수 있겠습니까? 오디오 매니아에게 있어서 100%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무조건 '최고'의 오디오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최적'의 오디오를 찾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묘미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

국산, 모바일 오디오로도 충분한 즐거움 느낄 수 있어

IT동아: 최적의 오디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다양한 오디오를 이용해 본 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임규화: 물론 해외 브랜드의 하이엔드 오디오 중에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하지만 저렴한 국내 브랜드, 혹은 모바일 오디오 기기 중에서도 기대 이상의 고급스런 소리를 내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이를테면 올닉(Allnic)같은 브랜드의 경우는 국산이지만 외국에서 더 비싸게 팔릴 정도로 인정할 만한 제품도 있습니다.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오디오 매니아 임규화

오디오는 공간과 조율의 예술, 매니아들도 진화해야

IT동아: 마지막으로, 오디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임규화: 오디오라는 취미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총 동원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과정입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꼭 투자한 만큼의 보답을 주진 않아요. 각자의 경제력과 청취 환경에 대한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이를 감히 공간과 조율의 예술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꼭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즐거운 건 아니에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악 자체에 대한 애정과 열정입니다. 고음질 오디오의 청취를 통해 얻는 쾌감도 대단히 크지만, 자신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군요. 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확실히 그렇게 느꼈습니다. 디지털의 최종 목표는 아날로그의 완벽한 재현이라고도 하죠? 오디오가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듯, 오디오 매니아들 역시 그런 식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찾아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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