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P 토대에 클라우드 얹는 한글과컴퓨터

강일용 zero@itdonga.com

국산 문서도구 '한컴오피스'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가 차세대 먹거리에 대한 비전을 공개했다. 클라우드다. '구글독스'나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피스닷컴'처럼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문서도구(SaaS)를 제공해 국내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얘기다.

한컴은 13일 제주도 서귀포시 WE호델에서 전략발표회를 개최하고 클라우드 문서도구 '넷피스'를 공개했다. 문서도구 업계의 화두인 '공유와 협업'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왜 '한컴오피스 2014'가 아니라 넷피스인 걸까. 그 이유를 자세히 알아보자.

씽크프리 클라우드
씽크프리 클라우드

클라우드 문서도구란?

문서도구 업계의 변화는 2006년부터 시작됐다. 구글은 업스타틀이라는 스타트업을 인수하고, 구글독스라는 클라우드 문서도구 서비스를 함께 개발했다. 특정 사이트에만 접속하면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되는 웹앱 형태의 이 문서도구는 doc(워드), xls(엑셀), ppt(파워포인트), pdf 형식의 문서를 작성 및 편집할 수 있다.

구글은 MS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문서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MS가 윈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비결이 MS 오피스를 통한 막강한 문서도구 시장 지배력에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없었으니 웹에 기대는게 당연했다.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는 간편한 문서도구 구글독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시작은 미약했다. PC용 문서도구와 비교하면 기능도 부족하고 파일 저장공간도 적게 제공했다. 그렇게 유용해보이지 않았다. 좋게 얘기하면 혁신적인 실험이었고, 나쁘게 얘기하면 '뻘짓'으로 보였다.

하지만 2010년 스마트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모든게 변했다. 사용자들은 자신의 스마트 기기(스마트폰, 태블릿PC 등)를 이용해 어디서나 문서를 작성 및 편집하길 원했다. 플랫폼이 달라 설치조차 불가능한 PC용 문서도구와 기능이 턱없이 모자란 문서도구 앱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사용자들이 눈을 돌린 곳은 인터넷에만 접속할 수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문서를 작성 및 편집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클라우드 문서도구였다.

구글 계정(지메일 ID)만 있으면 누구나 무료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글독스는 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구글독스는 매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작년 4분기 기준 구글독스의 실사용자는 1억 2,000만 명에 이른다.

구글독스의 성능 개선도 사용자 증가에 한몫했다. "후발주자인 구글독스가 문서 작성 및 편집에 관련된 기능에 힘을 쏟으면 선발주자인 MS 오피스를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다른 분야에서 승부하자"가 구글의 전략이다. 구글은 강력한 기능 대신 공유와 협업을 선택했다. 구글 드라이브와 지메일을 통해 가족, 친구, 동료와 손쉽게 문서를 공유할 수 있고, 이 공유된 문서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편집할 수 있다. 문서 변경사항은 모두 클라우드(지드라이브)에 저장되며, 원할 경우 언제 어디서나 내려받을 수 있다. 지원하는 파일도 점점 늘려나갔다. 현재는 MS 오피스 문서뿐만 아니라 애플 페이지스 문서, 어도비 일러스트레터 및 포토샵 문서, jpg 및 tiff 같은 이미지 문서 등 총 15가지 파일 형식을 읽고 편집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구글독스는 MS 오피스를 위협했다.

물론 MS 오피스의 아성은 견고하다. 구글독스가 열린문서(odf)를 따라가지 않고 MS 오피스 문서 형식을 선택한 점만 봐도 그렇다. MS 오피스를 배제하고 문서도구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증거다. MS 오피스의 전세계 문서도구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90%에 이른다. MS 오피스의 점유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 국내마저 80% 내외다.

하지만 방심하면 금방 따라 잡히는게 IT업계의 불문율 아닌가. MS도 클라우드 문서도구 개발에 나섰다. 이름은 오피스365. 언제 어디서나 MS 오피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담았다.

MS는 초기에 뭔가 큰 착각을 했다. MS 오피스를 유료로 판매한 것처럼 클라우드 문서도구도 유료로 판매할 수 있다는 망상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오피스365는 구글독스와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았다. 구글독스 사용자가 1억 2,000만 명에 도달하는데 MS도 한몫한 셈이다.

결국 MS는 전략을 모조리 뜯어 고쳤야만 했다. 일단 오피스365부터 바꿨다. 클라우드 문서도구뿐만 아니라 PC에 설치할 수 있는 최신 MS 오피스(현재는 MS 오피스 2013)를 함께 제공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름만 오피스365지, 사실 새로운 서비스나 다름없다. 클라우드 문서도구도 오피스닷컴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해당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구글독스처럼 웹 브라우저에서 바로 문서를 작성 및 편집할 수 있고, 이를 원드라이브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오피스닷컴은 당연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클라우드 문서도구를 온라인만 지원하는 오피스닷컴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지원하는 오피스365로 이원화한 것이다.

구글, MS. 둘 다 운영체제를 보유한 플랫폼 사업자다. 같은 플랫폼 사업자인 애플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사의 문서도구 아이워크(페이지스, 키노트, 넘버스)를 클라우드에 올렸다. 구글독스, 오피스닷컴처럼 누구나 웹 페이지에만 접속하면 사용할 수 있는 문서도구 '아이워크 포 아이클라우드'를 제공 중이다.

플랫폼사업자뿐만 아니라 문서도구 사업자도 관심을 보내고 있다. MS 오피스의 경쟁자인 열린문서 진영에선 원클라우드(Own Cloud)라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원리는 같다. 웹 브라우저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odf 문서를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게하는게 목표다.

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는 넷피스, doc 앞세우고 hwp로 뒷받침

한컴 넷피스는 오피스365와 같은 전략을 취한다. hwp 파일을 작성 및 편집하길 원하는 사용자는 웹 브라우저를 통해 넷피스에 접속하면 된다. 간단한 기능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작성한 문서는 넷피스에 포함된 씽크프리 원드라이브를 이용해 공유할 수 있다.

표, 수식 등 고급 기능을 사용하고 싶다면 유료 회원으로 가입하면 된다. 넷피스에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 한컴오피스 최신버전을 PC에 설치할 수 있다. 간단한 문서편집은 웹으로, 고급 문서편집은 PC용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란 얘기다.

국내에선 여전히 hwp 파일이 유효하다. hwp 파일은 뛰어난 한글 문서 작성 능력을 바탕으로 관공서, 공기업, 대학가 등에서 애용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은 다르다. doc, xls, ppt 등 MS 오피스 문서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고, 열린문서가 유럽을 중심으로 간신히 버티는 형국이다.

한컴도 이러한 상황을 외면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때문에 MS 오피스 문서 지원을 우선시 한다. 내년 1분기에 출시될 넷피스는 MS 오피스 문서를 먼저 지원하고, 3분기 업데이트를 통해 hwp 문서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얼마 전 출시된 안드로이드용 한컴오피스에도 반영돼 있다. 세계 시장에 출시된 안드로이드용 한컴오피스는 MS 오피스 문서만 지원했다.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hwp 문서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해 MS 오피스 문서를 앞세우고, 한컴오피스 사용자를 위해 hwp 문서까지 품는 모양새다.

물론 넷피스로 제공하는 MS 오피스 문서는 기존 MS 오피스 문서와 완전히 같진 않다. 공개돼 있는 MS 오피스 문서 소스를 바탕으로 한컴이 독자적인 개량을 더한 형식이다. 이 부분만은 구글독스와 같다. 구글독스 역시 MS 오피스 문서를 클라우드에 올리면 독자적인 형태로 바꾸는 컨버팅 과정을 거친다. 복잡한 문서를 웹에 최적화된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다. 한컴 역시 넷피스에 최적화된 문서를 제공하기 위해 별도의 개량을 더한 것으로 추측된다.

생존의 키워드는 기업시장

한컴 이홍구 대표
한컴 이홍구 대표

한컴 이홍구 대표는 전략발표회에서 "2018년까지 매출 1조 원의 종합 소프트웨어 그룹으로 성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4년 예상 매출 2700억 원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같은 수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근거는 뭘까. 지난달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기업 'MDS테크놀러지'를 인수한 덕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수만으론 부족하다. 핵심사업인 문서도구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야만 한다.

앞에서 hwp문서는 관공서, 공기업, 대학가를 중심으로 애용되고 있다고 말했던가. 바꿔 말하면 일반 기업에선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일반 기업을 공략해야 구글독스, 오피스365와의 경쟁에서 넷피스가 살아남을 수 있다.

넷피스가 '클라우드'를 표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은 기업에겐 넷피스를 월정액 형태로 직접 판매하고, 큰 기업에겐 ERP 솔루션에 접목할 수 있도록 넷피스 API를 제공하면 된다. 이를 통해 비용이나 ERP 솔루션과의 호환성같은 문제 탓에 한컴오피스 도입을 꺼렸던 기업의 마음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MS는 자사의 ERP 솔루션 다이나믹스 ERP NAV/AX에 오피스365를 함께 제공해 기업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구글 역시 구글독스 API를 기업의 ERP 솔루션에 연결해주고 있다. 아쉽게도 한컴은 ERP 솔루션과 거리가 멀다. 때문에 ERP 솔루션 개발사와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 SAP나 오라클이 될 수도 있고, SAP와 오라클의 솔루션을 클라우드 형태로 판매 중인 이동통신 3사일 수도 있다. 한컴 넷피스와 ERP 솔루션의 통합 전략은 넷피스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는 내년 상반기 드러날 전망이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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