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티폰' 멸종 위기에 처하다

나진희 najin@itdonga.com

블랙베리
블랙베리

주변을 둘러봐도 번쩍이는 '풀터치' 스마트폰뿐. 물리 키패드를 누를 때 나는 '또각또각' 소리도 더는 듣기 어려워졌다. 물리 키패드를 갖춘 스마트폰, 소위 '쿼티폰'은 이제 멸종 위기 동물처럼 보기 힘들다. 쿼티 자판의 대명사 '블랙베리'의 존폐 위기는 쿼티폰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때 잘 나갔던 쿼티폰

사실 스마트폰의 태생적 뿌리인 피처폰(일반 휴대폰)에는 대부분 물리 키패드가 있었다. 이때 당시만 해도 휴대폰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기'라기보다 '전화기'의 성격이 강했으므로... 해봐야 전화/문자/메모/카메라 촬영 정도가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간혹 휴대폰으로 캐쥬얼 게임 등을 하곤 했지만 키패드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대다수였다. 이때 물리 키패드는 휴대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였다.

옵티머스Q
옵티머스Q

하지만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흐름이 넘어가면서 물리 키패드는 그 존재를 위협받기 시작했다. 처음 스마트폰 태동기에는 쿼티폰과 풀터치 스마트폰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 시장에 선보인 대표적인 쿼티폰은 리서치인모션(RIM, 현재는 블랙베리)의 블랙베리 시리즈, LG전자 옵티머스Q, 옵티머스Q2, 모토로라 모토쿼티 등이 있다. 상대적으로 쿼티폰에 대한 수요가 높은 해외 시장에는 HTC,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이 꾸준히 새로운 쿼티폰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것도 한때였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쿼티폰보다는 풀터치 스마트폰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스마트폰의 활용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스마트폰은 웹 서핑, 동영상 및 음악 감상, 게임, 독서 등 그 용도가 무궁무진하다. 자연히 화면 전체를 이용하기 좋은 큰 화면의 스마트폰이 각광 받았다. 화면을 크게 만들기 위해선 스마트폰의 쓸데없는 구성 요소를 줄여야 했고, 그 1번 타자로 지목된 것이 바로 물리 키패드다. 물리 키패드는 화면 속 가상 키패드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

HTC 차차
HTC 차차

쿼티폰은 물리 키패드를 고집하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바(Bar) 형태의 쿼티폰은 물리 키패드 때문에 상대적으로 화면이 작다. 블랙베리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옵티머스Q 시리즈 같은 슬라이드 형태의 쿼티폰은 상대적으로 두꺼운 두께를 감수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폴더 형태의 물리 키패드 스마트폰 갤럭시 골든은 생각보다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런 단점들은 생각보다 커서 스마트폰에 대한 수요도, 이에 따른 공급도 모두 풀터치 스마트폰에 집중됐다.

다만, 쿼티폰을 고집하는 소비자층은 소수이긴 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쿼티 키패드 케이스 등 풀터치 스마트폰을 쿼티폰으로 만들어주는 제품이 계속 나오는 것. 지금도 소위 '쿼부심(쿼티 자부심)'으로 뭉친 이들이 쿼티폰을 구매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정보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쿼티폰의 공동 구매까지 진행한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잠시 풀터치 스마트폰으로 전향했다가 이내 자판을 누르는 손맛을 잊지 못하고 돌아온 이들도 있고,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쿼티 스마트폰만 썼다는 이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들은 '낮은 스마트폰 사양을 상쇄하는 물리 키패드만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거기다 천편일률적인 풀터치 스마트폰 디자인과 달리 독특한 쿼티폰 디자인도 특징으로 꼽았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쿼티폰을 쓰는 사용자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라.

명맥을 잇는 쿼티폰

블랙베리 Q5, Q10
블랙베리 Q5, Q10

풀터치 스마트폰의 공세 속에서도 소수의 쿼티폰 신제품이 간신히 그 역사의 대를 잇고 있다. 선봉에 선 것이 블랙베리다. 지난해 블랙베리는 Q5, Q10 등을 내놓으며 쿼티폰 신봉자들을 설레게 했다. 최근에는 LG전자가 옵티머스F3Q라는 이름의 슬라이드 쿼티폰을 해외 시장에 출시하리라는 소문도 들린다.

다만, 이들 제품 모두 최근 나온 프리미엄급 풀터치 스마트폰과는 사양 경쟁에서 상당히 뒤떨어진다. 제조사 입장에선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제품이기에 무난한 보급형으로 노선을 잡아 위험 부담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쿼티폰에 관심이 많은 소수의 사용자들은 무척 아쉽다는 입장이다. 보급형 사양의 쿼티폰들은 기존 쿼티폰 사용자들뿐 아니라 새로 쿼티폰을 구매하려는 사용자들에게도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나마 기대할만한 곳 역시 블랙베리다. Q10보다 고사양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최근 자금 사정 문제로 보급형 모델 개발 계획을 취소한 블랙베리라 신제품은 그 앞날이 불확실하다. 만약 쓸만한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쿼티 키패드 케이스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다.

글 / IT동아 나진희(najin@itdonga.com)

IT동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Creative commons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의견은 IT동아(게임동아) 페이스북에서 덧글 또는 메신저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