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미운오리새끼' 아톰, '백조' 되어 돌아오나

김영우 pengo@itdonga.com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는 너무 유명한 동화다. 너무 못생겨서 따돌림을 당하던 새끼 오리가 있었는데, 여러 고난 끝에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아름다운 백조로 거듭났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컴퓨터 프로세서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 바로 인텔의 저전력 프로세서인 아톰(Atom)이다. 2008년에 첫 출시된 아톰은 빠른 처리속도 보다는 낮은 전력 소모와 작은 크기, 그리고 저렴한 가격을 강조한 모바일 프로세서로, 미니 노트북의 일종인 '넷북'에 탑재된 바 있다.

인텔 아톰 프로세서
인텔 아톰 프로세서

넷북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각 제조사에선 아톰이 저전력 프로세서라는 것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으면서 넷북이 단순히 싸고 휴대성이 좋다는 점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 역시 넷북을 단순히 크기만 작은 일반 노트북으로 인식해 구매하곤 했고, 그 후 느린 구동 속도와 낮은 처리 능력 때문에 크게 실망하곤 했다.

본래 넷북은 간단한 인터넷 서핑이나 문서 작업 정도에 적합한 제품인데, 이를 가지고 게임을 하거나 고화질 동영상을 구동하려니 당연히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복싱으로 치면 페더급 선수에게 미들급의 경기력을 기대했으니 당연히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때문에 2009년 즈음에 절정에 달하던 넷북의 인기는 급격히 사그라져 2011년 즈음이 되자 시장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아톰, 넷북 덕에 많이 팔긴 했는데…

이런 상황이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프로세서 제조사인 인텔이었을 것이다. 본래 아톰은 넷북만을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었다. 아톰은 넷북용인 N시리즈 외에 MID(Mobile Internet Device)라는 초소형 인터넷 단말기에 주로 쓸 목적으로 개발된 Z시리즈, 넷탑(저전력 초소형 데스크탑)을 위해 개발된 D시리즈 등 다양한 제품군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 제품군이 골고루 팔리며 전반적인 모바일 시장 전반이 활성화되기를 인텔은 기대했으나, 제품이 시장에 공급된 후 뚜껑을 열어보니 넷북만 집중적으로 팔렸고, 위와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아톰의 이미지도 덩달아 나빠졌다. 물론 아톰의 콘셉트를 잘 이해하며 넷북을 비교적 만족스럽게 쓰는 소비자도 있었으나, 일부 PC 제조사들의 홍보문구에만 집중한 상당수 소비자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넷북
넷북

하지만 인텔은 아톰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IT 시장이 점차 모바일 기기 중심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저전력 프로세서의 수요는 점차 늘고 있었고, 굳이 넷북이 아니더라도 아톰은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었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전력 소모율이나 칩의 크기 면에서 불리한 코어 시리즈 제품군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와 같은 기기에 달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5년 동안 갈고 닦은 신세대 아톰, '베이트레일'

이 때문에 인텔은 넷북이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새로운 버전의 아톰을 개발해왔다. 2008년부터 2013년 현재까지 출시된 아톰은 전력 소모는 줄이면서 반대로 성능은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를테면 2008년에 첫 출시되어 넷북에 널리 쓰인 1세대 아톰 '다이아몬드빌(Diamondville)'은 대다수의 모델이 1개의 코어를 갖춘 싱글코어 프로세서인데다 구조가 간단한 대신 속도가 느린 인 오더(in order) 방식으로 명령어를 처리했다. 하지만 2009년에 출시된 '파인뷰(Pineview)', 2011년에 출시된 '시더뷰(Cedarview)' 모델부터는 2개의 코어를 갖춘 듀얼코어 모델이 주류가 되었다.

아톰이 적용되는 주요 플랫폼도 넷북용에서 신세대 모바일 플랫폼용으로 이동했다. 특히 2013년 후반에 발표된 3세대 아톰의 주력 제품인 '베이트레일(Bay Trail)' 시리즈는 태블릿PC나 2 in 1(태블릿과 노트북 형태를 오가는 변형 PC)과 같은 플랫폼을 위해 개발되었으며, 4개의 코어를 갖춘 쿼드코어 모델도 출시되었다.

베이트레일의 가장 큰 변화라면 코어가 늘어난 것 외에도 인 오더 방식이 아닌 '아웃 오브 오더(out of order)' 방식으로 명령어를 처리한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일이 명령을 내릴 때까지 순서를 기다리던 기존의 아톰과 달리,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는 프로세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톰이 코어 시리즈를 비롯한 고성능 프로세서와 유사하게 변했다는 뜻으로, 모바일용 초소형 프로세서로서는 획기적인 성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전 세대 데스크톱 프로세서에 맞먹는 성능

실제로 최근 출시된 베이트레일 기반 쿼드코어 아톰인 Z3770의 경우, PASSMARK 벤치마크 결과 1,379점을 기록, 구형 데스크탑용 코어2 듀오 E6420(1,380점)과 유사하며, 3년 전에 나온 노트북용 저전력 프로세서인 코어 i5 520UM(1,366점)을 약간 상회하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넷북에 가장 많이 쓰이던 1세대 아톰인 N270 모델이 315점 남짓의 성능을 발휘하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세서 성능 벤치마크
프로세서 성능 벤치마크

현재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모바일 프로세서들, 즉 태블릿PC나 스마트폰에 주로 쓰이는 ARM 계열 모델과 비교하면 더욱 우위가 두드러진다. 최근 인텔에서 베이트레일을 출시하며 공개한 성능 비교 자료에 의하면 윈도 운영체제 환경에서 아톰 Z3770은 퀄텀의 스냅드래곤S4에 비해 3배, 엔비디아의 테그라3에 비하면 3.8배에 달하는 성능을 발휘한다. 또한 기존의 인텔 프로세서와 달리 윈도가 아닌 안드로이드 환경에서도 경쟁사 제품에 비해 성능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어 한층 다양한 환경에서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성능이 크게 향상되었으면서도 소비전력은 극히 낮다. 다이아몬드빌이나 파일트레일 계열 아톰 중에서 듀얼코어 상위 모델의 TDP(열설계전력)은 10W 내외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나 베이트레일 아톰의 쿼드코어 모델인 Z3740, Z3770 등의 TDP는 2W에 불과하다. 모바일 프로세서가 소비전력이 낮다는 것은 매우 큰 이점으로, 베이트레일 기반 태블릿PC는 배터리 충전 없이 10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다고 인텔은 발표한 바 있다.

태블릿에서도 '인텔 인사이드' 자리잡을까

베이트레일 아톰은 이제 막 발표된 상태이고 이를 적용한 태블릿PC나 2 in 1 제품이 에이수스, 에이서, HP, 레노버에서 몇 가지 나온 정도다. 시장반응이 어떻다고 말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인데다 삼성전자나 LG전자와 같은 국내 대기업의 제품이 아직 본격 출시되지 않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베이트레일을 탑재한 태블릿PC 및 2-in-1
제품
베이트레일을 탑재한 태블릿PC 및 2-in-1 제품

게다가 이미 ARM 계열 프로세서 기반의 모바일 기기가 거의 시장을 장악한 상태로, PC 시장에서는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인텔 브랜드의 프리미엄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아톰 = 넷북'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여러 사람들에게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 이를 극복해야 하는 점도 인텔에게는 난관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톰은 더 이상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는 점이다. 성능 면에서는 경쟁자들을 확실히 능가하며, 문제로 지적되던 소비전력이나 모바일 운영체제와의 호환성 면에서도 장족의 발전을 했다. '백조'로 거듭난 아톰이 모바일 시장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태블릿PC나 스마트폰에서도 '인텔 인사이드' 로고를 흔하게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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