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64비트 스마트폰 시대

강일용 zero@itdonga.com

애플 아이폰5s가 지난 25일 국내에 출시됐다. 아이폰5s 특징은 여러 가지이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참된 64비트 스마트폰이란 점이다.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아이폰5s가 공개되자 64비트 스마트폰에 높은 기대감을 표하는 의견부터 64비트 스마트폰은 무용지물이라는 의견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그렇다면 어떤 의견이 맞는 걸까. 그리고 64비트 스마트폰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한번 자세히 알아보자.

아이폰5S
아이폰5S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64비트 스마트폰은 분명 의미가 크다. 두 가지 명확한 장점을 담고 있다. 첫째는 '성능향상'이다. 한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크기가 32비트보다 2배 늘어나는 만큼 작업 처리속도 역시 향상된다. 4차선 고속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됐다고 이해하면 쉽다. 확장된 도로만큼 자동차는 더 빨리, 더 많이 다닐 수 있다. 64비트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4GB 이상의 메모리(RAM) 인식'이다. 32비트 명령어 체계는 메모리를 2의 32승, 그러니까 4GB까지만 인식할 수 있다. 현재 스마트폰 메모리가 최대 3GB 내외에서 머무는 이유다. 반면 64비트 명령어 체계를 갖추면 이론상 약 16EB(엑사바이트)까지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론 운영체제가 인식하는 메모리 한계치인 64~128GB 정도만 인식하는 게 고작이다. 그렇다 해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용량 메모리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애플리케이션(앱)을 쾌적하게 실행할 수 있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강화된다는 뜻이다.

64비트 스마트폰이 제 성능을 내려면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그런데 사실 64비트 스마트폰의 성능향상에는 맹점이 하나 있다. 사용자가 성능향상을 체감하려면 세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첫째, 프로세서가 64비트를 지원해야 한다. 둘째, 운영체제도 64비트 기반으로 제작돼야 한다. 셋째, 앱도 64비트 명령어로 실행되도록 설계돼야 한다. 이 세가지를 만족하지 못하면 32비트 시절과 다를 게 없다. 앞에서 8차선으로 확장된 고속도로를 예로 들었다. 여기서 확장된 고속도로는 프로세서, 자동차는 운영체제와 앱에 비유할 수 있다. 도로를 아무리 넓게 뚫어놔도 자동차가 그 위를 지나다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64비트 프로세서는 64비트 전환의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단독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운영체제와 앱이 받쳐줘야 한다.

과거 PC가 32비트에서 64비트로 이행되던 시절 세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되지 않아 홍역을 치렀다. PC용 64비트 프로세서는 2003년 등장했지만, 당시 널리 사용되던 운영체제는 32비트 기반 윈도XP라 64비트가 큰 쓸모가 없었다. 당연히 64비트 지원 앱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2005년 윈도XP 64비트 에디션이 나오고 나서야 64비트 프로세서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윈도XP 64비트 에디션은 궁여지책으로 만든 운영체제라 드라이버 호환 불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고, 별로 보급되지도 않았다. 이후 64비트를 제대로 지원하는 윈도 비스타가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64비트 앱 개발이 시작됐다. 프로세서가 등장하고 앱 개발이 시작되기까지 4년 넘게 걸렸다.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 아이폰5s가 아이폰5보다 2배 빨라졌는데, 그것이 64비트 스마트폰의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 아니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결과는 64비트 전환 때문에 얻은 게 아니다. 프로세서의 근간을 이루는 아키텍처를 바꿨기 때문에 성능이 향상된 것이다.

애플은 A7 프로세서를 제작하면서 예전에 사용하던 ARMv7 아키텍처 대신 ARMv8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ARMv8을 설계한 ARM은 ARMv8 아키텍처 기반 프로세서는 ARMv7 아키텍처 기반 프로세서보다 성능이 최대 3배 뛰어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A7의 성능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아이폰5s의 참된 의미… A7, iOS7, 그리고 64비트 개발도구

그럼에도 아이폰5s는 참된 64비트 스마트폰이다. 애플은 64비트 전환 때문에 홍역을 치른 PC사례에서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삼박자가 동시에 이행되지 않으면 64비트는 무의미하다는 교훈이다.

일단 애플은 64비트를 지원하는 A7 프로세서를 직접 제작해 아이폰5s에 내장했다. 이어 64비트 기반으로 제작된 iOS7 운영체제를 아이폰5s에 심었다. 이 둘을 동시에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제작하는 회사인 덕분이다. 하드웨어는 인텔,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담당하기에 기민한 대처가 불가능했던 PC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프로세서와 운영체제가 64비트를 지원하면 운영체제는 한층 빨라진다. 하지만 고작 운영체제 부팅속도와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려고 64비트로 전환한 것은 아닐 터. 핵심은 앱에 있다. 64비트 앱이 속속 등장해야 64비트 이행이 완료됐다고 평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아이폰5s와 함께 64비트 전환 개발도구를 공개했다. 기존 32비트 앱을 빠르고 간단하게 64비트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개발도구다.

사실 애플은 아이폰5s 발표 당시 이러한 사실을 계속 강조했다. 그리고 64비트 앱의 예시를 들었다. 바로 에픽 게임즈의 '인피니티 블레이드3'다. 인피니티 블레이드3는 아아폰5s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해 뛰어난 3D 그래픽을 보여준다. 에픽 관계자는 "32비트로 개발 중이던 인피니티 블레이드3를 64비트로 전환하는데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개발도구 사용소감을 피력했다.

현재 애플이 직접 제작한 앱과 몇몇 주변 개발사의 앱이 64비트로 전환된 상태다. 앱스토어를 엄하게 관리하는 애플의 성향을 감안하면 향후에는 64비트를 지원하지 않으면 앱을 등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물론 한참 뒤의 얘기겠지만). 앱스토어에 올라온 앱 대다수가 64비트로 전환되면 그때 64비트 스마트폰 아이폰5s의 진정한 성능을 평가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안드로이드 진영의 64비트 전환은?

이제 안드로이드 진영이 64비트 전환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아볼 차례다. 일단 프로세서만 놓고 보면 매우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5s를 공개하며 세계최초의 64비트 스마트폰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 이는 틀린 표현이다. 이미 시중에는 64비트 프로세서 인텔 아톰(메드필드)을 내장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버젓이 판매 중이었기 때문.

삼성전자도 ARMv8 아키텍처를 채택한 64비트 프로세서를 개발하는 중이다. 출시시기는 ARM 로드맵에 맞춰 내년 초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만의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사 미디어텍도 삼성과 마찬가지로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64비트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발하고 있다.

프로세서는 그렇다 치고 운영체제의 상황은 어떨까. 일단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64비트를 지원할지 여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구글은 곧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4.4 킷캣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외신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를 종합하면, 킷캣은 64비트 지원 등 큰 부분이 변하는 게 아니라 스마트TV 지원, 개발도구 강화 등 사소한 부분이 변경된다.

그럼에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64비트 전환은 상당히 빨리 이뤄질 전망이다. 이미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기반이 되는 기술 상당수에 64비트가 적용돼 있기 때문. 구글이 마음만 먹는다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재빠르게 64비트로 전환할 수 있다. 제작사들의 요구를 맞춰주기 위해서라도 64비트 안드로이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앱의 64비트 전환은 요원하다. 몇 가지 기기에 맞춰 기존 앱을 64비트로 전환하면 되는 iOS와 달리 안드로이드는 여러 모바일 프로세서, 다양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와 호환성을 신경 써가며 앱을 64비트로 전환해야 한다. 구글이 64비트 전환 개발도구를 공개하겠지만, 거의 앱을 새로 개발해야 하는 정도의 수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큰 개발사에겐 조금 성가신 정도의 문제겠지만, 작은 개발사에겐 감히 엄두도 못 낼 작업이 될 전망이다. 아직도 64비트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PC 시장과 비슷한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 진영은 내년에도 64비트 전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성능향상과 다른 형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앞에서 64비트 전환은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설명한 듯하다. 성능향상은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하지만, 4GB 이상의 메모리 인식은 프로세서와 운영체제만 64비트로 이행돼도 실현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진영도 내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메모리 탑재에 짠돌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애플과 달리 안드로이드 진영 제작사는 메모리를 매우 넉넉하게 탑재한다. 멀티태스킹 기능이 뛰어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내년이면 4GB 이상의 메모리를 탑재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태블릿PC가 속속 등장해 사용자들이 한결 빠르고 쾌적하게 멀티태스킹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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