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빅리틀 코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걸까

강일용 zero@itdonga.com

삼성전자의 흥미로운 발표가 귀를 솔깃하게 한다. 갤럭시S4, 갤럭시노트3 등 자사의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옥타코어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5 옥타'에 이종간(異種間) 멀티 프로세싱 기술(Heterogeneous Multi-Processing Capability, 이하 HMP)을 적용할 것이라고 10일 밝혔기 때문.

엑시노스5
엑시노스5

HMP란 '성질이 서로 다른 프로세서 코어를 연결해 성질이 같은 프로세서 코어인것처럼 활용하는 기술'이다. 설명이 조금 어렵다. 좀더 쉽게 풀어보자.

CPU와 GPU는 그 용도가 전혀 다른 프로세서다. CPU는 일반 작업에, GPU는 그래픽 작업에 최적화돼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CPU는 정수연산에, GPU는 부동소수점 연산에 강하다. 하지만 작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CPU에 부동소수점 연산을 떠넘기는 애플리케이션이 증가하고 있다. 때문에 개발자들은 CPU와 GPU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됐다. 그리하여 탄생한 기술이 HMP다. CPU와 GPU라는 성질이 전혀 다른 프로세서 코어를 함께 활용해 작업을 한층 빨리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다. HMP는 주로 슈퍼 컴퓨팅과 모바일 분야에 사용된다.

성질이 다른 프로세서 코어는 CPU, GPU만 있는 것은 아니다. CPU끼리도 성질이 다를 수 있다. 적용된 기술과 세대의 차이로 같은 CPU이지만 함께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ARM이 발표한 저전력 기술 '빅리틀 프로세싱(big.LITTLE)'이다.

빅리틀 프로세싱은 고사양 '코텍스 A15코어'와 저전력 '코텍스 A7코어'를 함께 탑재해, 뛰어난 사양과 저전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으려 했던 기술이다. 빅리틀 프로세싱을 채택한 대표적인 회사가 삼성전자와 미디어텍이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5 옥타 두 모델(5410, 5420)에 빅리틀 프로세싱을 적용했다. 엑시노스5410은 갤럭시S4와 넥서스10에, 엑시노스5420은 갤럭시노트3 3G모델과 갤럭시노트10.1 2013년 모델에 채택됐다.

빅리틀 프로세싱의 취지는 좋았다. 그런데 기술의 성숙도가 모자라 문제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A15코어와 A7코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상황에 맞춰 둘 중 하나만 선택해서 사용해야 했다. 게임 등 고 사양을 요구하는 작업을 처리할 때 A15코어만 활성화되고 A7코어는 무의미하게 놀고 있어야만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개별 코어를 별도로 실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스마트폰에 A15코어를 4개 탑재했다고 가정해보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할 때 A15코어를 모두 사용할 필요가 없다. 코어 가운데 하나만 사용해도 충분한 성능이 나온다. 문제는 이 4개의 코어 가운데 하나만 뚝 떼어내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인터넷, 동영상 감상 등 코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작업을 할 때에도 4개의 코어가 동시에 사용돼 전력을 과도하게 소모했다. A7코어를 활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이 대기모드에 있을 때는 A7코어 하나만 활성화해도 충분하다. 하지만 내장된 모든 A7코어가 활성화되는 바람에 전력효율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빅리틀 프로세싱의 문제가 거슬렸다. 때문에 엑시노스5 옥타에 HMP를 적용해 성질이 전혀 다른 A15코어와 A7코어을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했고, 하나의 코어만 활성화되고 나머지 코어는 쉴 수 있게 했다. 전력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 프로세서의 성능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게 한 것. 이로써 엑시노스5 옥타는 진정한 옥타코어 프로세서로 거듭났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김태훈 상무는 "HMP를 적용한 엑시노스 5 옥타를 통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고 사양 앱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배터리 사용 시간은 늘어나는 새로운 모바일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ARM 노엘 헐리(Noel Hurley) 부사장은 "빅리틀 프로세싱은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코어 조합을 제공해 뛰어난 성능과 저전력을 함께 제공한다"며, "ARM과 삼성전자는 앞으로도 최신 모바일 프로세서 기술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시장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HMP는 올해 4분기에 출시되는 엑시노스5 옥타부터 적용된다(5410, 5420 등). 다만 하드웨어 적인 변경이기 때문에 이미 출시된 엑시노스5 옥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삼성전자와 ARM, 굳건한 관계 다시 확인

삼성전자는 이번 HMP 적용으로 친 ARM 성향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현재 모바일 프로세서 시장은 퀄컴, 삼성전자, 미디어텍, 애플 등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퀄컴, 애플은 ARM 아키텍처를 독자적으로 개량한 프로세서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미디어텍은 ARM 아키텍처를 되도록 고스란히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빅리틀 프로세싱이 경쟁사와 비교해 딱히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미디어텍이 ARM과 조금 거리를 두게 됐다. 그 결과가 얼마 전 미디어텍이 선보인 'A7코어를 8개 붙여 제작한 변종 옥타코어 프로세서'다. A7코어는 오직 저전력만 담당한다는 ARM의 원래 의도와 상당히 떨어져있는 프로세서다.

반면 삼성전자는 ARM과 함께 빅리틀 프로세싱의 단점을 개선한다는 선택을 했다. 또, HMP를 적용해 미디어텍보다 기술력이 뛰어남을 입증했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ARM 아키텍처 변형 허가 라이선스를 취득하면서 불거진 '삼성전자 독자 아키텍처 기반 모바일 프로세서 제작설'은 조금 사그라질 전망이다.

삼성전자 ARM
삼성전자 ARM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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