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인, 결국 사용자를 위한 것"

이문규 munch@itdonga.com

LG전자 HE디자인연구소 문이현 선임연구원, 이태진 주임연구원

전자/가전기기를 선택하는 기준이 예전과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조사의 유명세나 기본 사양, 성능 등이 제품 선택의 우선 조건이었는데, 최근 들어 여기에 '디자인' 조건이 추가됐다. 나아가 다른 선택 조건보다 디자인을 우선 고려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기기의 사양이나 성능이 높아질 만큼 높아져 제품간 변별도가 낮아 졌기 때문이다.

비슷한 가격대나 사양, 성능 혹은 고만고만한 제조사 유명세라면 보기 좋고 예쁜 것을 고르기 마련이다. 행여 가격이 약간 비싸더라도, 사양/성능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제조사가 그리 유명하지 않아도 수려한 디자인의 제품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다. 이미 시장에서 증명되기도 했다. 전자/가전기기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제품은 이제 디자인을 배제해서는 시장경쟁력을 갖출 수 없게 됐다.

제품 디자인의 중요성을 최근 다시 일깨운 제품 중에는 LG전자 탭북과 울트라북 Z360이 단연 이슈다. 탭북은 태블릿PC의 형태에서 버튼으로 화면을 세워 노트북처럼 사용하는 컨버터블PC(오토슬라이드 방식)로 출시 직후 사용자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 잡았다. 울트라북인 Z360 역시 특별할 것 없어 보였던 울트라북 제품군에 디자인이라는 생명력을 불어 넣은 제품으로 인기 급상승 중이다.

그럼 이런 제품은 누가 디자인했을까? 그리고 제품 디자이너, 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남다른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 또한 감수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 봤다.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디자인연구소 문이현 선임연구원과 이태진 주임연구원이다.

LG전자 HE디자인연구소 문이현, 이태진
연구원
LG전자 HE디자인연구소 문이현, 이태진 연구원

간단한 자기 소개를 ‘짧게’ 부탁한다.
문이현(이하 문, 사진 좌)>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내 HE디자인연구소, IT팀에 재직하고 있다. 우리 팀은 노트북이나 데스크탑, 모니터 등을 디자인하고 있다. TV와 오디오, 즉 AV 기기를 제외한, 컴퓨터 관련 모든 제품이 포함된다. 디자인 경력은 13년 정도 됐다.

이태진(이하 이, 사진 우)> 같은 팀이라 업무 내용은 문 선임과 동일하다. 제품 디자인을 한 지는 8년 정도다.

그동안 어떤 제품을 디자인해 출시했나?
문> 이 주임과 함께 3년 전까지는 LG전자의 핸드폰/스마트폰 디자인을 담당했다. 그 후 HE디자인연구소에서 IT 제품 디자인을 맡아 1세대 올인원PC 디자인부터 시작했다. 이 주임이 디자인한 '탭북'과 최근 출시된 울트라북 'Z360' 등이 최근 디자인 제품이다.

LG전자 올인원PC
LG전자 올인원PC

학창시절부터 제품 디자이너가 되기를 희망했나? 제품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문>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긴 하지만 당시에는 순수미술을 추구하다가 졸업하며 제품 디자인 분야로 전향했다. 우리 디자인 연구소에도 그런 디자이너가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그런 디자이너가 독창적인 표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물론 제품 디자인을 하려면 해당 제품군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이> 어렸을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다. 본인 역시 문 선임처럼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생업을 위한 현실적인 직종을 갖기 위해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고 결국 산업 디자인 전공 학과로 대학에 진학했다.

일반적으로 제품 디자인 업무가 어느 범위까지 해당되는가?
문> 본체는 물론 액세서리와 부속품, 기본 포장(상자 등)까지 포함된다. 탭북의 경우 전원어댑터까지 기본 디자인을 통일했다. 물론 모든 제품에 대해 디자인 통일을 적용할 순 없지만, 디자인이 특징이 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작은 것 하나까지도 신경써서 디자인할 생각이다.

LG전자 탭북과 Z360울트라북
LG전자 탭북과 Z360울트라북

탭북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탭북은 어떤 영감으로 디자인했는가?
이> 상품기획팀에서 의뢰한 탭북의 디자인 골격은 윈도8 기반의 터치 스크린 태블릿형 노트북이었다. 일반적인 노트북 형태라면 화면을 터치할 때 화면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이를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었다. 현재의 탭북처럼 화면이 위로 솟아 오르는 오토슬라이브 방식과 경쟁사의 컨버터블PC처럼 화면과 키보드를 분리/장착하는 방식을 놓고 고민했다. 아무래도 안정성을 고려하다 보니 오토슬라이드 방식을 선택했고, 상품기획팀, 마케팅팀, 디자인팀, 기구개발팀 등이 모두 모여 이 방식을 확인, 점검하여 최종 결정했다.

문> 제조 분야에서 흔히 말하는 '와블링(wobbling, 흔들거림)'을 제거하는 방식은 제조사마다 다른데, 우리는 현재의 탭북처럼 지지대가 적용된 슬라이드 방식을 채택하면서, 이 형태가 태블릿PC와 노트북의 사용 패턴을 적절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물론 처음에는 다른 제품처럼 키보드와 화면이 분리되는 제품으로 디자인했다. 막상 키보드를 분리하더라도 이를 사용하려면 모두 소지해야 하는데 그럼 굳이 분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초기 디자인을 전면 수정했다.

LG전자 탭북
LG전자 탭북

그럼 탭북처럼 성공적인 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면 특혜가 있을 듯하다
이> 다음 모델의 디자인 업무가 자동으로 맡겨지는 특혜(?)가 있다(웃음). 한번 해봤으니 또 해보라는 뜻이다. 지금도 탭북의 후속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현 탭북 사용자 피드백을 적극 반영한 또 다른 탭북을 공개할 예정이다.

탭북과 함께 최근 출시한 울트라북, Z360의 반응이 뜨겁다. Z360 디자인은 어떻게 진행됐나?
문> Z360은 팀에서 공동으로 디자인했다. 울트라북답게 조가비 모양을 최대한 반영하려 했고, 향후 터치 스크린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컴팩트한 디자인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또한 화면을 거의 180에 가깝게 젖혀서도 사용하도록 고려했다. 탭북 디자인을 통해 얻은 디자인 경험을 그대로 Z360에 녹여낸 것이다. 울트라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무게와 크기를 줄이면서 경쟁력을 강화했다. IT제품이지만 누구에게나 예쁘고 친숙하게 보일 수 있도록 감성적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다. Z360은 현재 화이트 컬러만 출시됐는데, 조만간 실버 컬러 모델도 선보일 예정이다.

LG전자 Z360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LG전자 Z360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이> 컬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Z360을 디자인하면서 컬러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순백의 화이트 컬러에 과연 남성 사용자가 반응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그동안의 Z360 판매 현황을 보니 의외로 남성 사용자가 많다는 사실에, 최근의 디자인 선호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이외에, 사용하면서 때가 덜 타도록 키보드 팜레스트(손목이 닿는 부분) 주변을 유광 처리(하이그로시)하려 했으나, 때가 탈지언정 수려한 디자인을 고수하기 위해 과감하게 무광 처리를 유지했다. 디자이너로서 자존심을 심어 넣고 싶었다.

그럼 두 디자이너의 디자인 철학은 무엇인가?
문> '미니멀리즘', 즉 불필요한 것은 최대한 제거하려 한다.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질리지 않게 하려면 부가적 요소는 최대한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본질 이외에는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TV 화면에서 말하는 '제로 베젤' 역시 화면 이외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 것이고, 소비자는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디자이너 개인의 철학이라기 보다는 팀내의 공통된 디자인 철학이라 할 수 있다.

그외에 제품 디자인을 담당하며 가장 중점에 두거나 고려하는 사항이 있다면?
이> 탭북이나 울트라북 등 독특한 제품을 디자인하다 보니 평소에 다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기기를 집중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를 통해 사용자의 선호 트렌드와 사용 패턴 등을 빠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별에 따라 노트북을 사용하는 형태, 키보드 사용 패턴, 활용 용도, 컬러 선호도 등을 사용자층에 맞춰 인지하고 기록해 둔다. 결국 사람이 사용하는 제품이기에 사람을 위한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LG전자 Z360 울트라북
LG전자 Z360 울트라북

결정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문> 회사에서 디자이너를 위해 '태스크룸'이라는 독립 공간을 마련해 줬다. 이 공간은 사무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공간이며, 업무용 전화도 없어 혼자 만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차분히 정리할 수 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어지러울 때 혼자 들어가 있으면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그 중 하나가 결정적으로 탁! 잡히는 때가 있다.

이> 업무 중에도 틈틈이 인터넷 서핑을 통해 새로운 정보와 지식, 디자인 이미지를 찾는다. 실제로 Z360의 경우 인터넷 서핑 중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요트나 선박 이미지를 보고 이를 연상하여 제품 디자인으로 가져왔다. 결정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눈에 걸리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다.

Z360의 경우 화이트 컬러를 적용해 수려한 디자인을 완성했는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홍보/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어 ‘옥의티’로 인식된다. 디자이너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문> 디자이너로서 우리 역시 그저 아쉬울 뿐이다. 디자인 측면에서는 최대한 깔끔하게 뽑아 내려 고민했는데 정작 여러 스티커가 붙으니 솔직히 많이 안타깝다. 다만 임직원 모두가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어 조만간 개선될 예정이다. 스티커를 작게 제작하거나 (원할 경우) 사용자가 떼기 쉽도록 처리하면 좋을 듯하다.

LG전자 Z360에 붙어 있는 스티커
LG전자 Z360에 붙어 있는 스티커

그 디자인 결과로 디자인 관련 국내외 시상식(어워드)에 응모해 당선된 적이 있는가?
이> 세계 3대 디자인 시상식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나 '독일 레드닷 어워드' 등에 노트북 디자인으로 응모해서 여러 차례 본상을 수상한 적 있다. 올해에도 Z360이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상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상을 수상했다. LG전자는 노트북뿐 아니라 TV 등의 일반가전 분야 디자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세계 디자인 어워드상을 수상한 Z360
세계 디자인 어워드상을 수상한 Z360

향후에 신입 디자이너를 직접 선발한다면 어떤 이들을 고려하겠는가?
문>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그 외의 다양한 분야에 관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를 통해 여러 가지 시선으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 싶어하는 욕구, 배우고자 하는 열성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디자이너로서 포부나 희망사항이 있다면?
문> 아마도 죽을 때까지 제품 디자인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노년이 되면 미술학도 본연의 모습으로 자그마한 미술작업화실을 갖고 나만의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

이> 제품 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10년 후에 봐도 인정 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이들을 따로 모아 개인 전시회도 한번 열어보고 싶다.

LG전자에서 내놓은 탭북(Z160)과 울트라북 Z360은, 기존 노트북이 그랬던 것처럼 성능 및 사양이 아닌 독창적인 디자인을 주무기로, 흔들리는 노트북 시장에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Z360은 울트라북답게 태블릿PC에 버금가는 외형과 탁월한 화질의 IPS 디스플레이를 갖춰 당분간은 인기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에 디자인이 크게 작용함에 따라 제품 디자이너들의 역량과 아이디어가 특히 주효하게 됐다. 이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통용될 혁신적인 제품 디자인을 기대해 본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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