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청에서 이미지 센서까지, 필름의 탄생과 발전

이상우 lswoo@itdonga.com

과거 서양에서 그림은 상류층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물건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초상화는 왕족과 귀족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인물의 사회적 권위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화가들의 비법이 있었다.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으로, 상자나 방에 작은 구멍을 뚫어 반대쪽 벽이나 막에 물체의 상을 투사하는 장치다. 바늘구멍사진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투사된 상에 종이를 대고 따라 그리면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 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풍경, 정물, 초상화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됐다. 필름의 역사는 카메라 옵스큐라부터 시작된다.

필름에 상이 맺히는 원리
모든 물체는 빛을 반사하거나 흡수한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물체에서 반사된 빛을 필름으로 전달하는데, 이 빛의 세기에 따라 필름이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다. 이 반응 정도에 따라 물체의 윤곽선이나 색상 등이 필름에 맺히게 된다.

8시간에 사진 한 장, 헬리오그래피

1820년 프랑스 발명가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Joseph Nicephore Niepce)'가 세계 최초 사진기법인 '헬리오그래피'를 발표했다. 헬리오그래피란, 그리스어로 '태양광선(Helio)으로 그린 그림(Graphy)'이라는 뜻이다. 빛에 노출되면 굳어지는 '역청'이라는 물질을 이용한 기법으로, 빛의 강함에 따라 역청이 굳어지는 정도가 달라져 물체의 상이 맺히는 원리다. 다만, 상이 맺히는 시간이 자그마치 8시간에 달했다. 아래 사진은 니엡스가 자신의 별장 작업실에서 헬리오그래피 기법으로 만든 사진이다.

오늘로 그림은 죽었다, '다게레오타입'

1839년 8월 19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화가 '루이 자크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헬리오그래피를 발전시킨 '다게레오타입'을 발표했다. 이 기술은 은을 얇게 코팅한 구리판에 요오드를 발라 상을 맺는 기술이다(얇게 바른 은이 빛에 반응해 색이 변한다). 다게레오타입은 헬리오그래피로 8시간이나 걸리던 작업을 20분 내외로 줄였고, 사진의 질도 머리카락 한 올부터 섬세한 표정까지 정밀하게 묘사할 정도로 높아졌다. 이 기술을 본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는 '오늘로 그림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다게레오타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진 기법과 많이 다르다. 금속판 위에 직접 상을 찍어내기 때문에 한번 촬영한 사진은 복제할 수 없다. 쉽게 말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구리판에 찍은 것이다. 거리조절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진의 크기에 한계가 있었고, 사진도 거울에 비친 것처럼 좌우가 반대로 나왔다. 무엇보다 제작과정이 어렵고 가격이 비싸, '평생에 한번'이라는 생각으로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 많았다.

현대 사진과 가장 비슷한 칼로타입

1841년 영국에서 '윌리엄 탈보트(William Henry Fox Talbot)'가 복제할 수 없는 다게레오타입의 단점을 보완한 '칼로타입'을 발표했다. 질산은을 바른 종이를 빛에 노출시켜 음화(Negative film, 색이 반전된 사진)를 만들고, 이를 빛에 반응하는 종이를 아래에 놓고 한번 더 노출시키면 사진이 원래 색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필름 사진을 현상/인화 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칼로타입은 다게레오타입 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비용이 저렴하고 필름(질산은을 바른 종이) 한 장으로 사진 여러 장을 만들 수 있어, 일반인들도 자신의 사진을 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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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
이 말은 1888년 코닥(Kodak)의 카메라 광고문구였다. 코닥은 당시 100컷 짜리 롤 필름이 들어있는 카메라를 판매했다. 사용자가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코닥이 사진을 현상/인화해주고, 새 필름을 넣어 돌려줬다.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후 1889년 포토그래픽 저널이 일반인이 찍은 사진을 직접 현상할 수 있는 과정을 소개했고, 이때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한편, 코닥은 1935년 컬러 필름 코다크롬(Kodachrome)을 출시하면서 컬러 필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필름은 추억 속으로

2000년대 들어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필름이 필요 없게 됐다. 빛의 강약, 색상 등을 촬상소자(CCD, C-MOS)를 이용해 디지털신호로 바꿔 파일로 저장할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CCD(Charge Couple Device)는 많은 광다이오드가 들어있는 칩이다. 여기에 빛을 노출하면 각각의 광다이오드가 빛의 밝기를 저장하고, 이를 재구성해 이미지 파일로 만든다. CCD 크기가 클수록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며, 노이즈 발생도 줄어든다.

C-MOS(Complementary Metal-Oxide Semiconductor)도 광다이오드를 사용한다. 하지만, CCD와 제조과정과 신호를 읽는 방식이 다르다. 무엇보다 CCD보다 제조단가가 낮고 소비 전력이 적다. 과거에는 CCD보다 화질이 떨어져 저가 제품에만 사용됐다. 하지, 최근에는 큰 크기로 만들 수 있고, 제조 비용이 낮으며, 화질도 향상되는 등 여러 기술의 발전으로 고화질을 요구하는 DSLR 카메라 등에 많이 사용된다.

한편, 디지털 카메라가 시장의 주류가 되면서 컬러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다크롬은 출시 후 74년이 지난 2009년 생산을 중단하며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롤 필름은 만드는 회사는 후지필름, 아그파, 럭키 등이 남아있다. 일부 회사는 즉석 사진용 필름을 주력 제품으로 삼아 필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글 / IT동아 이상우(lswo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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