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삼성의 샤프 지분 인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강일용 zero@itdonga.com

흥미로운 소식이 지난 6일 들려왔다. 삼성전자가 일본의 전자회사 샤프에 104억 엔(약 1,200억 원)을 투자해 전체 지분의 3%를 확보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금융권을 제외하고) 샤프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대체 왜 샤프에 이런 거액을 투자한 것일까? 그 내막을 알아본다.

먼저 삼성전자의 입장을 들어보자.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투자의 목적은 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거래선을 다양화하기 위함"이라며, "샤프와 협력을 보다 강화하고자 지분투자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샤프는 이번 계약 체결 전부터 TV용 LCD 패널 전체 생산량의 50~60%를 삼성전자에게 공급하는 등 삼성전자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었다.

샤프는 일본 가메야마현(8세대)과 사가이현(10세대)에서 LCD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8세대는 현재 TV에 사용하는 주력 패널 생산라인이다. 10세대는 태블릿PC에 사용할 고해상도 패널과 60인치 이상의 대형TV 패널을 생산하기 위한 라인으로, 자금 부족과 악성 LCD 패널 재고 때문에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투자는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지, 경영에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며, "퀄컴 등 외부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 샤프에 출자해 LCD 사업 수익개선과 양 사의 신뢰관계 구축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협력관계 강화와 경영 불간섭에 주목해야 한다.

휘청거리는 샤프, 수혈이 절실

샤프는 제 작년부터 큰 위기에 부딪혔다. 주력 사업인 LCD 패널은 TV 시장 경쟁력 악화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자국의 경쟁기업 소니보다도 TV 시장 점유율이 떨어진다(시장조사기관 IDC가 집계한 전세계 및 북미 시장 기준). TV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격적인 패널 생산라인 증설은 고스란히 1조 2,500억 엔(당시 환율 기준 약 18조 원)의 부채로 돌아왔다. 게다가 자사와 몇몇 협력 업체에만 LCD 패널을 공급하는 전략도 적자에 한몫 했다. 결국 제 작년 적자만 3,500억 엔(당시 환율 기준 약 5조 원)에 이르렀다. 부채 때문에 약 2,000여 명을 정리해고 했고, 쌓여있는 LCD 패널 재고는 10세대 공장을 제대로 가동조차 못하게 하고 있다.

샤프는 난관을 외부투자 유치로 극복하고자 했다. LCD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투자만 받으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가장 먼저 투자의사를 밝힌 곳은 대만의 홍하이정밀이다. 우리에겐 아이폰 생산업체 폭스콘(Foxcon)으로 더 유명한 그곳이다.

처음엔 순조로웠다. 홍하이정밀 궈타이밍 회장은 "한국인은 배신자, 일본인은 한국인과 달리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는 반한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가며, 홍하이정밀과 샤프의 합작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샤프로부터 LCD 패널을 공급받아 TV 시장에 진출하고, 장기적으로 '애플이 생산할 TV(가칭)'를 수주하기 위해서다. 샤프 역시 전체 지분의 9.9%를 홍하이정밀에 매각한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샤프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홍하이정밀은 점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샤프는 협상을 시작한 당시의 가격에 매도하길 원했지만, 홍하이정밀은 매수 시점에 맞춰 가격을 조정하길 원했다. 한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홍하이정밀이 샤프의 경영에 참가하길 원한 것. 단순히 투자 유치를 계획한 샤프의 입장에선 달갑지 않은 일이다. 장기적으로는 샤프가 홍하이정밀에 인수 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양측의 의견차이는 좁혀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궈타이밍 회장이 직접 일본에 날아가 협상을 했지만 진전은 없었다. 결국 지난해 8월 협상은 결렬됐다. 협상 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샤프의 주가는 당일에만 12.8%가 폭락했다. 타국을 뒤통수나 치는 곳으로 매도하던 그가 친히 샤프의 뒤통수를 친 셈.

샤프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올해 3월 마감되는 2012년 회계연도 순손실액은 약 4,500억 엔(약 5조 2,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현재 누적 부채만 1조 5,000억 엔(약 16조 원, 엔으로 계산하면 부채는 작년보다 늘었지만, 엔화 약세에 따라 원으로 환산하면 작년보다 오히려 줄었다)에 이른다.

샤프 입장에선 동아줄이 절실했다. 결국 퀄컴이라는 동아줄을 잡았다. 퀄컴은 차세대 스마트폰용 LCD 패널 'MEMS(Micro-Electro Mechanical Systems)' 디스플레이를 연구하고, 이를 양산하기 위해 샤프와 협력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52억 엔(약 600억 원)을 지난해 12월 투자했고, 경과가 좋으면 52억 엔을 추가로 투자할 계획이다. 추가 투자가 완료되면 퀄컴의 지분은 삼성전자와 동일해질 전망이다. 그리고 이번에 삼성전자의 투자를 유치하게 이른다. 양사는 홍하이정밀과 달리 경영권에 큰 관심이 없기에 샤프 입장에서도 선뜻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가 투자를 발표한 7일 샤프의 주식은 주당 356엔으로 전날보다 19% 급상승했다.

삼성전자가 지분투자를 결정한 세 가지 이유

샤프의 입장을 파악했으니, 이제 삼성전자의 의중이 궁금하다. 샤프는 TV 시장과 모바일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입장이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풀HD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는 대부분 샤프가 제작한 것이다. 대체 왜 삼성전자는 경쟁사 샤프에 투자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된다. 가장 큰 이유는 삼성전자가 직접적으로 밝힌 대형 LCD TV '패널 수급'이다. 삼성전자는 자사가 직접 생산한 LCD 패널 이외에도 샤프가 공급하고 있는 LCD 패널을 TV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샤프가 휘청해 LCD 패널 공급이 끊긴다면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전혀 좋을 것이 없다. 경쟁사가 시장에서 사라짐으로써 얻는 이익보다는 제때 물량을 공급하지 못해 얻는 손해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 이유는 ‘기술 확보’다. 누가 뭐라 해도 샤프는 LCD의 원천기술을 확보한 회사다. 최근에는 작은 크기로도 고해상도를 실현하면서, 밝고, 전력은 적게 소모하는 차세대 LCD 디스플레이 'IGZO(인듐, 갈륨, 아연, 산소 네 가지 소재의 앞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 일본어 이쿠조(간다)라는 의미도 있다) 패널'을 선보였다. 이를 탑재한 32인치 울트라HD(해상도 3,840x2,160) TV를 CES 2013에 선보여 호평받은 사례도 있다. 바로 이 IGZO 패널의 라이선스 및 원천기술을 취득해 향후 디스플레이의 대세인 고해상도화에 대응하는 것이 삼성전자의 계획으로 보인다.

세 번째 이유는 '애플 견제'다. 샤프는 아이폰, 아이패드에 사용되는 고해상도 IPS 디스플레이 '레티나 디스플레이'의 공급사 가운데 하나다. 애플은 삼성전자를 견제하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에게 납품 받던 디스플레이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는 추세다. 대신 샤프와 LG디스플레이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샤프의 대주주로 부상함에 따라 삼성전자는 샤프에 생산을 의뢰한 디스플레이 내역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애플은 신형 아이폰 및 애플이 생산할 TV의 부품이 노출돼 향후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될 전망이다.

30년 만에 뒤집힌 입장… 그야말로 격세지감

그런데 이보다 더 의미심장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앞의 세 가지에서 제외한 것은 이 이유가 경제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982년 삼성전자 이윤우 반도체 개발실장(현 삼성전자 고문)은 반도체(디스플레이가 아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샤프를 방문했다. 이윤우 고문 외에도 선진 반도체 기술을 배우고자 일본 기업을 방문한 삼성전자 직원은 많다. 심지어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일본을 배우면서 컸다. 기술을 하나라도 더 전수받고자 도시바, 파나소닉, 산요 등 많은 일본 기업과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 기업들은 삼성전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뒤떨어지는 기술을 가진 2류 회사, 이것이 일본 기업들이 가진 삼성전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삼성전자 이병철 창업주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고 코웃음 치기도 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180도 돌변했다. 삼성전자는 인텔에 이어 제 2위의 반도체 사업자가 됐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273억 달러(약 247조 원)로, 도시바, 파나소닉, 소니, 히타치, 샤프 등 일본 5대 전자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상황이다. 영업이익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샤프를 돕겠다고 나섰다. 30년 만에 상황이 뒤바뀌었다. 이를 니혼게이자이(니케이) 신문은 "한국과 일본의 대기업이 자본 제휴를 맺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IT업계의 재편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NHK, 마이니치 등 일본 유력 언론도 삼성전자와 샤프의 제휴를 집중보도하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30년 만에 뒤바뀐 입장 과시, 이것이 삼성전자가 이번 출자로 얻은 또 하나의 이득이다.

한편, 샤프는 퀄컴과 삼성전자 외에도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고 있다. 애당초 9.9%를 매각할 예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직 3%의 지분이 남는다. 여기에 어떤 회사가 관심을 보내고 있을까. 퀄컴과 같이 관심을 보냈던 인텔은 샤프의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 지난 1월 협상 테이블에서 손 털고 나갔다. 퀄컴, 삼성전자처럼 자금의 여력이 있으면서 샤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회사, 아무리 생각해봐도 애플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글 / IT동아 강일용(zer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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